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통회 및 통일강령 적용중지 문서에 서명하는 천수이볜 총통. 서 있는 사람은 총통 비서실장.중화민국(대만) 총통부 홈페이지
천수이볜 대만(중화민국) 총통이 국가통일위원회(국통회) 및 국가통일강령의 적용중지를 선언함에 따라 양안관계가 다시 급랭하고 있다.
'폐지' 대신 '적용 중지'라는 유화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미국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천 총통이 지금 당장에 어떤 모험이나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언급일 수도 있지만, 일부 한국인들이 착오를 범하는 것이 있어 그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양안관계(중국-대만 관계)는 표면상으로는 '대만 독립문제'를 쟁점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만의 탈(脫)중국화’를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잘 알다시피 대만은 엄연한 독립국가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대만이 중국과의 통일을 포기하느냐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여전히 대만과의 통일을 국가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음에 반해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중국과의 통일문제를 ‘의식’ 속에서 지워버리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과의 인연을 끊겠다는 것이다.
양안 문제의 쟁점은 '대만의 탈중국화'
이는 '이혼한 부부'의 비유를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혼 후 한쪽 배우자는 '재결합'을 추진함에 반해, 다른 쪽 배우자는 재결합 대신 '독신'이나 '재혼'을 고려하는 경우가 있다. 중국이 "자녀들을 생각해서 재결합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 대만은 "나는 당신과의 인연을 끊어버리겠다"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양안관계는 한반도 문제와는 성격을 달리 하고 있다. 한반도의 두 정권은 기본적으로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내에서 아무리 극우적인 정치세력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통일이라는 대의에는 다 같이 찬성하고 있다. 그에 비해 대만 집권당의 경우에는 통일은 고사하고 교과서에서마저 ‘중국과의 인연’을 지워버리려 하고 있다.
그리고 대만에서는 지금 내부적 논쟁에도 기본적으로는 탈중국화 노선을 점차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중국화가 대만인들에게 시급한 과제가 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중국이 점점 강력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이 점점 약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탈중국화는 '통일의 포기'
그럼 대만은 언제쯤 '탈중국'을 공식화하게 될까? 다시 말해 대만은 언제쯤 '큰 일'을 벌이게 될까? 그런데 '큰 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 총통이 지난 2000년 5월 20일 취임사에서 밝힌 이른 바 '4불(不) 1무(無)'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4가지를 하지 않고 1가지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인데, ‘4가지’라는 것은 ▲대만 독립의 선포 ▲‘중화민국’에서 ‘대만공화국’로의 국호 변경 ▲개헌을 통해 양안관계를 ‘특수한 국가관계’로 변경하는 것 ▲국민투표를 통해 통일과 탈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1가지’라 함은 국통회와 국가통일강령을 없애는 것'이다.
이번에 천 총통이 국통회와 통일강령의 적용중지를 선언한 것은 자신이 하지 않겠다던 1무(無)를 뒤엎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천 총통이 밝힌 4불 1무를 뒤집어 해석하면, 대만 입장에서 무엇이 ‘큰 일’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천 총통의 재임기간이든지 그 후계자의 재임기간이든지 간에, ‘하지 않겠다던 4가지’를 하고 ‘없을 것이라던 1가지’가 발생한다면, 이는 대만이 중국과의 인연을 공식적으로 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대만이 공식적으로 중국과 ‘남남’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4불 1무를 뒤엎으면 공식적인 ‘남남’
그럼 언제쯤 그러한 일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대독(臺獨) 세력 즉 탈중국화 추진 세력의 태도를 보면, 지금 당장에라도 독자노선을 걸을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양안관계가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이상, 양안의 현상변경은 절대 대독세력의 임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 없을 것이다.
또 대만의 국력이 동아시아에서 상위 랭크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임의적 판단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만이 언제쯤 탈중국을 공식화할 것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대만의 존립 조건과 ▲미국의 역내(域內) 전략과의 연관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아외교(脫亞外交)를 표방한 일본이 가장 먼저 개시한 대외침략은 바로 1874년 대만출병이었다. 그리고 청일전쟁(1894년) 결과로 대만은 일본 식민지로 전락했다(1895년). 이 시기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할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서구 열강의 암묵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9년 이후 대만이라는 작은 나라가 중국에게 흡수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미·일 동맹의 영향 '덕분'이었다.
이러한 점을 본다면 1895년 이후 지금까지 대만을 지탱해주는 것은 일본과 서양세력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49년부터는 미국이 그 '서양세력'의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만이 중국에 맞서 국가주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일 동맹의 지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만 내부의 자체 역량이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양안관계의 현상변경은 대만 단독의 결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미·일 동맹의 이해관계와 부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만의 대(對) 중국정책은 미국의 역내 전략과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양안의 현상변경은 미·일·대만의 공동 결정사항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양안관계의 현상을 변경함에 있어서 대만은 미국과의 전략적 협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대만이 미국의 역내 전략을 침해하면서까지 양안의 현상을 변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양안관계에 관한 미국의 기본 입장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만을 독립된 정치세력으로 남겨 둠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중국측의 희망사항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해 줌으로써 대테러전쟁이나 북·미 핵문제에 관한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만과의 군사적 협력 등을 강화하는 미국의 이중적 태도는 바로 이 같은 기본 입장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만 민진당 정권도 자신들의 탈중국화 노선을 추구함에 있어서 이같은 미국의 전략적 입장을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자신들의 독자적인 힘으로 중국에 맞설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미·일의 도움 없이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므로 어쨌든 간에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민진당 정권이 탈중국을 공식화함으로써 ‘2개의 중국’을 만들어 버린다면, 이는 미국의 입장을 매우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해 주는 조건으로 중국의 협력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대만이 ‘2개의 중국’을 공식화해 버린다면,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지지할 수도 없고 대만을 지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는 동시에 대만 자신에게도 전략적 손실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대테러전쟁이나 북·미 핵문제에서 중국측과 전략적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 동안에는, 대만도 쉽사리 탈중국을 공식화하기 힘들 것이다. 또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매개로 중국의 협력을 얻고 있는 동안에는 대만도 섣부른 행동을 하기 힘들 것이다.
당장 '하나의 중국'이 무너지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손실
그러나 앞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조건 중 하나가 성취된다면 대만 지도부가 자신들의 탈중국을 공식화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 ‘하나의 중국’ 원칙 대신 다른 매개체가 미·중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부상하는 경우다. 다시 말해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 대신 다른 ‘선물’을 주는 조건으로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다면, 대만이 탈중국을 공식화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성취되려면 중국이 예컨대 티벳 같은 곳에서 전략적 수렁에 빠져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에 대한 구체적 판단을 하기가 힘들다.
둘째, 대테러전쟁이나 북·미 핵문제 등에 있어서 미·중의 전략적 유대가 이완되거나 해체되는 경우다. 미국이 더 이상 중국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거나 중국의 협력이 미국에게 유용하지 않게 되는 경우다.
특히 북·미 핵문제가 군사적 혹은 평화적으로 해결되면 미·중의 전략적 유대가 이완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북·미 핵문제에 있어서 현상변경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양안관계의 현상변경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북·미 핵문제 해결을 전후한 시점에 대만도 ‘결단’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중국과의 전략적 유대가 이완되거나 해체되는 경우에는 미국이 굳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해 줌으로써 중국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만 역시 더 많은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대신, 이런 경우에는 양안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미국·일본·대만의 긴장이 한층 더 격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핵문제 해결 전후로 탈중국 공식화 가능성
셋째, 일본이 미국의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한 경우다. 미국의 국력이 소진하고 일본이 그 바통을 이어받는 경우, 대만으로서는 일본과의 동맹이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는 현실적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미국의 패권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안에 이것이 현실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경우에는 미·중 간의 ‘하나의 중국’ 원칙 합의가 대만의 행동을 더 이상 제약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미·일·대만 동맹에 비해 일·대만 동맹의 파워가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기 때문에,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대만인들의 ‘노력’은 한층 강도를 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북·미 핵문제가 군사적 방법이든지 평화적 방법이든지 간에 모종의 결말을 보게 되는 시점을 전후해서 대만이 탈중국을 공식화하려 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만 입장에서도 그 시기가 현실적으로 적기(適期)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만 지도부가 지금 당장에라도 무슨 일을 낼 것처럼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현재로서는 ‘액션’에 불과한 측면이 많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무튼 미국이 동북아에서 여전히 건재하게 남아 있는 한, 대만은 북·미 핵문제의 해결을 전후한 시기에 모종의 결행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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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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