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과 대학졸업장. 대학 4년간, 부모님께 진 빚이 5천만원이나 된다.김수원
"이 꽃 얼마예요?"
"요거는 5천 원, 옆에 좀 큰 거는 만 원, 제일 큰 건 2만 원요."
"아, 네…. 조금 더 싼 건 없나요?"
"저기~ 저건 3천 원인데, 꽃도 적고 안 예뻐요. 이왕 사는 거 5천 원짜리 정도는 해야죠."
"알겠습니다. 잠깐 다른 곳 좀 둘러보고 올게요."
벌써 다섯 번째 찾은 곳이다. 나는 단 돈 몇 천 원을 놓고 고민 중이었다. '그동안 생신선물도 제대로 못 챙겨드렸는데 만 원짜리로 할까? 에이~ 그러자. 잠깐! 어머니, 아버지께 드리려면 두 개는 사야 하지 않을까?'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냥 저렴한 걸 두 개로 할까? 큰 거 하나로 해드릴까?' 계속되는 고민에는 이유가 있다. 수중에 돈이 별로 없고 나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구직자'이기 때문이다.
대학생활 4년 동안 부모에게 진 빚 '5천만 원'
지난해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1년간 내가 쓴 모든 지출(껌 한 통 산 것까지)을 계산해 보니 어디서 구해 썼는지 모를 300만 원이 나왔다. 4년간 대학 학비까지 계산해 보고 다양한 부대비용까지 전부 첨부해 보니 얼추 5천만 원이나 된다! 이게 다 부모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성인이 되기까지 그동안 쏟아 부은 돈은 훨씬 더 많을 줄로 안다. 고등학생까지는 그렇다 쳐도 대학입학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위험을 무릅쓴 부모님 나름대로 '투자'일 수 있다.
부모님 시절에는 대학 나오면 다들 취업이 되는 분위기였고, '실업률이 높다고 해도 설마 우리 자식에게까지 영향이 올까?' 하고 철썩 같이 믿었으리라. 졸업하고 올해 3월부터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은 곱지 않았다. 취업을 못했기 때문이다.
졸업하면 더는 용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다. 작은 '독립'을 선포한 것이다. 부모님이 "그래도 차비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 하고 이야기해도 거절했지만 버티기 정말 힘들었다. 나이와 인상착의상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쉽지 않아 가끔 책상 위 다이어리에 살짝 넣어 주시는 2만 원의 유혹에 은근슬쩍 넘어가곤 했다.
'차라리 대학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5천만 원 가지고 다른 일을 했다면 혹시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고 내 돈도 아닌데,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부모님께 빚 5천만 원 지고 대학을 신나게 다녔는데 또 '취업재수생'이라는 핑계로 대학생활의 연장을 꾀하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물론 취업을 못했다고 상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빚은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따로 수입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안 그래?
대학 앞엔 많은 젊은이들이 화려한 꽃바구니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그 틈 속에서 5천 원짜리 꽃바구니를 하나 들고 지하철에 올랐다. 내 맞은편에는 누가 봐도 예쁜 꽃을 한아름 품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무슨 무슨 '데이' 날 연인 앞에서 선물을 비교당하는 것처럼 나는 잠시 초라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선물은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로 자신을 달랬다. 새로운 효도 방법을 고민했으니….
'이제부터 부모님 가사노동의 부담을 덜어 드리자. 수입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안 그래? 밥값은 해야잖아.'
사실 군 복무를 마치고 갓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살림에 애착이 많았다. 수세미 관리에서부터 부엌위생 상태까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결국 성에 안 차 직접 일을 해치우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학교에 복학해 방만한 '대학생'으로 살면서 입대 전 게으른 모습으로 복귀해 버렸다. 무책임하게 빨래를 휙휙 던져버리거나 비겁하게 밥 먹고 설거지도 안 하고 부엌을 뜨는 경우가 잦았다. 부모의 '노동'을 망각한 셈이다.
물론 가정부로 새 인생을 설계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면 부모님이 좋아할 리 없다. 가사노동은 구직활동을 하다 몰래몰래 살짝살짝 조용히 임해야 한다. 이제 연세도 많은 우리 부모님께 '우렁각시' 같은 '가사도우미'가 필요할 때다.
어버이날에는 서둘러 아침을 먹고 일 나가는 부모님께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하고, 폭우가 지나간 하늘에 우리 식구 이불부터 털어 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