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판에 넣고 굳히기 직전의 상태. 깔려 있는 면 보자기로 꼭꼭 싸서 무거운 것으로 눌러 놓으면 두부가 된다.오창경
여기서부터 나의 첫 두부 만들기 도전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갈아온 콩을 가져다 놓고 김부자 아줌마한테 전화부터 걸었다.
"지금은 못 가는데. 오늘 저녁에 시아버지 기제사여. 그래서 내가 최영숙이한테 먼저 가보라고 했으니까 둘이서 불이라도 먼저 때고 있어."
겨우내 '두부 한 번 만들어 먹자'고 노래를 불렀던 김부자 아줌마였는데, 하필이면 기제사가 걸렸단다. 가마 솥 하나만 믿고 콩부터 담갔던 '나의 첫 두부 만들기 도전'은 그렇게 시작부터 신통치가 않았다.
최영숙 아줌마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해가 완전히 기울고 달빛이 우리 집 작업장 지붕 위를 그윽하게 비출 때였다. 가마솥에 우유처럼 뽀얗게 갈아진 콩물을 붓고 아궁이에 마른 솔가지 넣고 불을 붙였다. 두부 만들기의 첫 과정에 드디어 접근한 셈이었다.
"물을 얼마나 더 잡아야 하지? 실은 내가 스물다섯 살 때 한 번 만들어 보고 오늘이 처음이라…."
"그럼 아줌마도 두부 만드는 거 잘 모르는 거잖아!"
"만드는 거야 알지만, 하도 오래돼 놔서 기술이 없는 거지. 부자 언니가 9시쯤에 온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그때까지 불이나 때고 있자고. 그런데 두부 짜는 자루랑, 두부 누르는 상자나 면 보자기 같은 거는 다 있남?"
"있기는 있는데 한 장씩밖에 없거든요. 콩을 10Kg씩이나 갈았더니 두 판도 더 나올거 같네요."
"그럼 면보자기도 두 장이 필요한데…."
"마침 우리 애들 기저귀로 썼던 천이 있으니까 내가 얼른 바느질해서 만들어올게요."
그렇게 해서 나는 한밤중에 장롱 깊숙이 처박아 놨던 아이들 기저귀를 찾아서 바느질을 하는 소동을 벌이고, 최영숙 아줌마는 가마솥에 불을 지폈다. 내가 면 보자기를 만들어서 작업장으로 나왔을 때, 솥에서는 심상치 않은 냄새가 진동했다. 최영숙 아줌마는 혼자 가마솥 콩물이 타지 않게 저으며 아궁이의 불까지 보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아이고 탄내가 진동하네. 한 사람은 안 타게 계속 휘젓고 한 사람은 아궁이를 보고 해야지 뭣하고 있댜!"
드디어 김부자 아줌마가 나타나 우리의 우왕좌왕 두부 만들기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듯했다.
"제선 엄마는 불 그만 때고 두부 짤 채비 좀 갖춰줘."
그런데 김 부자 아줌마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형님 안 주무셨슈?… 간수는 얼마나 둘러야 된대유?… 그리고 물을 더 잡아야 한대유? 안 잡는 거래유?"
전화의 상대는 30년 동안 두부 장사를 해서 이름조차 '두부집'으로 불리는 동네 할머니였다. 김부자 아줌마 역시 두부를 만드는데 경험이 부족해서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두부를 만들겠다고 모인 세 여자가 모두 두부 먹는데 눈이 멀어서 만들기를 우습게 봤다가 헤매고 있었던 것이었다. 두부의 고수한테 한바탕 코치를 받은 김부자 아줌마를 중심으로 우리의 한밤중 두부 만들기는 계속됐는데….
끓인 콩물을 짜던 자루가 낡아 찢어지는 통에 우리의 두부 만들기는 다시 한번 난관에 부딪혔다. 서로 경험이 없어서 간수의 양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느라, 너무 시간을 끌어서 뜨끈한 순두부는 한 숟가락도 맛보지 못했다. 간신히 두부를 굳히는 틀에 앉혀 놓고 나니 자정을 넘어 새벽 1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만든 두부의 맛은 과연…. 입맛을 돋우는 은은한 그을음 내가 아니라 아예 탄내가 나서 먹기 쉽지 않았고 간수의 양 조절에도 실패해 두부가 굳은 떡만큼이나 딱딱해져서 오래 씹어서 먹을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두부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나서 두 판이나 만든 두부로 동네잔치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탄내가 좀 나기는 나네. 그래도 맛있네. 요즘에 국산콩으로 가마솥에 쑨 두부를 맛보기가 어디 쉬운가."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말로 우리 세 여자의 '실패작 두부'에 대해 격려를 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기죽지 않고 다음 기회에는 정말로 맛있는 두부를 만들어 다시 동네잔치를 하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전원주택 라이프 4월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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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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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에 눈먼 주부들의 우왕좌왕 '두부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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