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엄마는 제 도시락에 사랑을 담습니다

등록 2006.03.08 19:34수정 2006.03.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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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싼 모습입니다. 맛있겠죠?
도시락을 싼 모습입니다. 맛있겠죠?남희원
“도시락을 놓고 가면 어떡하니? 도시락 갖고 가야지!”


매일 아침마다 저희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요즘은 거의 모든 학교들이 급식을 하고 간혹 식당이 있는 학교까지 있는데, 도시락이라니 약간 황당할 수도 있지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의 식당 보수 공사가 지연된 관계로 수개월간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 학교 선배들로부터 그 말을 듣고 부러워했는데, 그 학교로 중학교가 결정된 뒤에는 더욱 좋아했습니다.

도시락을 싸와야 한다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입니다.
도시락을 싸와야 한다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입니다.남희원
그러나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모두가 바쁜 아침시간이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언니와 제 도시락을 싸느라 엄마는 허둥대고, 가끔 도시락을 두고 가는 날이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시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들어가 가지고 나와야 했습니다.

무거운 도시락 가방을 들고 가려면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에 두 번 7교시를 하는 학교 시간표에 맞춰 가방 가득 공책과 책 등을 넣고 나면 가방은 어느새 뚱뚱해지기 마련이니까요.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한쪽 손에는 실내화 가방을, 한쪽 손에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학교를 가려니 꼭 타임머신을 타고 부모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도시락을 싸기 전의 모습입니다.
도시락을 싸기 전의 모습입니다.남희원
요즘은 좋은 보온도시락이나 예쁜 디자인의 도시락이 많지만 옛날에는 조금이나마 차갑지 않게 하려고 난로 위에 겹겹이 쌓아놓고 밥이 탈까봐 안절부절 못했을 부모님 모습도 생각해보니 그나마 저는 지금의 환경에 감사해야 될 것 같습니다.


가끔 1년에 몇 번 소풍이나 견학을 갈 때 싸들고 갔던 도시락을 이제 주말을 제외한 몇 개월 동안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눈앞이 깜깜합니다. 도시락을 친구들과 나눠먹으면서 새 학기에 적응하며 더욱 친해지게 되어 좋은 점도 있지만, 한편으론 나쁜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저희들의 도시락을 정성껏 싸주십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도시락을 펼치면 아기자기한 모양의 도시락이 반갑고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습니다. 매일 남기니까 조금만 싸달라고 해도 학교에서 배고프지 말라고 꾸역꾸역 가득 눌러 담은 반찬과 밥을 보면, 엄마의 정성이 고마워서 배는 부르지만 남기지 않으려고 더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락 반찬의 모습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락 반찬의 모습남희원
아직까지는 소풍 갈 때만 볼 수 있는 도시락을 보게 되어 반갑고 좋지만, 하루 빨리 식당에서 더운 김이 몽실몽실 오르는 급식을 먹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저를 생각해 주시는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오늘도 도시락 한켠에 가득 담긴 갓김치를 남기지 않으려고 한가득 입에 집어넣었다가 정수기 앞에서 물컵을 들고 한참 동안 서 있었습니다. 어쨌든 내가 오늘의 도시락을 다 먹었다고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에 내심 흐뭇해지더군요.

도시락통은 무겁지만 그 속에 담긴 엄마의 사랑이 도시락통을 가볍게 하고 학교로 향하는 제 발걸음도 가볍게 하는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남희원 기자는 중학교 1학년 생입니다.

덧붙이는 글 남희원 기자는 중학교 1학년 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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