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만 해도 하루에 500kg의 백합을 잡던 거전갯벌. 4공구가 막히자 포구는 폐허로 변했다.허정균
부안이 이처럼 수산물이 풍부한 이유는 하구언으로 막히지 않은 동진강과 만경강이 흘러드는 하구역 갯벌(estuary)인 새만금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 조수가 밀물 때 강을 따라 밀고 올라가는 하구역 갯벌에는 다른 갯벌보다 2배 가량 많은 생물종이 있다고 한다. 또한 바다 생물의 약 70%가 갯벌에서 알을 낳고 성장기를 보내는 데 갯벌은 산란장 역할을 한다.
따라서 새만금 갯벌을 중심으로 황금어장이 형성되었다. 새만금 갯벌을 배후지로 둔 칠산어장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하구역 갯벌을 배후지로 둔 연평어장, 서남해안의 갯벌을 배후지로 둔 흑산어장과 함께 서해 3대 어장으로 모두 파시가 서던 곳이었다.
이러한 칠산어장이 새만금방조제로 갯벌이 죽어가면서 궤멸하여가고 있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전라북도의 어업생산량은 방조제 공사 직전인 1990년 15만234톤이던 것이 2005년도에는 5만6558톤이다. 거의 1/3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700만 원 받고 빼앗긴 삶의 터전
새만금 방조제 안에만 2만여 명의 어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에게 1995년 7월부터 보상이 이루어졌는데 1999년까지의 1차 보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새만금 어민 1차 보상 내역(1999년까지) | | 구분 | 건수 | 금액(평균-단위:백만원) | 면허어업 | 439 | 223,044(508.07) | 어선어업 | 1637 | 63,164(38.58) | 수산제조업 | 70 | 11,588(165.54) | 맨손어업 | 6585 | 44,638(6.78) | 계 | 8731 | 342,434(3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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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나 갈고리를 가지고 조개를 채취하는 맨손어업이 75%나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내준 대가는 단돈 700만 원이었다. 어선어업의 경우도 4천만 원이 안된다. 배를 당시 시세대로 파는 가격밖에 안되었다. 몇 억 원씩 보상금을 타낸 사람들은 대부분 평생 갯벌에 발 한번 담가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헐값에 양식면허권을 사들여 서류상으로 양식면허업을 가지고 있다가 돈벼락을 만난 것이다.
어촌탈출 양극화로 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