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얀 꽃의 이름은 무엇인고?

등록 2006.04.23 19:38수정 2006.04.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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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화초에 빠졌을 때, 꽃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반드시 한 차례씩 들러든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어느 한때, 나는 전혀 새로운 꽃을 하나 보게 되었다. 둥근 이파리들 사이에서 초록의 대궁이 길게 뻗어 올랐고 그 절정에 단아한 하얀 꽃이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을 발견하고는 숨이 멎었다.


‘저 꽃의 이름은 무엇일까?’

제라늄
제라늄정명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것은 시어로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의 현실 속에서도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름을 모를 때는 그 만큼 관심이 덜 가게 된다. 그러나 가끔은 이름을 모를 경우 오히려 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궁금해 죽겠는 존재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이 꽃 또한 그러하였다. 나는 당장 꽃집 주인에게 화초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건 제라늄이에요.”
“아, 그렇군요.”

제라늄, 제라늄. 예전에 읽었던 서양 소설들에서 제라늄 향기 어쩌고 하는 대목들이 기억났는데 그 제라늄이란 말이었다, 이 하얀색 꽃의 정체는.


이 하얀색의 제라늄은 줄기가 제법 실한데도 가격이 아주 저렴했고, 집에 가져와서 꽃 화분에 옮겨 심으니 인물이 금세 훤해졌다. 곁에 두고 보니 이 제라늄이라는 화초는 봉오리가 맺기 무섭게 꽃이 피면서도 오래가는 장점이 있었다. 날 수를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화무십일홍’의 허무는 넘어서는 듯했다.

이 하얀 제라늄을 시작으로 나는 뜬금없이 ‘하얀 꽃’의 매력에 빠졌다. 꽃이라면 지당 타는 듯이 붉든가, 노랗게 강렬하든가, 보랏빛 고혹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지 흰색이 웬 말이냐. 그런데 이 흰색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코스모스도 흰색이 아름다웠으며 베고니아도 치자도 타래난초도 하얀색이 아름다웠다.


사진속의 제라늄은 며칠 전 한차례 시련을 맞았다. 다름 아닌 이웃집 갓난쟁이 꼬맹이가 저도 보는 눈이 있었던지 아차 하는 순간 꽃잎을 똑똑 따버리는 것이 아닌가. 일찍 목격해서 다행이었으나 녀석의 손길이 닿은 부분은 그렇지 않은 쪽 보다 조금 허전해져 버렸다.

아무리 흰색이래도 이렇게 깨끗할 수가..
아무리 흰색이래도 이렇게 깨끗할 수가..정명희
다른 많은 꽃들이 그렇기도 하지만 제라늄 또한 줄기를 뚝 잘라서 흙에 심으면 줄기 끝에서 뿌리가 돋는다. 길을 가다 혹여 이 하얀 꽃을 보게 된다면 ‘제라늄’이라 불러주세요(제가 하얀 꽃의 매력에 빠져서 하얀색을 예찬했지만 붉은색과 분홍색, 선홍색의 제라늄도 볼만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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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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