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제조기법은 '국가기밀'

[차 문외한의 중국차 기행] 제남 차 도매시장을 찾아

등록 2006.04.25 10:38수정 2006.04.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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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전문점 연씨보이차. 이곳에는 지역이나 성씨를 딴 상호가 많다.
보이차 전문점 연씨보이차. 이곳에는 지역이나 성씨를 딴 상호가 많다.이웅래
제남 차 도매시장 안에는 한 가지 종류의 차만을 고집해 판매하는 전문점이 꽤 있다. 이런 전문점은 대개 자신의 고향에 보유한 생산지에서 직접 재배·가공·판매하는 곳이라 보면 된다.

그래서 상점이나 차 이름을 보면 '연씨보이차', '안서철관음'처럼 자신의 성씨나 고향의 이름을 따 상표명이나 점포명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중국 절강성에 있는 천도호(千島湖)는 이름 그대로 호수 안에 1천 개의 섬이 있는 인공호수라고 한다. 물이 맑고 공기가 좋다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녹차가 꽤 유명하단다.

직접 재배·판매하는 차 전문점의 자존심

처음 찾아간 곳은 '천도호운차'라는 간판을 내건 점포다. 이곳에서도 철관음이나 오룡차, 보이차, 일조설청(日照雪靑), 화차까지 판매하는데 녹차가 주 판매상품이라 한다.

천도호운차의 등화 사장은 첫마디부터 천도호 자랑이다. 물이 맑고, 경치가 좋으며, 공기도 아주 좋단다. 그런 곳에서 생산되느니 만큼 품질 역시 우수하다고.

녹차는 우리도 흔히 마시는 차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 녹차의 판매는 점점 줄고 있다고 울상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녹차 가격이 다른 차에 비해 비싸다는 점 때문이란다. 봄에 딴 차만을 선별해 일본으로 꽤 많은 양을 수출하고 있지만 중국 내에서 판매량 감소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녹차를 마시지 않느냐, 한국에 판매하면 어떻겠느냐'고 내게 묻는다. 어설픈 지식으로 한국에 보성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생산된 녹차가 품질이 아주 좋고, 녹차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건 순전히 TV나 매스컴에서 귀동냥한 어설픈 지식이다. 녹차 산지라면 사실 보성밖에 모른다. 티백으로 된 녹차 외에는 별로 마셔본 적이 없는 나는 아직까지 녹차의 진정한 맛과 향을 모른다. 설록이니 작설이니 하지만 약간 다른 것 같다는 느낌 외에는 구별도 못하겠고, 계룡산 갑사에 갔을 때 그곳 찻집에서 우전을 조금 비싼 값에 마셔본 경험이 고작이다.

등 사장은 능숙한 솜씨로 녹차를 우려내 잔에 따라준다. 이곳의 점포들은 손님이 가면 으레 자신들이 파는 차를 시음하게 해준다. 머그잔과 비슷한 잔에 마시는 일반인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대개 조그만 잔을 쓴다. 일단 첫 잔을 들어 향기를 맡고 한 모금 입에 넣어 혀로 살살 돌리면서 맛을 음미하란다. 흉내는 내보았지만 느껴지는 건 비릿한 풀냄새(이것 역시 무식의 소치다)와 은근한 향기 정도다.


통역을 위해 동행한 분이 그곳을 나서면서 정말 좋은 차라고 거든다. 나이가 드시고 차를 아는 분이라 아마 마신 후에 입 안에 남은 향기를 음미했던 모양이다.

다음에 들른 곳은 일종의 건강보양차를 파는 상점이다. 이곳의 노소혁 사장은 차로 건강증진이나 성인병을 예방 또는 호전시키는 건강차를 개발·판매하고 있는데 위생부에서 그 성분과 효능을 인정받은 유일한 곳이라고 자랑한다(중국 위생부에서 비준받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다양한 건강 보양차. 차라기보다는 한약 같은 향과 맛이 난다.
다양한 건강 보양차. 차라기보다는 한약 같은 향과 맛이 난다.이웅래
티백에 담긴 은행잎 차는 피를 맑게 하고, 혈전을 제거시켜 준다고 한다. 기름기 많은 음식을 주로 먹는 중국인들도 당뇨나 고혈압 등 성인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보양차도 맛보았는데 어렸을 적 먹었던 보약냄새가 생각나 눈살을 찌푸렸더니 맛이 없냐고 묻는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며 어렸을 적 어머니가 억지로 먹이던 보약 생각 때문"이라고 말해 주니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노 사장은 한국의 인삼이나 홍삼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덧붙인다. 인삼의 효능은 이미 세계적으로 공인됐으니 건강보양차를 생산하는 그에게는 당연히 관심거리가 됐을 것이다.

보이차 제조법은 국가기밀?... 빈속에는 마시지 말아야

세 번째로 간 곳은 우리나라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보이차 전문점인 연씨보이차(燕氏普洱茶) 매장이다. 취재를 하겠다고 했더니 잠시 후 예순이 넘어 보이는 분을 모셔와 소개시킨다. 바로 이곳 매장 주인인 연소호(燕小虎) 사장의 부친이란다. 인상이 매우 좋으신 분이었는데 알고 보니 중국에서도 몇 분 되지 않는, 보이차 제조기법을 지닌 분이란다.

"푸얼차(보이차)는 대개 야생차이다. 푸얼차를 만드는 과정은 찻잎을 딴 후 말리는 데 3개월, 48℃에서 발효시키는 데 51일 걸린다. 자세한 내용은 더 이상 말해줄 수 없다. 푸얼차 제조기법은 국가에서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감독하고 있다."

국가기밀쯤에 속한다는 말이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존경하는 노신의 유품에서도 보이차가 나왔다고 한다. 그것이 한 컵에 1만2000 위안(한화 약 150만원)이나 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보이차에 대해 '아버지 대에 만들어 자식 대에 가서 마신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자연 숙성된 것이 좋다는 말인데 값이 그 정도라면 오래된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노신의 유품이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보이차가 좋은 것인지 다시 우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연씨 노인은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하나하나 가르쳐준다.

"푸얼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잎차와 니차(泥茶, 또는 餠茶, 흔히 떡차라 한다)인데 흔히 보이차 하면 니차를 생각하지만 대체적으로 잎차가 좋은 차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좋은 보이차란 어떤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좋은 푸얼차를 고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대표적인 기준이 향기다. 우리들이 대부분 마시는 푸얼차는 90% 이상이 진향(陳香)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이차 중 가장 낮은 등급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보이차. 장향이 나는 차를 최상으로 친단다.
다양한 보이차. 장향이 나는 차를 최상으로 친단다.이웅래
대개 곰팡이 냄새와 비슷한, 보이차 특유의 향이라 알았던 것이 진향이란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하품에 속하는 것이라니. 나는 뭔가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

"보이차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은 장향(樟香)이다. 차에 장향을 가미하기 위해 차나무를 심을 때 장목(樟木)을 한 줄 심고, 차나무를 심는다. 그 옆에 다시 장목을 심고."

장목은 중국 남부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로 중국인들이 귀하게 여기는 나무란다. 장목을 겹쳐 심어 놓았기에 차에서 장향이 난다는 말을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런 정성으로 차를 재배하고 있다는 말에 고개만 끄떡일 밖에.

"두 번째로는 대추향이 나는 차를 꼽는다. 세 번째는 난향(蘭香)이다. 네 번째가 연꽃향(蓮花香)으로 장향부터 연꽃향을 풍기는 보이차라면 질 좋은 보이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후에도 이것저것, 묻지도 않은 것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한다. 우선 중요한 것이 보이차를 마실 때는 첫 번째 우린 찻물은 반드시 버리고 두 번째 우린 것부터 마셔야 한다는 것.

보이차를 대접하는 연 사장은 처음 우린 물로 잔을 닦아내고는 내 앞에 놓는다. 세 번째 우린 차 맛이 가장 좋단다. 마셔보는 내 고개도 절로 끄떡였다. 잎차였는데 알 수 없는 향기가 일반적인 보이차와는 달랐다. 아마 이것이 장향인 모양이다.

'차를 마시니 콜레스테롤 수치가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학계의 보고 내용과 살을 빼는 데 좋다는 등 인터넷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내용도 자세히 설명한다. 하지만 보이차는 한두 번은 모르지만 가급적 빈속에 먹지 말란다. 지방 제거에 효능이 있는 것이라 가끔 속을 쓰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기름진 음식을 먹은 뒤 마시면 속이 편해지는 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보이차를 압착해 만든 액자가 신기해보여 하나 사 왔다.
보이차를 압착해 만든 액자가 신기해보여 하나 사 왔다.이웅래
또 하나 특이한 것이 매장에 있는 액자.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보이차로 만든 액자란다. 보이차는 오래둘수록 향기가 진해지고, 자가 발효를 거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액자로 활용하지만 나중엔 보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웃었다. 300년 동안이나 보관할 수 있다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위에 300년 동안 쌓인 먼지도 같이 먹게 되는 것이 아닌지.

그 뒤에 다른 곳에 들러 화차를 시음했다. 말리화차나 국화차가 대부분인 화차는 향기가 중요하단다. 톡 쏘는 향기가 나거나 향이 진한 것보다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을 가진 화차가 상품(上品)이라고 한다.

차, 제대로 알고 마시자

10여 년 전쯤 프랑스 파리에 간 친구가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 꽤 큰 한국식당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옆 좌석에 프랑스인 둘이 들어오더니 두부김치를 시켜 먹더란다. 그들은 아주 특이하게 두부김치를 먹었는데, 위에 덮여있는 하얀 두부를 다 걷어 먹고는 밑에 있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먹더란다.

두부는 싱겁고 김치를 먹을 즈음엔 매우 짰을 텐데 그래도 잘 먹더란다. 먹는 방식을 알았다면 그렇게 먹었을 리는 없을 테고 아마 한국에 한 번쯤 왔다가 그 맛에 반해버려 가끔 먹으러 온 것이 아닌가 싶단다.

중국차가 서서히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있다. 커피나 콜라 역시 우리나라 차나 음료수가 아니다. 그것이 나쁘다, 좋다를 따지기 이전에 글로벌 시대인만큼 누구나 중국차를 마실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되도록 마시는 법을 올바르게 알고, 품질 좋은 차를 마시는 게 나을 것이란 마음에 취재했다. 어쩌면 기분 나쁠 정도로 무례하게 질문한 나를 끝까지 웃는 낯으로 대해준 제남 차 시장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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