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남자', 그 처세술이 화를 불렀다

[정치 톺아보기 123] 동반 낙마 위기에 처한 이기우 교육부차관

등록 2006.03.14 16:05수정 2006.03.1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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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국회 정무위의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당시 총리비서실장이었던 이기우 현 교육부 차관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해찬 국무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이 불거졌을 때 언론은 라운딩을 함께 한 다른 공직자가 있었는지에 주목했다.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는 이기우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찾아내고 그에 대해 '총리의 남자' 혹은 '이(李)의 남자'라는 표현을 썼다. 관객 1천만명을 가볍게 돌파한 영화 <왕의 남자>를 빗댄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알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6월 5선 의원인 이해찬 총리의 기용을 계기로 일상적 국정운영을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미래과제에 몰두하는 이른바 '분권형 국정운영' 원칙을 표방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내치를 책임진 실세 총리의 파워는 비유컨대 '왕'(대통령)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여권 내부에서도 '자리'나 민원을 부탁할 일이 있으면 청와대보다는 총리실을 통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 실세 총리의 뒤에는 바로 '총리의 남자' 이기우 전 총리비서실장이 있었다.

이해찬 총리의 극찬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

지난 2004년 6월 참여정부 2대 국무총리에 지명된 5선의 이해찬 의원은 국회의 인준동의를 받아 취임하자마자 이기우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원칙을 중시하는 '운동권 출신 총리'와 융통성이 몸에 밴 '처세의 달인 비서실장'의 조합이 갖는 부조화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격과 관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총리' 이해찬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부러 '부드러운 비서실장' 이기우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수긍했다.

경남 거제 출신의 이 차관은 고졸 9급 공무원으로 차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 67년 부산고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9급시험에 합격해 교육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정의화 한나라당 의원과 박원출 전 조폐공사 사장 등이 그의 부산고 동기다.

그러나 고졸인 그는 '주경야독'으로 나중에 행정학(88년 안양대)·교육학(94년 부산대) 석사와 교육학(2001년 경성대) 박사를 따냈고, 밤을 새 일하는 성실성과 치밀한 업무처리 그리고 친화력으로 '공무원의 표상'으로 불려왔다.

이 차관은 이 총리가 교육부장관(1998∼99) 재직 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의 교육부장관 시절에 교육환경국장을 지낸 그는 당정회의 등 대국회 업무처리가 뛰어나 이 총리부터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교육환경국장 시절에 여야 국회의원 집까지 찾아가 학교를 지을 예산을 따오는 친화력과 추진력을 보였다고 한다. 또 2000년 기획관리실장 시절에는 1조원이 넘는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성사시켰다. 이 과정에서 기획예산처·행정자치부 장관 등으로부터 지원하겠다는 친필 사인까지 받아냈을 정도라고 한다.

'적재적소'의 민원 찾아내 해결하는 '처세의 달인'

사실 정부 부처에서는 대국회·예산 업무만큼 중요시하는 업무가 없다. 장관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입안해 의욕적으로 집행하려고 해도 인력과 예산 등 법과 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국회만 열리면 부처의 장관 이하 모든 간부들이 국회로 출근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 비추어 공무원인 이 차관의 '처세술'은 특출하게 돋보이는 것이었다. 이 차관은 특히 공사를 가리지 않고 '윗분'들의 심기를 파악하고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는 매끄러운 처세술과 무리없는 대외 교섭력을 보여온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는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에 앞서 대통령직인수위 사회·문화분과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다. 이 총리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의 핵심 멤버였다(그래서 그와 총리와의 인연은 교육부장관 시절이 아니라 인수위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교육부 지방교육행정국장으로서 인수위에 파견나간 그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핵심 측근 P씨의 모교(목포시 M고) 체육관이 새로 건립을 추진 중인 사실을 알고 '소리소문없이' 예산지원을 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P씨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P씨는 나중에 학교 측으로부터 모교 체육관 건립을 지원해 줘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받았다. 알고보니 이 차관이 M고교 측에 "P씨가 모교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체육관 건립을 지원하게 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민원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도 '적재적소'의 민원을 찾아내 알아서 해결해주니 민원청탁이 많은 정치인들로서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자리' 부탁은 청와대보다 총리실로 가는 게 빠르다?

국회 예결위원장과 여당 정책위의장 등을 지내 누구보다도 정부의 대국회 업무를 꿰뚫고 있는 이 총리는 이런 인연과 그의 남다른 업무능력 때문에 2004년 7월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임기를 1년 10개월이나 남겨둔 그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청와대는 당시 그를 총리비서실장(차관급)에 발탁한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특유의 친화력과 균형감각으로 업무를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다방면에 신망이 두터워 각 부처, 청와대, 국회 및 시민사회 등과의 가교역할은 물론 업무전반에 걸쳐 국무총리를 효과적으로 보좌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청와대의 기대대로 그는 지난 2월 교육부 차관으로 나가기 전까지 1년 6개월 동안 비서실장으로서 총리를 '효과적으로 보좌'하고 각종 민원을 소리소문없이 해결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자리'나 민원을 부탁할 일이 있으면 청와대보다는 총리실을 통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청와대보다는 총리실이 감시와 견제의 눈초리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탓도 있지만 그의 존재도 한몫을 했다는 후문이다. 또 이 총리 스스로도 실무능력을 중시하고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그 조직에 '일을 잘하는 자기 사람'을 남의 눈치 안보고 소신껏 밀어넣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골프 파문의 핵심은 이 차관의 커넥션으로 모아지고

그러나 이 차관은 이제 자신의 처세술 때문에 총리와 함께 동반 사퇴할 위기에 처했다. 공사를 가리지 않고 '윗분'들의 심기를 파악하고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는 처세술로 차관 자리까지 올랐지만 이제는 그의 과도한 처세술이 화를 불러온 셈이다.

현재 3·1절 골프 파문을 둘러싼 핵심 의혹은 이기우 차관과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 김평수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의 '커넥션'에 모아지고 있다. 교직원공제회의 영남제분 지분 보유와 이들의 친분 사이에서 부적절한 함수관계가 존재할 개연성이 큰 탓이다.

이 차관과 김 이사장은 교육부에서 수십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사이다. 고향도 거제(이 차관)와 남해(김 이사장)로 같은 경남권인데다, 모두 9급 공무원에서 출발해 함께 교육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김씨를 자신의 후임으로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에 천거한 것도 이 차관이라는 후문이다.

이번 골프 파문에서 그가 이 총리에게 중개한 로비 의혹의 핵심 인물인 류 회장 역시 부산에서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정·관계에 진출한 영남권 인사들과 특히 교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교직원공제회의 영남제분 주식 보유와 주가 떠받치기에는 이 세 사람의 친분관계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있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는 총리를 지나치게 감싸려다 해서는 안될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버렸다. 국정홍보처의 한 간부는 "골프 파문이 불거진 뒤에 총리 공보수석 대신에 이 차관이 해명에 나선 것부터 일이 잘못되었다"면서 "이강진 공보수석에게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이 차관이 나서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다"고 말했다.

언론의 의혹 제기가 계속 이어지자 이 차관은 지난 7일와 8일 기자들과 만나 골프 로비 의혹에 대해 해명했지만, 그의 거짓 해명은 오히려 꼬리에 꼬리를 문 의혹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이 차관의 해명부터 일은 꼬였다

결과론이지만, 처음부터 사태를 안일하게 판단한 청와대가 그에게 해명을 맡긴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함께 골프를 친 의혹의 당사자가 한 말을 믿을 국민도 별로 없겠지만, 의혹의 당사자에게 해명을 맡기다보니 '총리의 남자'인 그는 거짓말로 숨기기에 급급했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적용하라고 만든 업무 매뉴얼의 기본인 '크로스 체크'가 전혀 안된 것이다.

시스템을 강조해온 참여정부에서 1월 말 차관 인사를 단행한 지 한달 반이 지나도록 아직 총리비서실장 자리가 공석이란 점도 이번 파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이 총리가 처세와 민원 해결에 능한 그를 대신할 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공식 비서실장이 없었기 때문에 '사설 비서실장' 역할을 한 이 차관의 개입으로 이 총리는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결국 '윗분'만을 섬기는 이 차관의 과도한 처세술과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총리의 남자'에 대한 이 총리의 지나친 의존이 '동반 낙마'의 화를 부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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