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 시인 생가강제윤
4·19가 다가오면 생각 나는 노래. 진달래 꽃만 보면 웅얼거리는 그 처연한 노래. 진달래. 이영도 시인은 시조 시인 이호우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청도의 끝자락, 밀양과 경계 지점, 유천 내호리에 이영도 시인의 생가가 있다. 이승과 저승, 어느 길목으로 다들 떠나고 시인의 옛 집에는 재종 올케, 육촌 동생의 아내 혼자 살고 있다.
시인의 생가 가는 길에 검문을 받았다. 복사꽃 환한 유천 검문소. 기소 중지자를 잡기 위한 검문이었지만 다행이 나는 잡히지 않았다. 나는 죽음의 기소 중지자인 동시에 삶의 수배자다. 남매 시인의 시비 아래로 비파강이 흐른다. 비파라는 단어는 언제나 신비롭다. 지금쯤 내 고향집의 비파 열매들도 익어 가고 있을 것이다. 날이 흐리다. 해가 지려는가. 꽃시절인데, 꽃 피는 것이 왜 이다지도 서러운 것일까. 목이 메인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졌으면 좋겠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 진달래)
요즈음 청도는 온통 환하다. 진달래만이 아니다. 여기저기 꽃등이 켜져 있다. 이 산 언덕에도 복사꽃등, 저 산 비탈에도 복사꽃등, 드문드문 살구꽃등, 배꽃등, 싸리꽃등. 어둠을 밝히는 것이 등이라면 생명을 밝히는 것은 꽃이다. 우리 누추한 삶의 한 때를 환히 밝혀주는 꽃.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복사꽃이다. 논과 밭, 산 등성이까지 청도에서 복숭아 나무가 심어지지 않은 땅이란 없다. 곡식보다 과일.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곡식이 귀하던 시절, 그 때는 그늘이 곡물에 해롭다 하여 밭가의 나무들이 좀 커진다 싶으면 모조리 베어냈었다. 과일나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에 유실수를 심은 것은 아무래도 잘한 일이다. 경사가 급한 언덕이나 산비탈 땅에도 예외 없이 과일 나무가 심어져 있다. 어제의 가난이 송곳 꽂을 틈도 없더니 오늘은 송곳 꽂을 자리만 있어도 유실수를 심었다. 복숭아, 자두, 배, 감나무들. 지금은 밑둥이 굵고 튼실하다. 십수 년은 족히 됐겠지. 키우고 가꾸느라 평지보다 몇 배는 품이 들었을 것이다. 거기서 탐스럽고 단 과실이 거두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