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 음악은 철들기 싫어하나봐"

[인터뷰] 포크송 부활 기도하는 '노래하는 시인' 이필원

등록 2006.03.22 12:14수정 2006.03.2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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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원씨는 '모닥불'의 가수 박인희와 함께 1970년대 국내 최초의 혼성듀엣 '뚜아에무아'로 활동하며 서정적인 '약속', '추억' 등의 곡으로 폭 넓은 사랑을 받았고 포크송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지금도 포크송 가수들에게 영원한 형님으로 불리고 있다.

'한류'로 대변되는 철저한 상업주의 문화 속에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멀어져가는 이필원. 그가 환갑을 맞이한 나이에 그간 발표되지 않았던 곡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반과 시집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필원씨와 약속한 장충동 녹음실을 찾아가는 길 위에는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도로를 환히 비치는 걸 보며 "제법 저녁시간이 돼가는구나"라고 느낄 때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머금으며 기자를 마중 나온 이필원씨가 보인다.

"어서 오세요! 찾아오기 힘들었지요?"하고 밝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가 심혈을 기울여 작업 중인 <내 영혼이> 음반의 막바지 후반 작업이 한창인 녹음실로 들어섰다. 녹음실로 들어서자, 오페라 <투란도트>로 이미 기자에게도 친숙한 테너 김현동씨가 부르는 내 영혼이라는 곡이 흘러나온다.

a 이필원

이필원 ⓒ 이필원

날 사랑했단 말이냐, 내가 사랑할테니
날 위해 울지도 마라, 내 영혼이 울고 있구나.
안개 낀 새벽녘에 이별은 계속되었다.
네게 박힌 그 못은 내 영혼의 못질이었다.
서러워 말아라, 외로워 말아라.
네 입김이 서려있구나.
사랑 말아라, 외로워 말아라.
내 영원히 사랑 할테니.
- 이필원 시집 중 '내 영혼이'


이필원씨는 음반 작업과 동시에 두 번째로 출간하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내 영혼이'를 테너 김현동씨가 자신을 위해 부르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나이가 드니까 소리는 안나오고, 소리에 대한 욕심은 많아지고, 참 힘들어요! 욕심이 많아서 그런거지, 아직도 내 음악이 철들기 싫어하나봐, 허허"라며 커피 한 잔을 건넨다. 하긴 환갑의 나이에 새로운 음반을 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하고, 그가 녹음실로 들어간 후, 그가 건넨 커피를 마시며 잠시 그의 음악에 빠져본다.

보릿고개 밑에서 어미가 울고, 보릿고개 밑에서 아이가 운다. 가거라, 가거라 보릿고개야, 가거든 오지 말아라….
- 음반 수록곡 '보릿고개' 중


a '내 영혼이'를 부른 테너 김현동씨와 이필원씨

'내 영혼이'를 부른 테너 김현동씨와 이필원씨 ⓒ 김영우

낡은 청바지, 야상(군용 외투), 귀까지 덮은 장발머리 차림새에 통기타 하나 둘러매고 소주 한 잔 마시며 노래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나 행복했던 사람들. 기자가 지금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임을 감안하면, 청바지에 통기타 하나 벙거지처럼 둘러메고, 낭만과 자유를 음유했던 그때의 젊은 세대는 지금 우리네 아버지와 같은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온 세대가 아닌가. 그러니 우리 아버지의 세대와 같은 시대를 음악인으로 살아온 이필원씨 역시, 그때는 우리네 아버지의 아버지들로부터 '딴따라' '광대' 내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젊은이'들로 불리며 예나 지금이나, 시대불변의 진리(?)로 여겨지는 말인 "요즘 젊은 것들 큰일이야!"로 표현되는 골칫거리쯤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삽과 괭이를 들고 새마을운동을 전개하고 반공을 국가이념으로 삼고 정해진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이 제재를 당했던, 그래서 예술을 위한 예술적 가치보다는 국가의 통치이념에 따라 노래하고 연기해야 했던 시대. '어쩌면, 그렇게 암울했던 시대였기에 그들이 불렀던 노래가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쯤 스튜디오에서 나온 이필원씨가 기자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미안해요, 손님 모셔놓고 제 일만 했네요. 우리 이제 이야기 할까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이필원씨에게 '새로운 음반을, 그리고 시집을 발간하게 된 동기와 몇 번째 음반인지'등의 상투적인 질문을 하려니 기자 자신이 머쓱해진다. 취재라는 제한적인 대화의 틀을 깨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쪽으로, 그래서 그 이야기를 그대로 기사로 옮기는 것이 솔직하리라 판단되었다.


그는 음반시장이 불황인데 어떻게 음반 출시를 마음먹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팔려는 욕심에 음반을 내려고 한다면 내가 어리석은 거죠. 이제 내 나이가 환갑인데 뭐 그리 돈에 욕심이 있을까요? 그리고 제 음반을 살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웃으며)나라도 안 살 텐데 뭘, 음악 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남는 게 뭐가 있을까요? '내가 음악인이이고 가수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음반 아닌가요?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음반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서전의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족하지만 이번 제 음반은 그간 저를 이끼고 지켜주셨던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들고 있어요, 나눠 드려야죠. 안타깝게도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이게 다인걸요 뭐"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화(대중문화)는 변화하면서 발전기에, 그 시대의 문화산업을 주도하는 장르 역시 변화하고 또는 회귀하는 것이잖아요. 근데 한가지 아쉬운 건 너무 빨리 잊는다는 거죠. 우리 국민들은 너무 빨리 잊어요. 아니, 대중매체가 국민들을 너무 빨리 잊게 하는 것이죠. 이번 제 음반으로 인해 많은 후배가수들에게 자그마한 용기라도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거 같아요"라는 말로 70, 80년대 이필원과 뚜아에무아로 시작하여 90년대 김광석이라는 가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대중문화 시장의 한 켠으로 물러난 포크 음악의 부활에 대한 기대와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a 음반, 시집 <내 영혼이>를 발매하는 이필원씨

음반, 시집 <내 영혼이>를 발매하는 이필원씨 ⓒ 김영우

이미 노래하는 시인으로도 알려진 그는, 음반과 동일한 이름의 <내 영혼이>라는 제목의 시집도 발간한다.

"쑥스럽지만 저는 시가 좋아요. 뭐 그리 (시를) 잘 짓지는 못하는데, 그냥 좋아요 시가… 음악을 선율의 유희라고 한다면, 시는 언어의 유희잖아요? 이번 음반에도 제가 쓴 시를 곡으로 만든 게 몇 곡 돼요. 그 중에 타이틀곡인 '내 영혼이'는 평소 절친한 후배인 테너 김현동씨가 불러줬어요. (웃으며) 내가 성악을 못하잖아요. 처음에는 내가 불러볼까 했는데, 이 곡은 성악가가 부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평소 가까이 지내는 후배 김현동씨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기꺼이 녹음에 참여해 주더군요. 내가 쓴 시를 유명한 성악가가 불러준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감사할 따름이죠."

그에게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물었다. "아까 내가 포크음악이 대중음악 주류에서 밀려났다고 이야기 했잖아요. 그러면 할 일이 없어서 놀아야 하는데, 근데도 참 바빠요. 뭐가 그리 바쁜지… 이제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이필원이라는 사람을 있게 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만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내가 드릴 때가 됐잖아요. 후배 가수들한테도 도움이 돼야 하고, 사회에도 보탬이 돼야 하고… 바쁘게 살아야죠."

그의 음반 타이틀곡 '내 영혼이'를 부른 테너 김현동씨의 말을 빌리면 그는 해마다 연말이면 회장으로 있는 포크송연합회 가수들과 함께 불우이웃 돕기 자선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뒤에서 보이지 않게 늘 앞장을 선다고 한다. 그래서 이필원을 아는 사람이면, 그의 소박함과 겸손함에 자연히 머리를 숙인다고 한다.

오는 4월 7일 그는 후배 가수 이동원, 테너 김현동씨와 함께 백혈병 환자 치료비 마련을 위한 자선음악회에 무상으로 출연하여, 자신의 음반과 시집을 기증한다고 한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서려하자 "장충동에 왔으면 족발을 먹어야지"라며 한사코 저녁을 사겠다고 한다. 겨우 원고 마감이라는 핑계(?)를 둘러대고 나오는 기자의 귓가에 그의 몇 마디가 떠나질 않는다.

"아직도 내 노래는 철들지 않았어요!" "사랑과 영원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에요. 그것은 신(神)께서만 알고 쓸 수 있는 언어에요!"

봄이라는 계절이 왔다. 사람마다 각기 나름의 봄날을 맞이하겠지만,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이필원씨와 많은 대화를 나눈 오늘이 기자에게는 한참을 잊지 못할 봄날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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