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돈기
산(山)은 한자어이지만 순수한 우리 토박이말처럼 들린다. 산을 이루고 있는 흙이나 바위, 혹은 풀과 나무와 새와 꽃들이 모두 하나같이 토박이말이어서 그럴까? 그보다는 산의 순수하고 넉넉한 품성 때문이리라. 산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의 삶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물질주의의가 팽배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산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세속의 때를 벗기 위해 산을 오르기도 한다.
옛사람들에게 산은 생활의 공간이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은 옛 삶 속에서는 생활의 공간이었다고 내게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지리산이 함께 떠오른다. 그의 말을 빌리면, '산의 모든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길이었다. 마을들이 산자락에 붙어 생겨나고 생필품과 에너지가 나무로부터 나오던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두 다리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민초들에게는 마을과 마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일상의 교통로가 바로 산길이었다.'
시인 박두규(50세). 그는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나는 그를 산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산을 찾는 마음으로 그를 찾아갈 때도 있다. 그에게서 그리운 산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산을 닮은 그가 <지리산-고라니에게 길을 묻다>(삶이 보이는 창)를 펴냈다.
다정한 귓속말로 소곤소곤 들려주던 것들이 활자화 되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진 것이 참 반갑다. 그의 가슴에 켜켜이 쌓인 지리산 이야기는 혼자서만 전해 듣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우리 모두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