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한 대학, 동일 학과 재학 '화제'

삼육대 김상래 교수 가족... 아빠부터 막내까지 신학 패밀리

등록 2006.03.17 15:11수정 2006.03.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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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를 시샘하던 꽃샘추위도 파도처럼 밀려가고, 살랑거리며 코끝에 묻어오는 봄바람에 캠퍼스는 어느덧 활력에 넘친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한 대학 교정에는 신입생들의 재기발랄한 발걸음이 봄의 길목을 더욱 싱그럽고, 활기차게 꾸며준다.


이러한 가운데 한 대학의 같은 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일가족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삼육대 신학과 김상래 교수 가족. 이들은 올해 막내 동영군이 신학과에 입학하면서 4명의 가족구성원이 모두 이 학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상래 교수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상래 교수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김범태
아버지 김상래 목사는 교수로 재직 중이며, 어머니 원준금씨는 지난 2004년 학사편입해 현재 마지막 학기를 수학 중이다. 딸 성이양과 아들 동영 군이 작년과 올해 잇따라 입학하면서 이 같은 '진기록'이 세워졌다.

아버지를 제외하면 어머니와 자녀들이 모두 동시 재학생인 셈이다. 이제껏 형제나 부부, 간혹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학교에 다닌 경우는 있었지만, 이처럼 일가족이 모두 한 대학의 동일 학과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

물론 신학과라는 학과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온 가족이 한 학과의 선후배이자 재학생이라는 사실에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라는 모습이다.

마지막 '주자'로 올해 입학한 막내 동영 군은 유학 중이던 부모를 따라 영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와 길을 개척하려는 중요한 시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고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부모의 권유와 판단에 따라 지난 2004년 귀국해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했다.


해외에서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과 자긍심을 한국땅에서 키워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 부부의 설명이다. 영주권까지 포기하고 고국땅을 밟은 동영군은 때문에 동기들보다 2년이나 빨리 대학에 들어왔다. 하지만 올해 대학입시에서 학과 수석을 차지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제 막 대학 새내기가 된 김군은 "아직까지 적응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라며 "어머니와 누나가 같은 학과 선배니까 수강신청이나 학교 분위기를 익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다"고 활짝 미소 짓는다.


2학년인 성이양은 아버지 김 교수로부터 히브리어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교수님으로서의 아버지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곧 "수업시간이나 교회일이나 가정에서나 매사 열정적이시기 때문에 크게 느낌이 다르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온 가족이 한 학과에서 스승과 제자로, 혹은 선배와 후배로 만나는 것이 혹시나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되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신학'이라는 한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에 오히려 힘을 얻는다"고 야무지게 말한다.

성이양은 특히 "아버지가 먼저 닦아놓은 길을 함께 걷게 되어 보람차다"면서 "조언이 필요할 때 명확하고 확실하게 대답해 주시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끔 교수와 제자의 관계로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 자리에서는 다소 어색하다고.

이야기를 나누며 환히 웃고 있는 김 교수 가족.
이야기를 나누며 환히 웃고 있는 김 교수 가족.김범태
이들 남매는 이 학교의 독특한 교육방침에 따라 '신학숙'이라는 기숙사에서 의무생활교육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온 가족이 함께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교정에서 만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갑기까지 할 정도다.

더욱이 아버지가 신학숙 생활관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단체교육의 특성상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으면서도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있어 이들 가족은 매일 '이별 아닌 이별'을 겪고 있는 셈이다.

졸업반으로 '최고참'인 어머니 원준금씨는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다니던 중 학부로 편입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선수과목을 이수하다보니 기반도 없이 거꾸로 공부하는 것 같아 아예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기로 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올 여름 졸업을 앞두고 있는 원씨는 어린 학생들과의 경쟁에서도 지난 학기 학과 수석을 차지했을 만큼 성적도 빼어나다.

지금까지 김 교수로부터 헬라어, 히브리어, 성서해석학 등 6과목을 수강한 원씨는 "남편의 수업이 지루하지 않고 늘 새롭고 재미있다"며 "설교나 강의가 항상 기대된다"고 '제자'로서 만족감을 보였다.

수강생들이 직접 기록에 의한 강의를 평가하는 시대에 이처럼 가족이 '학생'으로 수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가장 냉철하고 객관적인 피드백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김 교수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 김 교수는 "내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교수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진단해준다"며 가족들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가족이 모두 한 학과의 교수이자 학생이다 보니 남모를 불편함도 많다. 강의시간이나 학과활동은 물론, 친구들과의 생활에서도 자녀들이 혹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어쩌나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솔직한 부담이다. 또 본인들의 의지와 관계 없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목의 대상이 되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모두가 한 전공과목을 공부하기 때문에 필요한 책을 찾다보면 누군가 먼저 들고나가 정작 본인이 필요할 때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시험기간이 되면 아버지께 출제문제의 '힌트'를 얻어낼 것을 요구하는 친구들의 애교 섞인 부탁도 이들 가족만이 겪는 에피소드다.

김 교수 부부는 성이양과 동영군이 앞으로 철저한 자기관리와 훈련을 통해 사회에 유익이 되고, 타인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길 기도하고 있다. 또 과거 자신이 가졌던 경험과 도전을 넘어서는 '청출어람'의 제자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늘 건강하고 매사 지혜롭게 판단하는 현명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염려이자 바람이기도 하다.

자녀들 역시 "우리 인생의 진로를 결정짓기까지 기독교인으로서, 학자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부모님이었다"며 "아직 어리지만 삶에 대한 확신과 의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며 지지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꽃피우는 이들 가족의 모습이 마치 아침안개를 걷으며 비쳐오는 투명한 햇살처럼 환히 빛나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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