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정명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것은 시어로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의 현실 속에서도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름을 모를 때는 그 만큼 관심이 덜 가게 된다. 그러나 가끔은 이름을 모를 경우 오히려 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궁금해 죽겠는 존재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이 꽃 또한 그러하였다. 나는 당장 꽃집 주인에게 화초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건 제라늄이에요.”
“아, 그렇군요.”
제라늄, 제라늄. 예전에 읽었던 서양 소설들에서 제라늄 향기 어쩌고 하는 대목들이 기억났는데 그 제라늄이란 말이었다, 이 하얀색 꽃의 정체는.
이 하얀색의 제라늄은 줄기가 제법 실한데도 가격이 아주 저렴했고, 집에 가져와서 꽃 화분에 옮겨 심으니 인물이 금세 훤해졌다. 곁에 두고 보니 이 제라늄이라는 화초는 봉오리가 맺기 무섭게 꽃이 피면서도 오래가는 장점이 있었다. 날 수를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화무십일홍’의 허무는 넘어서는 듯했다.
이 하얀 제라늄을 시작으로 나는 뜬금없이 ‘하얀 꽃’의 매력에 빠졌다. 꽃이라면 지당 타는 듯이 붉든가, 노랗게 강렬하든가, 보랏빛 고혹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지 흰색이 웬 말이냐. 그런데 이 흰색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코스모스도 흰색이 아름다웠으며 베고니아도 치자도 타래난초도 하얀색이 아름다웠다.
사진속의 제라늄은 며칠 전 한차례 시련을 맞았다. 다름 아닌 이웃집 갓난쟁이 꼬맹이가 저도 보는 눈이 있었던지 아차 하는 순간 꽃잎을 똑똑 따버리는 것이 아닌가. 일찍 목격해서 다행이었으나 녀석의 손길이 닿은 부분은 그렇지 않은 쪽 보다 조금 허전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