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남성과 다르지 않다

[서평]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등록 2006.04.21 20:41수정 2006.04.2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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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 책세상

여성과 남성은 같은가, 다른가? 만약 다르다면, 그 다름으로 인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합리적인 것인가, 불합리한 것인가? 급진주의적 여성주의나 문화적 여성주의가 성별간의 다름을 강조한다면, 자유주의적 여성주의는 인간으로서의 같음을 강조한다.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인간으로서의 유사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여성주의의 초기 저작인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 역시, 남녀가 다르지 않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한다.

1869년에 출간된 <여성의 종속>은 뉴질랜드가 여성의 투표권을 최초로 인정하던 1893년보다 24년 전에 나온 책이다. 영국은 1928년에야 여성 투표권을 인정했으니, 밀의 여성 투표권 주장은 그의 생전에는 터무니없는 말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그가 여성의 투표권 인정을 주장한 이유는 바로 평등사상이다. 인간 사회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주종관계에서 평등한 관계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여성과 남성은 평등해져야만 한다.


밀은 남녀평등을 주장하기 위해서 여성의 능력을 증명하려 노력한다. 만약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보다 부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차별은 정당할 수 있겠지만, 단 한 명의 여성이라도 어떤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면, 성별을 이유로 해서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뛰어난 통치능력을 보였던 여왕이나, 어린 왕을 대신해 섭정을 했던 여성들을 예로 든다.

여왕과 같이 뛰어난 여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보다 부족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만약 어떤 남성보다 어떤 여성의 능력이 더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성별 때문에 남성이 사회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기회를 박탈당한 그 여성 당사자에게만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여성이 사회를 위해 일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사람들에게도 손실이며, 그 여성과 경쟁함으로써 경쟁자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을 고용주에게도 손실이 된다.

또한 남녀관계가 불평등하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출신이 아니라 오직 행위만이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성, 여성이라는 출신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나 행동 영역이 결정된다면, 사회에서 정의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밀은 현실에서 여성의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거나, 다른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상당부분 교육과 생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은 독립적 존재로 성장하도록 양육되지 않았고,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있을 만한 여력도 없는데, 집안일과 사교를 여성이 전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여성이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고, 집안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여성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된다.

하지만 밀은 남성이 여성의 일을 분담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상당수의 남성이 여성을 해방시키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에게 종속된 상태에 있는 여성이 곧바로 자신의 해방을 주장하는 것은, 그러한 의식을 가지는 것도 어렵고 행동으로 옮기기에도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행동한다면, 그의 주인인 아버지나 남편은 이를 쉽게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종속>이 출간된 지 137년이 지났다. 여성이 투표를 한다는 것은 많은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의 대표권이 조금씩이나마 실질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가 집무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오랜 간격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종속>의 많은 주장들은 아직도 어색하지 않다. 훨씬 더 뿌리가 깊은 남성중심적 가치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평등이 과연 여성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서병훈 옮김, 책세상, 2006, 5900원

덧붙이는 글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서병훈 옮김, 책세상, 2006, 5900원

여성의 종속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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