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암에서 바라본 대장봉, 금산의 절승들을 담은 사진을 용량제한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 그지 없다임흥재
남해 여행의 백미 금산에 올랐다. 보리암 근처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길은 노고단만큼이나 가파르다. 차량정비를 하고 떠나는 여행객들의 준비가 필요하다. 주차장에 내려 20여분을 오르다보면 낙산사 홍련암 버금가는 기도처인 보리암이 웅장한 자태가 기묘막측한 바위들에 둘러싸여 있다. 여수 향일암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향한 천애의 벼랑 위에 세워진 절이다. 멀리 남해바다를 흐린 시정으로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보리암 아래 탑대에 서면 대장봉이며 화엄봉이며 형리바위며 금산 38경을 이루는 절승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래로는 이성계가 백일기도 후에 조선을 열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조선태조기단이 있다. 금산의 절승들을 어찌 이 지면에서 다 소개할 수 있을까. 직접 올라보는 것만이 금산의 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다시 하동 쪽으로 잡았다. 여러 번 섬진에 들르면서도 가보지 못했던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의 한 획을 긋는 토지의 무대에 서보는 감동 또한 섬진의 여행길에서 만날 수 있는 커다란 축복이 분명할진저. 하동을 지나 구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당신은 지금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맞다. 정말이지 이처럼 아름다운 길을 가진 것은 우리의 축복이고 이 길을 가는 나는 그 축복을 고스란히 받은 순례자다.
평사리 공원이 보이고 우회전 하여 2km 쯤 가다보면 최참판댁이 나온다. 영화 촬영이 끝났는지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크레인이며 수많은 촬영장비들을 챙기는 사람들로 어수선하다. 대문을 지나 서희의 아버지 최치수의 일그러진 삶이 깃들어 있는 사랑채며 서희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릴 듯한 별당에 이른다. 윤씨부인의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안채에도 들르고 길상의 연모와 봉순의 애닮은 짝사랑이 서린 행랑채의 마루에 앉아도 본다. 대나무숲 초당에서는 귀녀의 욕망과 음모가 슬픈 죽음의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는 것만 같다.
이제는 반듯하게 네모난 평사리 들녘이 바라보이는 구릉에는 초가들이 지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채 조용한 침묵 속에 잠겨 있다. 식민지 백성의 한과 고통으로 얼룩진 역사의 한 페이지는 소설 토지의 활자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길상도 없고 서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늘 함께 살며 지나간 시대의 증인으로 우리의 정신을 일깨울 것이다.
땅이 거기에 있고 우리가 그 땅을 버리지 않는 한 역사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이렇게 나의 여행은 끝이 났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 돌아온 여행길, 그 여행길에서 나는 보았다. 섬진에서 여물고 있는 봄을, 남해에 떠있는 봄을.
| | | 찾아가시는 길 | | | |
| | ▲ 서희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올 듯한 최참판댁의 별당 | | <섬진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곡성인터체인지-곡성읍-구례방향 19번 국도-구례-토지면 혹은 간전면 방향 강변길-화개장터-다압 매화마을
<남해 가는 길>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진주-남해-삼천포대교-창선교(죽방렴)-미조항-해안도로-물건어부방조림(독일마을, 해오름 예술촌)-상주해수욕장-금산(보리암)-다랭이마을(가천 암수바위)-월포해수욕장-사촌해수욕장-스포츠파크-남해(마늘박물관)
* 상주해수욕장에서 남해읍으로 가는 길에는 용문사, 망운산(화방사) 등이 있습니다.
* 하동 쪽으로 돌아가실 분들은 남해대교-하동-최참판댁(평사리)-연곡사(피아골)-구례-곡성을 거쳐 가시면 좋습니다.
구례 쪽에서는-하동-남해-남해대교-충무공 전몰유허-남해읍
*여기서부터는 위의 여정의 역순으로 여행을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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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에는 '봄'이 여물고, 남해에는 '봄'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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