최연희 의원이 정작 내놔야 할 것

[진중권 칼럼] 누가 당직 내놓으라고 했나

등록 2006.02.28 12:01수정 2006.03.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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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28일 오후 1시 40분]

a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26일 국회에서 "매년 증가하는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로 '전자위치확인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전자팔찌를 설명하고 있는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26일 국회에서 "매년 증가하는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로 '전자위치확인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전자팔찌를 설명하고 있는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마루타를 자원하다

대한민국에는 도대체 바람 잘 날이 없다. 한나라당 최연희 사무총장이 술자리에서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했다고 한다. 그는 그 여기자가 술집 여주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고매하신 의원나리, 그것도 사무총장까지 하시는 분이 거짓말 했을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 최연희 의원을 해치려는 음모로 보이는데, 검찰에서는 누가 술집 여주인을 <동아일보> 여기자로 '바꿔치기' 했는지 당장 수사에 들어가야 한다.

어쨌든 최연희 의원의 변명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최연희 의원이 평소에 식당 여주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추행해도 된다고 생각해왔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최 의원 주변 사람들 역시 그 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부류라는 점이다. 생각해 보라. 그렇게 말하면 남들이 "아,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고 납득을 해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걸 변명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한나라당으로서는 참 난처하게 됐다. 박근혜 대표는 얼마 전 성 추행범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자고 주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영광의 팔찌의 첫 번째 주인이 나타났다. 듣자 하니 피해자가 원치 않아 사건이 되지 않았지만, 같은 당의 정 모 의원도 비슷한 성추행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두번 째 주인 되겠다. 의원님들이니 특별히 예우하여, 그 팔찌에 14K 금으로 나라 '국'자를 박아 드리자.

왜 성추행들을 하는 걸까? 한나라당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 범죄자들은 성욕이 너무 왕성해서 그런다고 한다. 만취한 상태에서도 그렇게 왕성하다니, 하여튼 그 연세에 정력도 참 좋으시다.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에서 주장해 온 것처럼 이 분부터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할 것 같다. 한참 효과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던 참에 마침 자원자가 나타났으니, 일단 이 분을 대상으로 실험해 본 후, 효과가 확인되면 확대 시행하는 게 좋겠다.

여기자만인가?


a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사건이 내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요소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동아일보>의 독특한 방식이다. 그 자리에는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과 편집국장을 비롯한 <동아일보>의 기자들이 참석해 있었다. 듣자 하니 술판이 질펀하게 벌어지고 노래자랑까지 했던 모양이다. 술 마시며 감시하고, 노래하며 견제하고, 언론의 사명을 이렇게 황홀하게 수행하는 디오니소스적 언론이 세계에 또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필요가 없는 자리였다. 야당에서 언론에 할 말이 있으면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을 통해 하면 그만이다. 야당 대표가 자당 의원들을 거느리고 마찬가지로 자사 기자들을 대동한 언론사 편집국장과 만나 도대체 뭘 논의했을까? 아마 그 얘기는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으로는 할 수 없는 각별한 얘기들이었을 게다. 마침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도대체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도 대단히 궁금해진다.


대통령 씹는 게 국민스포츠가 되고 외려 대통령 변명하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게 된 이 시점에, 그저 대통령 씹는 것 하나로 "비판언론"을 자처해 온 <동아일보>. 명색이 언론인데, 지지율이 여당의 두 배에 이르고 지방권력의 85%를 점한 무소불위의 거대정당으로부터 술 접대를 받으며, 무슨 기사를 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술자리에서 우리는 왜 신문이 한나라당 기관지 내지 선거전단이 되어버리는지, 그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물론 동아일보에서 이 사건을 묻어버리지 않고 기사화한 것이나, 여기자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아일보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실 그 자리에서 추행 당한 것은 여기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대정당으로부터 술 얻어먹어가며 스스로 관리당하기를 자초한 기자들 전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으로 성 폭행을 당한 것이다.

내놔야 할 것은

a 최연희 의원.(자료사진)

최연희 의원.(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연희 의원이 사무총장에서 사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역시 의원직이다. 만약에 이 분이 끝까지 의원직 사퇴를 거부한다면, 국회 본회의장에 있는 이분의 좌석에 '성추행범'이라는 팻말을 붙여놔야 한다. 17대 국회에는 그 어느 국회보다 여성 의원들이 많지 않은가. 게다가 성범죄는 재범률도 높다고 한다. 팻말은 국회 내 여성의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게 이 분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에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많았던가. 술 먹다 맥주병 던지는 의원, 남의 얼굴에 맥주 끼얹은 의원, 술집 여주인을 모욕하는 의원, 국회의장 비서실 여직원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의원, 거기에 여기자 상대로 성추행을 한 의원과 사무총장. 대한민국 마초문화의 엑기스가 한나라당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봐 넘겨야 할까?

최연희 의원이 탈당계를 제출했다고 한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폭행을 하고 폭언을 하고 추행을 한 한나라당 의원들, 버젓이 당적 유지한다. 이것으로 보아 최연희 의원 정도면 '한나라당' 당원의 자격을 유지하는 데에는 충분해 보인다. 그 정도 도덕성이면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는 데에도 족함이 없다. 그에게 결여된 것은 의원자격. 내놔야할 것은 당직이 아니라 의원직이다. 최연희 의원이 지금 할 일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 '당적 유지, 의원직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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