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무덤가에 만리향을 심다

향긋한 꽃내음이 나면 그것은 어머니의 향기

등록 2006.03.06 11:27수정 2006.03.0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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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아픈 몸인데도 병원에 가시기 앞날까지 논밭에서 일하신 뒤 걸어서 병원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실 때는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렇게 정든 집에서 한 달도 지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지요.


어머니는 담낭암(쓸개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에 걸려 소화가 잘 안되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오로지 농사일만 하시다 석 달여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 석 달 동안 간병을 막내아들인 제가 했습니다. 두 달 동안 지방 병원과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생활하며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 생활을 하며 좋은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나이 지긋한 늙은 부부들의 모습이었지요. 한 부부는 둘 다 몸이 아파 약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다행히 남편 되는 분이 조금 덜 아프셨나 봅니다. 아내를 지극하게 보살피고 밥까지 떠 먹여 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빨리 장가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지 않은 모습도 있었습니다. 간병인에게 맡겨 두고 자식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경우입니다. 사나흘에 한 번 정도 전화를 할 뿐이었지요.

아들 부를 힘조차 없어 막대기로 신호를 보낸 어머니

어머니는 점점 나빠졌습니다. 나중에는 혼자 대소변을 보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에겐 아들도 불편했나 봅니다. 밤에 홀로 소변을 보러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곤히 자는 아들을 보고 깨우기가 미안했다고 변명을 합니다. 그런 어머니께 아들은 화를 냅니다. 아들한테 뭐가 미안하냐고…. 그런 일이 있고부터 어머니 침상에 바짝 붙어 잠을 잡니다. 아들을 밟지 않고는 침대 아래로 내려 올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나중에는 아들을 부를 힘조차 없어 가느다란 막대기로 제 얼굴을 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햇살 따뜻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누우신 그곳은 어머니가 밤낮으로 모를 심고 밭을 매던 곳입니다. 그렇게 가꾼 땅이 나중에는 어머니를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일까요?

어머니는 겨우내 너덜너덜한 잔디와 보송보송한 흙으로 둘러싸인 곳에 계셨습니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춰질 때는 그나마 좋았습니다. 어머니 곁에 있지 않아도 어머니가 따뜻해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은 잔디가 어머니께 좋은 이불이 되어주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유난히 길게 여겨졌고, 몹시도 춥게 느껴졌습니다. 때로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왜 이런 것을 느끼지 못했나 하고 후회도 됩니다.


활짝 피어난 만리향의 모습입니다.
활짝 피어난 만리향의 모습입니다.배만호
만리향(萬里香)

이해인


달콤한 향기는
오랜 세월 가꾸어 온
우정의 향기를
닮았어요.

만 리를 뛰어넘어
마음 먼저 달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꽃가루로 흩어져요

고요하게
다정하게

어려서 친구와 같이 먹던
별꽃 별 과자 모양으로
자꾸만 흩어져요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우정은 영원하기를...


어머니께 진 마음의 빚은 자꾸만 늘어가

어머니가 누워 계시는 곳에 만리향을 심었습니다. 천리향도 심고 동백도 심었습니다. 만리향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가을이 되면 향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리고 향이 만 리를 가겠지요. 그러면 제게도 어머니의 향이 느껴질 것입니다. 어머니의 향을 느끼며 가까이 다가가면 천리향이 느껴지겠지요.

어머니 곁에 심은 꽃나무를 제가 사는 곳에도 심었습니다. 처음부터 두 그루씩 준비를 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제게 피와 살을 나누어 준 것처럼 나도 어머니에게 작은 보답을 한다는 생각으로 심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진 마음의 빚은 자꾸만 늘어납니다. 그게 꽃나무 몇 그루를 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농사일에만 몰두하다 격렬한 여름이 끝난 뒤 찾아온, 조락의 계절, 죽음의 계절 등 온갖 수식이 다 어울리는 가을에 낙엽처럼 생을 마감했습니다. 파도에 밀려난 부표, 끝이 갈라지고 만 밀짚모자처럼…. 그렇게 정열로 가득 찼지만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만 여름. 가을은 여름의 눈물을 채워 넣어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한 계절, 햇빛과 같은 달콤한 향기를 형형색색 물든 풍경 속으로 밀어내며, 퍼뜩 눈에 띄는 오렌지색 꽃이 피어납니다. 만리향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여름이 가져다 준 것은 눈물뿐일까요? 가을의 조용함에 둘러싸일 때 정말로 자기가 발견하고 싶었던 사람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대!
마음이 끌려 서로 마주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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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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