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말 "나는 일본이 좋아요!"

등록 2006.03.02 14:00수정 2006.03.0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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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은 사회의 명분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지배층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반면, 피지배층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말하기가 힘들다. 피지배층이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배층이 허가한 관념’이다.

그러나 지배층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속마음이 사회적 명분과 어긋나는 경우다. 사회적 명분에 배치되는 속마음을 가진 지배층이 지배하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다. 그러므로 지배층의 속마음과 공개적 언행이 불일치하는 사회는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인 동시에 ‘파괴와 재창조가 임박한 사회’인 것이다.

한국사회가 바로 그러하다. 한국의 사회적 지배계층에게도 ‘꼭 말하고 싶으면서도 말할 수 없는 말’이 있다. 그들이 쉽사리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한국사회의 공식적 명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나는 일본이 좋아요!’이다.

일제시대 같았으면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민층 유권자의 대다수가 일본을 혐오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지배층일지라도 겁없이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진정한 속마음이다.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한국 지배층의 상당수

물론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든 지배층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지배층 즉 엘리트집단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신·구 엘리트 집단 경쟁 속에서 사회·정치·경제적 지위의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의 모든 엘리트들이 다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 엘리트 집단의 상당수는 자신들이 3월 1일과 8월 15일에 어떤 말을 하든 간에 속으로는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용기 있는 자들은 김완섭씨처럼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공개적으로 천명을 하기도 한다. ‘커밍아웃’(친일선언)의 극적 효과를 노리는 그들은, 한일관계가 서서히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는 1월이나 2월을 기해 “나는 일본이 좋다!”며 공개적인 ‘양심선언’을 한다. 그리고 그들 중 이재(理財)에 밝은 자들은 커밍아웃 얼마 전에 출판사를 자신의 협력자로 포섭하기도 한다.

a 일본에서 출간된 김완섭 씨의 <친일파를 위한 변명>.

일본에서 출간된 김완섭 씨의 <친일파를 위한 변명>. ⓒ amazon.co.jp

그들이 그토록 강한 신념을 갖고 친일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지배층의 상당수가 자신의 지원병이라는 점 ▲한국 지배권력이 아직도 친일잔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이 아직도 ‘친일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들이 대담하고 ‘소신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친일하는 사회’

친일선언을 ‘반체제 선언’으로 생각했다면, 그들이 절대로 황당한 행동을 할 리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의 지배계층이며, 다른 지배 엘리트들도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친일선언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반체제 선언’이 아니라 실은 ‘체제 옹호 선언’인 것이다.

지배층 상당수가 꼭 말하고 싶은 말이면서도 말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용기를 내어 지배층 상당수의 속마음을 속 시원하게 대변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을 ‘반체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회 대중을 ‘반체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겉모습과 달리 실제로는 ‘친일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친일선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정신 나간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친일선언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침묵하는 지배층 상당수다. 그들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민중이 아닌 소수 엘리트에게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만원 버스’나 ‘콩나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일반 서민들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일선언을 하는 자들은 한국국민에게 저항하는 게 아니라, 실은 침묵하고 있는 지배층 상당수에게 아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일본이 좋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할 때에, 그들은 일반 국민들이 들으라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침묵하고 있는 지배층 상당수에게 뭔가를 어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일반 대중을 보면서 황당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배층 상당수가 친일세력이기에 친일선언도 가능

커밍아웃을 한 사람들이건 혹은 아직도 침묵하는 엘리트들이건 간에, 그들은 일제 식민통치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러한 정당성 부여는 박정희 정권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죄 없는 서민들이 고통을 받든 말든 간에, 오로지 숫자와 통계만을 근거로 ‘성장 지상주의’를 외치는 그들의 지지대상은 박정희와 일제 식민통치 그리고 일본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아직도 친일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마음속으로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외치는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이므로, 한국사회의 구석구석에 일본적 사고방식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것도 매우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친일 과거도 청산하지 못하다니, 한국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친일세력이 지배층 상당수를 구성하는 사회에서 친일을 청산한다면, 그것은 사회를 파괴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친일 지배층 있는 한, 친일 청산은 불가능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하면서도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할 수 없는 지배층이 존재하는 사회. ‘나는 일본이 좋아요!’라고 하면서도 “나는 일본이 싫어요!”라고 할 수밖에 없는 지배층이 존재하는 사회. 지배층은 피지배층에 비해 표현의 자유를 더 많이 갖는 법인데, 지배층이 할 말을 할 수 없는 사회이므로 한국사회는 모순의 사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힘없는 일반 한국인들은 친일선언을 하는 한승조 부류의 인물들에게 함부로 돌팔매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친일을 하는 그들이 지배층이고 친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피지배층이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 지배층의 상당수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사회가 ‘일본 식민지의 극복’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성립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전문(前文)이 선언한 것처럼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제 청산’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국가이면서도 ‘일제 계승’을 ‘숨은 사회적 공감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이 일본과 함께 미국의 위성국가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의 1등 위성국이고 한국은 미국의 2등 위성국이다.

한국이 미국-일본-한국 3각 동맹의 일원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친일 잔재를 청산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일일 것이다. 그것은 한일동맹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일청산’보다도 상위개념인 ‘한일동맹’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일과 동맹을 이루어 동족에게 핵무기와 미사일을 겨누고 있는 나라에서, ‘일본을 좋아하는 분들’이 사회 지배계층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최근 지배계층에 변화가 생기고는 있지만 말이다.

미-일-한 3각 동맹을 극복하지 않는 한, 앞으로 수백 년이 지난다 해도 한국사회는 결코 친일 과거를 청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더 흐르면 그냥 잊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미-일-한 3각 동맹 하에서는 친일 청산 불가능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친일을 청산하고 당당한 자주국가가 되려면, 지배계층 내부에 강력하게 남아 있는 상당수의 ‘친일세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사회에서 친일세력은 단순히 일본과 친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단순히 일본과 친한 사람들은 친일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친일세력이라는 것은 일본을 옹호하는 차원을 떠나, 아직도 일본을 우리 민족의 ‘선생’으로 인정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정계나 재계는 물론 학계와 종교계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학계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이론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다.

살아 있는 친일파에 대한 정치적 청산 필요

따라서 한국사회의 친일 청산은 2가지 방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미 ‘천당’에서 하나님 우편에 서 있는 ‘죽은 친일파들의 사회’에 대해서는 역사적 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해방 이후에 태어났지만 음으로 양으로 친일 잔재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살아 있는 친일파들의 사회’에 대해서도 정치적 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살아 있는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않는 한, 한국사회는 ‘죽은 친일파’들을 절대로 청산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친일파들이 죽은 친일파들의 무덤을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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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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