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신문> 인터넷판에 실린 와타나베 회장의 사진과 인사말.<요미우리신문> 인터넷판
와타나베 회장의 발언을 보도하는 24일자 한국 언론의 시각은 약간의 기대감 내지는 긍정적 인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국내 언론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을 보면, 그 같은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요미우리 신문 회장 “일본은 과거사 진정한 사죄 필요”
와타나베 회장 “고이즈미, 시시한 사죄로 과거사 덮어”
와타나베 회장 “日 과거사 진정한 사죄 필요”
일 보수언론 대표, “전쟁 책임 규명해야”
위와 같은 기사 제목들을 보면, 일본이 이제까지 불충분한 사죄를 하였기 때문에 와타나베 회장이 그 점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그가 전쟁책임 규명과 과거사 사과 문제를 분명히 매듭지을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와타나베 회장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아야
그러나 발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발언 속에 다른 의도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발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 있다.
“승전 가능성이 없는데도 전쟁을 계속한 도죠 히데키 전 총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군 참모들이 전범으로 재판받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참모들이 벌 받지 않고 전후에도 살아남았는데, 어떤 형태로든 이들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위와 같은 발언 속에는, 지금 일본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란의 주요 쟁점 가운데 2가지가 담겨 있다.
첫째 쟁점은 전쟁책임의 개념이다. 전쟁책임의 개념을 두고, 일본 내에서는 ‘침략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책임’이라고 규정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전쟁에서 패배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고 규정하는 쪽이 있다.
둘째 쟁점은 전쟁책임의 주체다. 국왕(소위 ‘천황’)이 전쟁책임을 질 것이냐, 국왕 밑의 참모들이 책임을 질 것이냐, 아니면 일본국민 전체가 질 것이냐 하는 대립이 있다.
이러한 일본 내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와타나베 회장의 발언을 다시 살펴보면, 그의 발언을 두고 한국 언론들이 ‘흥분’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전쟁책임을 말하는 것인지…
위에 소개된 바와 같이, 그는 “승전 가능성이 없는데도 전쟁을 계속한 도죠 히데키 전 총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이라고 했다. 와타나베 회장이 최근 주변국들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의 인식 속에서는 전쟁책임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변국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촉구하는 사람이라면, 전쟁책임의 개념을 ‘침략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책임’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승전 가능성이 없는데도 전쟁을 계속한 ……”이라고 운운함으로써, 듣기에 따라서는 전쟁책임을 ‘전쟁에서 패배한 것에 대한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고 있는 것이다.
당시 총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그리고 그는 전쟁책임의 주체와 관련하여 명백히 반역사적인 관점을 보이고 있다. “도죠 히데키 전 총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군 참모들이 전범으로 재판받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그의 발언은 국왕의 전쟁책임을 은폐하려는 의도를 명백히 담고 있는 것이다. 군 참모들의 전쟁책임을 규명하는 데에 향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이 집중되면, 당시 히로히토 국왕의 전쟁책임은 자연히 묻힐 수밖에 없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일본은 내각책임제 국가인데 국왕이 왜 전쟁책임을 지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아소 다로 발언은 ‘히로히토 일병 구하기’”(<오마이뉴스> 3월 10일자)라는 기사가 나간 뒤, 일부 독자들이 필자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담은 메일을 보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