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여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서울 평창동 자택 입구에 <평창동 주민일동>의 이름으로 된 '딸자식 걱정되서 못 살겠다. 성추행범 최연희는 이사하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오마이뉴스 권우성
# 풍경3: 소신 혹은 무의식
정의화 의원에 이어 열린우리당에서도 '소신'을 드러낸 의원이 나왔다. 한광원 의원은 2일 오후 자신의 홈페이지와 당 홈페이지에 '봄의 유혹'이란 제목의 칼럼을 내고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사회에서 '성추행'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 직장동료에게 가벼운 농담 한마디를 던지거나, 힘내라며 손을 내밀기도 어려운 이 사회적 분위기는 또 언제부터였을까"고 물음을 던졌다.
이 칼럼에서 한 의원은 "봄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며 "왠지 모를 설레임으로,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고독한 남자의 외로움으로, 또 때로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눈꺼풀의 무게로 말이다"라고 온갖 낭만적 미사여구를 동원했다.
사실 한 의원이 동원한 논리는 반박하기에도 지루하다. 성폭력 사건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갈 때면 으레 '성폭력'과 '성본능'을 뒤섞어 문제를 무화시키는 수법에 다름 아니다. 한 마디로 여성은 꽃이고 꽃은 유혹의 대상이므로 언제든지 꺾어도 된다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남성의 시선이다. 한 의원은 그 얘기를 너무 길고 지루하게 늘어놓았다.
한 의원은 "명백한 '성폭력'의 범주를 제외하고"라는 단서를 달아 "인간의 에로스적 사랑의 욕구를 무력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그 어떤 명확한 함의를 찾지 못한 채 다소 감정적인 군중심리의 파고를 타고 행위자의 인권과 소명을 무시하며 무조건적인 비판만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의원이 성폭력의 개념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혹시 '강간'만을 성폭력이라 생각하시는지?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물론 성추행이나 성희롱도 성폭력에 포함된다. 상대의 감정이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거나 호감이 있으면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거부당했을 때 '왜 과민하게 반응하냐'는 식의 사고는 '머릿속의 성폭력'으로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는 성폭력의 출발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한 의원은 '용기(?)'도 없었다. 논란이 일자 서너 시간만에 칼럼을 내렸다. 그리고 대체된 칼럼은 '전여옥은 사퇴하라'는 것이었다. 최연희 의원에 관련해선 "전대미문의 성풍(性風), 최연희 의원의 마지막 결단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며 "더 이상 버티기에는 그 자신도, 피해자도, 이를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서도 매우 힘든 일"이라는 내용을 슬며시 끼워넣었다.
하지만 '소신'을 바꾼 이유는 없다. '국민'의 이름을 팔았지만 '복잡하고 짜증나니 어서 덮자'는 요구같이 들린다.
사례들 들자면 끝도 없다.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최 의원은) 딸 같은 기자에게 사죄를 했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했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고 해명했다. '딸' 같다는 표현이 왜 나오는지. 기자면 기자지, 딸 같은 여기자는 또 뭔가. 최연희 의원의 은연 중에 튀어나온 해명 "식당주인인 줄 알았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자를 기자아닌 그 무엇으로 보았다는 점에선 그렇다. 여기자는 딸이고 식당주인이고 꽃이었다.
아, 이쯤 되면 차라리 정치권은 성폭력에서 손을 떼라고 권하고 싶다. 이번 최연희 사무총장 성추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현장 고발하고, 가해자가 이를 시인했음에도 헷갈려 하는데, 그렇지 않은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부인하는) 다수의 사건들을 국회가 어찌 감당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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