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옆 미술관에도 당당히 가자!

[책소개]그림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주는 고마운 책들

등록 2006.03.11 12:22수정 2006.03.1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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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그림)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그것을 그린 화가는 어떤 사람일까? 왜 그런 그림을 그려야했을까?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복잡한 의문들과 궁금증이 인다. 이는 그림에 문외한이란 말이고 모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는 토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 그림에 갇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은 이미지다. 아니 미술의 전영역이 이미지의 창조를 통한 예술성의 구현이 아니던가. 활자와 소리보다 더 강한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이미지다.


광고가 그렇고 영화 드라마가 그렇다. 아이콘이 없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컴맹이 되어야 한다. 요즘 누가 도스의 복잡한 명령어들을 기억할 것이며 시커먼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를 보며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도미에의 '세탁부'-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모자의 표정에서는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풍겨나고 뒤로 보이는 회색빛의 공장건물에서는 산업사회의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벌써부터 보인다.
도미에의 '세탁부'-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모자의 표정에서는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풍겨나고 뒤로 보이는 회색빛의 공장건물에서는 산업사회의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벌써부터 보인다.돌베게
이미지는 이제 현대인의 무의식까지 지배한다. 그럼에도 그림 앞에만 서면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대개의 우리들이다. 수업시간을 통하여 본 몇 점의 그림이나 잘 알려진 작품 정도가 그나마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의 전부다. 그러나 그것은 대상을 인식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연한 기회에 미술관에 가고 생소한 그림을 보게 된 경우에 막막한 심정은 절망에 가까웠다. 눈은 달렸으나 '볼 줄 아는 눈'이 없으니 꼭 눈 뜬 장님이었다. 지금에도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 처지이나 몇 권의 책을 통해 그나마 개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경구는 참으로 옳다.

앞서 품은 의문에 대한 답부터 말해야겠다. 그림은 사람들의 삶을 말한다. 또한 신화와 성서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 속에는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대의 정신과 풍속이 그림 속에 있다. 그린 이의 삶이 깃들어 있으며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열병 같은 풍조들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당대의 부조리와 지체를 뛰어넘으려는 불멸의 정신이 거기에 있다.

그림은 인류의 탄생과 거의 같은 시기부터 존재해왔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며 라스코 동굴벽화의 들소 그림들은 수만 년 전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 문자가 없었으니 문헌도 역사의 기록도 없던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신앙과 권력의 형성까지도 추정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예술장르가 미술이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석우가 쓴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시공사)에서 저자는 그림들은 어떤 형태로든 역사를 담고 있으며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림과 그에 얽힌 사연 그리고 그것을 그린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와 미술이라는 관계의 망을 살핀다. 그 중 몇 편을 골라보자.

라스코 동굴벽화의 선사시대부터 이집트(투탕카멘 묘의 목제의자), 메소포타미아(고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문) 문명의 발상을 지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역사를 조명한다. 중세의 우울함은 교황과 황제의 권력쟁투(무릎 꿇은 황제 하인리히 4세)에서 역사의 음울한 습기를 머금고 부패한 신성은 인간회복의 시대를 불러온다(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르네상스다.


바야흐로 혁명의 시기다. 태양왕 루이14세가 있고(리고의 '루이 14세의 초상화') 숄라의 '바스티유 함락'이 있다. 마침내 이성의 시대다(고야의 '정신병원').

뭉크의 '사춘기'는 세기말의 불안을 드러내고 매춘(루오의 '거울을 보는 여인')과 성 개방(실레의 '죽음과 소녀')과 여성해방운동(오키프의 '백합화-흑색이 함께 한 백색')이 기지개를 켠다.

샤갈의 '혁명'은 러시아 혁명시기의 좌절과 우울을 드러내고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통해 내전의 참상과 전쟁의 참혹을 인류에게 고발한다. 김병기의 '인왕제색'에서는 우리의 분단역사가 슬피 울고 워홀의 '마릴린'에서는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가 미디어와 욕망에 갇혀 허우적댄다.

프레더릭 레이턴 '화가의 허니문'-신혼의 아름다운 사랑이 드러난다. 화가는 무엇인가를 그리고 신부는 그것을 보려 몸을 화가 쪽으로 기울였다. 뺨은 맞닿아 있고 표정은 행복하다. 살그머니 감싸쥔 손은 부부의 사랑을 이어준다.
프레더릭 레이턴 '화가의 허니문'-신혼의 아름다운 사랑이 드러난다. 화가는 무엇인가를 그리고 신부는 그것을 보려 몸을 화가 쪽으로 기울였다. 뺨은 맞닿아 있고 표정은 행복하다. 살그머니 감싸쥔 손은 부부의 사랑을 이어준다.예담
이석우의 저서가 그림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았다면 이가람의 <미술과 문학의 만남>(월간미술)은 제목처럼 그림 속의 문학, 문학 속의 그림을 찾아 나선 예술에세이다. 이 책에는 동지이자 영혼의 동반자인 관계를 유지한 이도 있고 서로에게 끊임없는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은 관계도 있다. 또한 세잔느와 졸라처럼 소설 한 편으로 갈라선 죽마고우도 있다.

20세기 최고의 저항시인이기도 하였던 엘뤼아르와 '게르니카'를 통해 인류의 양심에 호소한 피카소는 남다른 동지애로 묶인 드문 예에 속한다. 사르트르와 자코메티는 예술적 영감을 서로에게 불어 넣으며 실존과 고독의 위대한 명제를 함께 탐구한 사이다. 초현실주의 운동의 영원한 맞수 앙드레 브루통과 호안 미로는 서로를 인정하면서도 가차 없는 비판을 주고받은 앙숙이기도 하였다. 그 뿐인가.

로브그리예가 누보 로망(새소설)을 제창하였을 때, 르네 마그리트는 그림을 가지고 로브그리예의 텍스트를 화폭에 담은 연대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 외에도 당대의 거장들의 교우와 교감을 통한 미술과 문학의 연대 혹은 문학과 미술의 갈등, 그리고 새로운 시도와 모색의 파노라마들은 읽는 이를 흥미진진한 예술이 세계로 인도한다. 그림 속에 문학이 깃들고 시와 소설 속에 그림이 담기는 과거로의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심미안을 길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림 속에 감춰진 작가의 비밀과 작품탄생의 비사는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는 <세계명화 비밀>(모니카 봄 두첸/생각의 나무)을 통해 훔쳐볼 수 있다. 그림 속의 여성성, 특히 팜므 파탈의 주인공들에 대한 즐거운 에세이인 <팜므 파탈>(이명옥/다빈치)에서는 신화와 성서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기쁨이 두 배다.

일본 작가 다카시나 슈지가 쓴 <명화를 보는 눈>(눌와)은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교과서 같은 미술입문서다. 르네상스에서 사실주의까지, 인상파에서 순수추상에 이르기까지 중세 이후 현대에 이르는 대표적인 작품들을 골라 자세한 설명과 함께 우리에게 미술관에 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다.

화가들의 사생활이 궁금하다면, 그들의 예술적 영감에 사랑을 불어넣고 애증의 혼불을 피워준 사람이 누구인가 궁금해질 때면 화가 정은미가 쓴 <아주 특별한 관계-현대미술을 탄생시킨 파트너들>(한길아트)을 읽기를 권한다. 달리와 갈라의 욕망이 있고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욕정이 있다. 클림트와 플뢰게의 관능이 있으며 클로드 모네와 카미유 모네의 죽음이 있다. 요코와 레넌의 시대와 만나는 것은 이 책이 덤으로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이주헌/예담)는 미술기자 출신의 저자가 그림 한 점 한 점에서 발견하는 세상살이에 대한 위안과 위로 그리고 교훈을 풀어내놓는 구성진 이야기다. 무엇인가 필요한 '때'에 꼭 알맞은 그림을 예로 들며 각박한 현실과 절실한 사랑을 기다리고 이겨내도록 우리를 위무한다. 그림은 우리의 삶을 일깨우는 스승이기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기자를 미술 감상의 재미에 흠뻑 빠지도록 안내한 화가이자 당돌한 시인인 최영미의 <화가의 우연한 시선>(돌베개)이다. 시인의 감성과 화가의 안목, 무엇보다 깊고 세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술작품의 세계는 그림 속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어야하는지를 단박에 깨닫게 한다. 최영미의 글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그림을 보는 지금 나를 숨막히게 하는 건 바로 그 시선이다. 누군가, 언젠가 그녀를 쳐다보았겠지. 그토록 사랑스럽게 그토록 뜨겁게.... 그런 애틋한 시선을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살아 있다는 것의 기쁨과 허망함이 내 안에서 교차된다. 아쉽고도 안타까운 순간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누구였을까? 그러나 지금은 그녀도 죽고 그도 죽고.... 오로지 화가의 따뜻하면서도 잔인한 시선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 중, 베르메르의 '연애편지' 편에서)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

이석우 지음,
시공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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