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한국인들에게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였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국제평화를 추구하며 남을 즐겁게 돕는 나라였다. 그러나 1980년 이후로 한국인들이 깨닫게 된 미국의 이미지는 종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사령관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전두환 쿠데타 세력은 1980년 광주에서 5·18 학살을 감행하였다. 미국의 승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은 국제평화를 추구하는 나라라고 생각했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1990년 8월 걸프전쟁 발발 이후 한국인들은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에 대해서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미국은 다국적군의 명분을 빌어 이라크에 초첨단 하이테크 무기를 투하하면서 그것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했다. '신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그 제품들을 이라크에 대규모로 투하했던 것이다. 미국은 또 국제 여론을 조작하면서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중동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 누가 보더라도, 미국의 행위는 단순히 쿠웨이트를 돕기 위한 것이거나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이 본 것은, 그저 자국의 패권 확장에 혈안이 되어 버린 '야만적인 미국'의 모습뿐이었다. 경쟁자인 소련이 사라진 세계에서 미국은 자국의 본심을 여과 없이 무제한으로 드러내었던 것이다.
미국은 남을 즐겁게 돕는 나라라고 생각했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미국은 과거 자신들이 한국에 원조했던 것 이상으로 한국에서 경제적 '단물'을 빼앗아 가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통상 압력을 가함은 물론, 자신들의 전쟁을 위해 한국에서 전비를 거두어 가기도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학생·지식인층 사이에서만 위력을 발휘하던 반미감정이 1990년대 이후 사회 각계각층으로 점차 확산한 데에는 이 같은 미국의 이미지 변신이 한몫을 하였다.
한국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미국
그런데 미국은 지금까지의 이미지 변신에도 성이 안 찼던지, 이제는 경기도 평택에서 한국 어린이들의 학교와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국제평화를 추구하며 남을 즐겁게 돕는다던 미국의 이미지는 벌써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가 미국에게 이처럼 철저히 당하고 또 속는 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미국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세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을 덜컥 '집안'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신미양요(1871년)에서도 잘 드러나는 바와 같이, 조선은 처음에는 미국을 거부했다. 그런 조선이 1882년에 미국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청나라의 '소개' 덕분이었다. 1882년에 조선과 미국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은 원로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한 고종의 의지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조선이 미국을 받아들인 것은 청나라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었다.
그럼, 청나라는 왜 조선에게 미국을 '소개'해 주려 했을까? 1879년 7월 4일(음력) 이후로 청나라는 조선의 내정·외교에 간섭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과 미국의 수교를 알선하는 과정에서 조선을 청나라의 영향권 하에 두자는 전략을 택하게 되었다.
"미국은 언제나 정의를 숭상하는 나라"
서양 국가를 거부하는 조선을 설득하기 위해 청나라는 조선에게 온갖 거짓말을 했다. 자신들이 아편전쟁 시기에 미국에게 당한 적이 있음에도, 청나라는 조선에게 '미국은 좋은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880년 일본 주재 청국 참사관인 황준헌이 김홍집에게 건넨 논문인 <조선책략>에는 미국에 대한 칭찬이 장황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표현은 "미국은 언제나 정의를 숭상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자신들도 몇십 년 전에 미국에게 당한 일이 있음에도, 청나라는 조선에 개입할 빌미를 찾기 위해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포장했던 것이다. 이 논문에서 황준헌은, 조선이 러시아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결합하며 미국과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 논문은 곧바로 고종에게 전달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조선과 국교를 체결하고자 했던 미국의 오랜 숙원이 결국 청나라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청나라는 조선의 내정·외교를 사실상 완전 장악하게 되었다.
중국이 '추천'한 미국... 잘못된 만남
이와 같은 과거 역사에서 잘 드러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처음부터 주체적으로 미국을 수용한 것이 아니다. 미국을 제대로 파악한 상태에서 미국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사실상 중국의 '추천'에 좌우되어 미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기에, 미국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불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을 소개해 준 중국은 그것을 빌미로 사상 최대의 내정간섭(1882~1894년)을 감행했다.
그리고 미국은 구한말의 격변기 때에 조선정부의 구원 요청을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다. 그 미국이 1945년 이후에는 우리 민족을 분단시킨 '원흉'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주요 모순과 불행은 바로 미국에 기인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처음부터 외세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을 받아들였다. 우리보다도 훨씬 더 강한 외세를 이용해 보겠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그 같은 우를 범하고 말았다. 미국 때문에 삶의 터전까지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까지도 외세 특히 미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외세에 눌리고 이용당하는 민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미국과 외세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외세와 손을 잡고 외세를 이용하려 하기보다는, 민족 내부의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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