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큰사진보기 ▲봄이 오는 섬진강윤재훈 프롤로그(prologue) 너는 도화(桃花)을 보았는가. 나는 도화를 보았다. 섬진강가를 따라 이 시대의 노자가 되어 어질어질 걷다가 왔다. 8차선의 넓은 도로가 우리들의 집 앞으로 지나가고, 자고 나면 앞산이 사라지는 하, 수상한 시절이지만, 그래도 섬진강의 상류는 우리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MP3 흔들며 소녀들 몇 내 앞을 지나가고, PC방이나 성인 오락실을 가면 사람들로 담배 연기로 꽉 차지만, 섬진강에는 아지랑이 피어나고 대밭이 펼쳐져 있고 사람들은 자유로웠다. 강은 아직 띄엄띄엄 얼음에 쌓여 있었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흐르다가, 때로는 집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는 아낙의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오래 전에 인적이 끊어지고 반쯤은 기울어진 빈집들. 휑하니 뚫려 심하게 흔들리는 창호지들의 소리만이 배낭 하나 메고 찾아온, 그래도 비교적 세상의 짐이 가벼운 나그네를 반겨주었다. 쓰러진 문짝들, 담장마저 허물어져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이 집을 스쳐간 옛사람들을 기다리는지 삐그덕 삐그덕 대문 소리만 가녀리다. 그렇게 섬진강을 신열을 앓듯이 걷다가 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박인희씨의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고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라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봄빛에 취했는지 막걸리에 취했는지, 촌로(村老)들 몇, 노래 소리에 맞춰 봄볕 내리는 버스 창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렇게 섬진강을 따라 병술년의 봄은 내리고 있었다. 그 눈 시린 봄빛, 백두산으로 떨어진 빗방울이 남쪽으로 흐르면 압록강 물이 되고, 중국 땅으로 스미면 황하와 몸을 섞을 것이다. 어린 시절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에서 목욕을 하면서, 이 물은 어디에서 흘러오는 것일까 하고, 산 쪽을 바라보며 아득한 생각을 품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금방 잊었지만, 그것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끔씩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 어른이 된 지금 막연하게 품었던 그 꿈을 알아보고 싶어, 섬진강 시원(始原)을 찾아 나섰다. 큰사진보기 ▲데미샘 가는 길윤재훈 배낭 하나 메고 노령과 소백의 품 사이로 스며들었지만, 섬진강의 시원(始原)은 갈수록 계곡 속으로 몸을 숨겼다. 마치 도망가는 뱀처럼 산 속으로 산 속으로만, 꾸불꾸불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찾아간 그 산의 속내 어디쯤은 간밤에 내린 눈으로,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큰사진보기 ▲눈 부신 설경윤재훈 아직 누구에게도 인적을 내주지 않은 그 신생(新生)의 아침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첫 선물이었다. 큰사진보기 ▲'눈 쌓인 길 함부로 가지 마라, 따라오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윤재훈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그 길을 걸으면서 "눈 쌓인 길 함부로 가지 마라, 따라오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라는 서산 대사의 말을 읊조리며,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가 이 아침 눈 내리는 산을 찾아드는 나그네와 무슨 정분이 맞았는지 흥얼흥얼 하여진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헛된 맹세도 없이 봄날 꿈 같이 따사로운 저 무욕(無慾)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 곳이 어디 메냐 강남 길로 해남 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그렇게 흥얼거리며 얼마간을 오르자 거짓말처럼 옹달샘이 하나 나타났다. 큰사진보기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윤재훈 큰사진보기 ▲데미샘, 옛 팻말윤재훈 그것은 마치 매일 가는 우리 마을 뒷산의 옹달샘처럼 다소곳이 놓여 있었으며, 어린 날 그렇게 그리던 소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우리는 한참동안 들뜬 아이들처럼 서로 즐거워했으며, 하늘을 향해, 태고시대부터 이 산에 깃들어 사시는 산신을 향해, 고천(告天)를 올렸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게 될 그 기나긴 길에 대한 안부를 전하면서. (계속 이어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추천2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글 윤재훈 (yunjaehoon) 내방 구독하기 약 5년여 세계오지 배낭여행을 했으며, 한강 1,300리 도보여행, 섬진강 530리 도보여행 및 한탄강과 폐사지 등을 걸었습니다. 이후 80일 동안 5,830리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였습니다. 전주일보 신춘문예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시를 쓰며, 홍익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삼귀의三歸依'가 아닌 '이귀의'만 하고 싶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단독] 김태열 "이준석 행사 참석 대가, 명태균이 다 썼다" [단독] "가면 뒈진다" 명태균, "청와대 터 흉지" 글도 써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AD AD AD 인기기사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시인이 따라간 섬진강, 530리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국감 골프' 민형배 의원 고발당해…"청탁금지법 위반"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시퍼렇게 날 선 칼 갈고 돌아온 대통령, 이제 시작이다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