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명전, 돈 들면 문화재도 버리는가?

[고발] 서울시-문화재청, 보수작업 서로 미뤄

등록 2006.03.16 14:48수정 2006.03.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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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53호 중명전 (重明殿)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53호 중명전 (重明殿)이수앙

중명전(重明殿, 서울시 유형문화재 53호)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석조 궁궐 건물로 1900년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덕수궁의 별채로 지어졌으며, 처음 불린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붉은색 벽돌과 회색 벽돌을 쌓아올려 지은 2층의 석조 건물인 중명전은 주로 고종황제의 알현장이나 순종 결혼식 피로연 등 연회장으로 사용되었으며, 덕수궁이 화재로 소실(燒失)된 뒤 1907년 순종에게 황위를 물려줄 때까지 고종이 기거한 곳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전(殿)으로 영광을 누리기보다는 치욕의 역사를 견뎌야 했던 건물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한 장소가 바로 중명전이었으며, 조선총독부가 덕수궁을 축소하며 궁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1915년에는 외국인의 사교단체인 경성구락부(京城俱樂部)에 임대되어 1960년대까지 사교장으로 사용된다. 그 사이 1925년에는 화재가 발생해 외벽을 제외하고 전소되는 등 비운이 끊이질 않았던 곳이다.

개보수로 가려진 초기의 지붕
개보수로 가려진 초기의 지붕이수앙
광복 후 60년, 중명전의 아픈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명전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지난 1983년, 그러나 계속 민간인의 소유로 남아있었던 까닭에 민간기업의 임대 사무실로 사용되며 외관과 내부는 원형을 거의 잃을 정도로 변형되었다.

2002년 서울시는 중명전 구매를 위해 편성해 놓았다가 예산을 '투자가치가 없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취소했다. 서울시가 투자가치가 있는(?) 청계천 복원 사업에 몰두하자 결국 문화광관부가 나서서 2003년에 사들였다. 궁궐 건물이 다시 국가의 소유로 돌아오는 데에 1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지붕 보수공사로 훼손된 외벽
지붕 보수공사로 훼손된 외벽이수앙
국가에서 중명전을 관리하기 시작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지난 14일, 취재진은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는 중명전을 찾았다. 외벽엔 흰 페인트가 칠해져 원래 색을 찾을 수 없었고, 황제가 피로연을 열었을 정원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채 정동극장의 유료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내부 역시 오랫동안 민간 기업의 사무실로 사용되어 온 까닭에 원래 모습은 알 수 없었고, 다만 2층의 한 방에 합판으로 막혀버린 페치카만이 그곳이 황제의 집무실이었음을 전하고 있었다.


중명전은 100년이 넘은 건물이니 당연히 보수와 복원작업이 필요할 터인데 행정 기관에서는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실은 지난해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6억 원을 들여 보수 및 근대역사자료관으로 만들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었다.

그러나 총 30여억 원이 들어야 할 보수공사에 올해와 내년 예산이 추가로 편성되지 않아 지난해 11월 이전부터 공사가 중단되더니, 최근엔 공사를 위해 설치했던 외부 시설물을 철거한 상태다. 공사가 잠시 중단된 것이 아니라 공사를 끝냈다는 의미이다.


공사가 중단되고 버려진 쓰레기
공사가 중단되고 버려진 쓰레기이수앙
이렇게 될 때까지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 사이에는 어처구니없게도 두 기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서울시는 문화관광부에서 매입을 하고, 소유도 문화관광부로 되어있으니 서울시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고, 문화재청 역시 서울시 유형문화재이니 비용을 서울시에서 대라는 입장이다.

두 기관이 비용 문제에 대하여 사전 협의나 계약도 없이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자신들이 지정한 문화재에 대해서도 책임을 떠맡지 않으려는 서울시나 누구보다 문화재를 아껴야 하지만 '돈'의 논리로 문화재를 보고 있는 문화재청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서울시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수많은 문화재를 관리하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사를 시작할 때에는 우선순위에 올라가 있던 중명전이 무슨 이유로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그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는지 서울시는 설명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청 역시 법을 들먹이며 서울시에만 이 상황을 떠넘길 일이 아니다. 문화재청이 문화재에 보수와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고 뒷짐을 지고 있을 것이라면, 문화재청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는 말인가.

아무렇게나 방치된 중명전 지하
아무렇게나 방치된 중명전 지하이수앙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중명전 보수공사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미 철거해버린 외부철골부터 다시 설치해야 한다. 전체 공사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액수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엄연한 국민 세금이다.

결국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싸우고 있는 그 돈도 결국 국민의 돈이라는 얘기다. 그 돈으로 국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밥그릇인양 다투고 있는 두 기관은 이제부터라도 협력하여 중명전 복원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

자료조사를 하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한 문화재관련 사이트를 방문하였다. '홈페이지 내용에 대해 서울특별시가 모든 권리를 갖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곳에는 중명전의 소유가 '사유'라고 되어 있었으며, 중명전에 대한 설명 마지막에는 '현재도 임대사무실로 쓰이고 있다'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3년 전 문화관광부가 중명전을 인수한 것을 아직 모르고 있거나, 정보에 대한 수정도 '투자가치가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처럼 해당 기관의 무관심과 이익 다툼 속에 중명전은 언제쯤 국가 소유 문화재로, 서울시의 문화재로서 정당한 보수공사와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인가? 자신들의 '소유'와 '권리'를 찾는 만큼만 자신들의 의무와 책임에도 열심인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되길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이수앙 기자는 cpn문화재방송국 소속이며, 이 기사는 iMBC에 동시게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수앙 기자는 cpn문화재방송국 소속이며, 이 기사는 iMBC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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