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 그립습니다

콘크리트 담 대신 돌담은 어떨까요

등록 2006.03.30 14:48수정 2006.03.3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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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돌담에 핀 하얀 제비꽃
흙 돌담에 핀 하얀 제비꽃조태용
담에도 꽃이 피는 나라가 있을까요? 아니 그런 담이 있기는 있을까요? 오래된 콘크리트 담에도 어렵게 피어난 들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처연한 모습이 아닌 응당 피어야 하는 곳에 피어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꽃이 피어나는 담이 있기는 하는 것일까요?


제비꽃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식물이 자라 화단처럼 보인다.
제비꽃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식물이 자라 화단처럼 보인다.조태용
햇살 좋은 오늘 아침 구례군 문척면의 섬진강 둑 넘어 마을 돌담에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꽃의 이름은 봄의 전령사 제비꽃입니다. 돌과 돌 사이를 연결한 흙에 자리를 잡고 소담하게 피었습니다. 주변을 살펴 보니 여러 가지 풀들이 함께 있어 담장은 작은 화단처럼 보였습니다.

매화꽃이 예쁘게 핀  골목길
매화꽃이 예쁘게 핀 골목길조태용
몇 년 전 일본에 일을 때 일본 주택가 앞에 놓인 화분을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땅값 비싼 나라에 사는 일본 사람들이 집 앞을 화단처럼 가꾼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집 앞을 화분으로 예쁘게 꾸며 주니까, 마을 전체가 화단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돌담에 핀 제비꽃 풍경은 전혀 다른 감회를 주었습니다.

돌담에 핀 분홍제비꽃
돌담에 핀 분홍제비꽃조태용
일본의 주택가 꽃이 사람에 의해 화분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자라는 반면, 한국의 돌담에 피어난 제비꽃은 열려 있는 공간에서 그리고 치열하게 자신의 힘으로 커가는 모습을 보니 화분 속의 꽃과는 사는 모습이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감동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돌담이라는 인간이 만든 공간에 자연이 그대로 들어와 버린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돌틈사이에서 피어난 제비꽃
돌틈사이에서 피어난 제비꽃조태용
더구나 돌담에 소담하게 피어난 꽃을 보니 그 집에 사는 사람들도 왠지 정다운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밤새 지리산을 넘어온 아침햇살이 가득하게 돌담으로 쏟아지고 그 돌담에는 하얀, 분홍의 꽃들이 피어납니다. 그 담 위에는 소복하게 사철 꽃이 핍니다. 여러분이 이런 집에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흙과 돌이 조화를 이룬  돌담
흙과 돌이 조화를 이룬 돌담조태용
한때 담장을 낮추는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덕분에 담장을 없애는, 집도 있고 관공서나 학교도 많습니다. 안과 밖을 구분하지 말고 서로 소통하자는 뜻도 있지만 어쩌면 담장으로는 그 안에 들어가려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있으나 마나 한 담장은 없애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사실 담장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힘이 듭니다. 예전엔 담이 있으나 없으나 이웃하고 소통하고 친하게 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담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겠죠. 그렇지만 보기 싫은 콘크리트 담장들이 없어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저는 꼭 담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 고유의 돌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돌과 흙으로 만든 담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화재라고 해야 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친환경적입니다. 돌과 흙으로 만들어서 천 년이 지나도 지탱할 수 있으며, 단 하나의 환경오염물질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더불어 돌담은 이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자라게 합니다. 그것은 돌담이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여유와 흙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뿌리 하나 뻗기도 힘들도록 한 치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은 견고한 콘크리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돌담은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자연의 돌로 흙으로 돌아가면 되기 때문에 폐기물을 만들어내지도 않습니다.

돌과 돌을 이어주는 흙
돌과 돌을 이어주는 흙조태용
우리 전통 담의 또 하나의 모습은 울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나무를 심거나 대나무로 엮은 것을 말하는데 속이 보이는 담을 말합니다. 가장 친환경적인 담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과 황토가 만들어내는 돌담의 따뜻한 풍경은 또 다른 감성을 자극합니다.

빛 잘 드는 돌담은 이웃 아낙들과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의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고, 나이든 어르신들이 노동으로 지친 허리를 기대며 담소를 나누는 든든한 받침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고 노래한 김영랑 시인이 바라본 돌담이 바로 이런 돌담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돌담은 다시 쌓으려면 콘크리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용이 들어가는 부담스러운 담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남아 있는 담이라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오랫동안 유지되고 보존되어 돌담에서 다양한 꽃들이 피어서 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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