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릭 레이턴 '화가의 허니문'-신혼의 아름다운 사랑이 드러난다. 화가는 무엇인가를 그리고 신부는 그것을 보려 몸을 화가 쪽으로 기울였다. 뺨은 맞닿아 있고 표정은 행복하다. 살그머니 감싸쥔 손은 부부의 사랑을 이어준다.예담
이석우의 저서가 그림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았다면 이가람의 <미술과 문학의 만남>(월간미술)은 제목처럼 그림 속의 문학, 문학 속의 그림을 찾아 나선 예술에세이다. 이 책에는 동지이자 영혼의 동반자인 관계를 유지한 이도 있고 서로에게 끊임없는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은 관계도 있다. 또한 세잔느와 졸라처럼 소설 한 편으로 갈라선 죽마고우도 있다.
20세기 최고의 저항시인이기도 하였던 엘뤼아르와 '게르니카'를 통해 인류의 양심에 호소한 피카소는 남다른 동지애로 묶인 드문 예에 속한다. 사르트르와 자코메티는 예술적 영감을 서로에게 불어 넣으며 실존과 고독의 위대한 명제를 함께 탐구한 사이다. 초현실주의 운동의 영원한 맞수 앙드레 브루통과 호안 미로는 서로를 인정하면서도 가차 없는 비판을 주고받은 앙숙이기도 하였다. 그 뿐인가.
로브그리예가 누보 로망(새소설)을 제창하였을 때, 르네 마그리트는 그림을 가지고 로브그리예의 텍스트를 화폭에 담은 연대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 외에도 당대의 거장들의 교우와 교감을 통한 미술과 문학의 연대 혹은 문학과 미술의 갈등, 그리고 새로운 시도와 모색의 파노라마들은 읽는 이를 흥미진진한 예술이 세계로 인도한다. 그림 속에 문학이 깃들고 시와 소설 속에 그림이 담기는 과거로의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심미안을 길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림 속에 감춰진 작가의 비밀과 작품탄생의 비사는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는 <세계명화 비밀>(모니카 봄 두첸/생각의 나무)을 통해 훔쳐볼 수 있다. 그림 속의 여성성, 특히 팜므 파탈의 주인공들에 대한 즐거운 에세이인 <팜므 파탈>(이명옥/다빈치)에서는 신화와 성서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기쁨이 두 배다.
일본 작가 다카시나 슈지가 쓴 <명화를 보는 눈>(눌와)은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교과서 같은 미술입문서다. 르네상스에서 사실주의까지, 인상파에서 순수추상에 이르기까지 중세 이후 현대에 이르는 대표적인 작품들을 골라 자세한 설명과 함께 우리에게 미술관에 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다.
화가들의 사생활이 궁금하다면, 그들의 예술적 영감에 사랑을 불어넣고 애증의 혼불을 피워준 사람이 누구인가 궁금해질 때면 화가 정은미가 쓴 <아주 특별한 관계-현대미술을 탄생시킨 파트너들>(한길아트)을 읽기를 권한다. 달리와 갈라의 욕망이 있고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욕정이 있다. 클림트와 플뢰게의 관능이 있으며 클로드 모네와 카미유 모네의 죽음이 있다. 요코와 레넌의 시대와 만나는 것은 이 책이 덤으로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이주헌/예담)는 미술기자 출신의 저자가 그림 한 점 한 점에서 발견하는 세상살이에 대한 위안과 위로 그리고 교훈을 풀어내놓는 구성진 이야기다. 무엇인가 필요한 '때'에 꼭 알맞은 그림을 예로 들며 각박한 현실과 절실한 사랑을 기다리고 이겨내도록 우리를 위무한다. 그림은 우리의 삶을 일깨우는 스승이기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기자를 미술 감상의 재미에 흠뻑 빠지도록 안내한 화가이자 당돌한 시인인 최영미의 <화가의 우연한 시선>(돌베개)이다. 시인의 감성과 화가의 안목, 무엇보다 깊고 세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술작품의 세계는 그림 속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어야하는지를 단박에 깨닫게 한다. 최영미의 글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그림을 보는 지금 나를 숨막히게 하는 건 바로 그 시선이다. 누군가, 언젠가 그녀를 쳐다보았겠지. 그토록 사랑스럽게 그토록 뜨겁게.... 그런 애틋한 시선을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살아 있다는 것의 기쁨과 허망함이 내 안에서 교차된다. 아쉽고도 안타까운 순간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누구였을까? 그러나 지금은 그녀도 죽고 그도 죽고.... 오로지 화가의 따뜻하면서도 잔인한 시선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 중, 베르메르의 '연애편지' 편에서)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
이석우 지음,
시공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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