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미나리 앞에 무릎 꿇다

<음식사냥 맛사냥 76> 해독작용, 혈액순환의 으뜸 '미나리'

등록 2006.05.11 19:48수정 2006.05.12 14:08
0
원고료로 응원
a 비음산 미나리꽝에서 미나리를 다듬고 있는 아낙네들

비음산 미나리꽝에서 미나리를 다듬고 있는 아낙네들 ⓒ 이종찬

봄과 초여름에 가장 향이 깊고 씹으면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뒷맛이 아주 좋은 미나리. 초여름이 성큼 다가오면서 미나리가 제철을 맞았다. 미나리는 비타민 A, B1, B2, C 등과 단백질, 철분, 칼슘, 인 등 무기질까지 듬뿍 들어있는 고알칼리성 식품으로 그냥 즐겨먹는 음식이라기보다 논과 야트막한 산자락의 습지에서 나는 보약이라 부를 만한 채소다.

우리 나라와 일본, 중국, 타이완, 말레이시아, 인도 등지에서 자라는 미나리는 크게 물미나리와 돌미나리로 나눌 수 있다. 그중 물미나리는 흔히 미나리꽝이라 부르는 무논에서 키우는, 줄기가 길고 상품성이 높은 미나리를 말하며, 돌미나리는 산자락 계곡의 샘터 주변이나 도랑 같은 데서 저절로 자라는, 줄기가 짧고 잎사귀가 많은 미나리이다.


중국 의학서 <본초종신>(本草從新)에 따르면 "물미나리는 열을 식혀주고 가슴이 답답하며 입이 마른 것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황달을 없애고 소변을 잘 보게 한다"고 적혀 있다. 이어 돌미나리는 "임파선염으로 귀나 턱 아래 몽우리가 생기거나 어혈이 있어 소변이 뿌옇게 나올 때 주로 처방되는 한약재"라고 나와 있다.

a 비음산 미나리꽝은 자연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비음산 미나리꽝은 자연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 이종찬

a 연초록빛으로 쑥쑥 자라나는 미나리

연초록빛으로 쑥쑥 자라나는 미나리 ⓒ 이종찬

게다가 물미나리보다 향이 아주 강한 돌미나리는 혈압강하 작용이 뛰어나고, 자궁을 수축하는 작용까지 있어 여성들의 생리통과 냉대하를 막는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특히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은 돌미나리의 줄기와 잎사귀로 즙을 내 꿀을 넣고 하루 40cc씩 3번에 나눠 먹으면 고혈압의 자각증상이 사라져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 따르면 "미나리는 갈증을 풀어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며 술을 마신 뒤의 열독을 다스린다"고 되어 있다. 이어 "대장과 소장을 편안하게 해주고 월경 과다나 냉증에도 좋다, 고혈압 환자에게 미나리 생즙을 먹이면 좋고, 해열과 일사병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나와 있다.

어디 그뿐이랴. "미나리는 맛은 달고 성질은 평온하며 정기와 골수를 보하고 폐, 위장의 기능을 도와준다, 미나리는 뿌리 잎줄기를 사용하며 곧게 자란 것, 잎의 녹색이 진하며 싱싱한 것이 신선하다, 대개 빨간색을 띠고 바위틈에서 나는 키 작은 돌미나리가 늪에서 자라는 미나리보다 영양이 더 우수하다"고 적혀 있다.

a 연초록빛 미나리는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까지 연초록빛으로 물든다

연초록빛 미나리는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까지 연초록빛으로 물든다 ⓒ 이종찬

a 비음산 아래 맑은 물을 먹고 자라는 미나리꽝

비음산 아래 맑은 물을 먹고 자라는 미나리꽝 ⓒ 이종찬

이처럼 미나리는 각종 공해와 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보약임에 틀림없다. 특히 요즈음처럼 황사가 자주 끼는 봄철에는 생미나리를 흐르는 물에 잘 씻어 생즙을 내서 마시거나 차로 끓여서 물을 마시듯이 자주 먹으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미나리는 이뇨 및 해열작용까지 있어 황사로 인한 인후염이나 피로회복에도 그만이다.


"요즈음 같이 황사가 많이 끼는 봄철이나 초여름에는 생미나리 이기 최곤기라. 특히 입맛이 없을 때 생미나리 여기에다 쌀밥 한 숟갈과 된장 쬐끔 올려 쌈을 한번 싸먹어 보라카이. 얼마나 향긋하고 달착지근한지…. 그라고 술 많이 마신 날 생미나리 이거로 즙을 내서 먹어보라카이. 속이 확 풀리는 기 몸이 얼마나 가볍다고."

지난 4월 중순께 연분홍빛 진달래를 보기 위해 김정수(35) 여행작가와 <시민의신문> 김재현(34) 기자와 함께 비음산(510m, 경남 창원 사파동)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비음산 자락 미나리꽝 물꼬에서 미나리를 다듬고 있는 아낙네 서넛을 만났다.


a 언뜻 모를 쪄내고 남은 못자리처럼 보인다

언뜻 모를 쪄내고 남은 못자리처럼 보인다 ⓒ 이종찬

a 미나리를 다듬는 아낙네들의 손끝에서 이 세상 시름이 절로 날아가는 것만 같다

미나리를 다듬는 아낙네들의 손끝에서 이 세상 시름이 절로 날아가는 것만 같다 ⓒ 이종찬

마악 미나리꽝에서 벤 듯한 그 미나리는 정말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자 미나리의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달착지근하게 맴돌았다. 기자가 아낙네에게 "그 미나리 살 수 있느냐?"고 묻자 "술 안주로 하실라꼬예? 그라모 2천원 어치만 사도 다 묵지도 못할끼낍니더, 집에 가져가서 나물로 무쳐 묵을라카모 한 5천 원어치는 사야 될끼라"고 했다.

그날, 기자는 미나리 2천 원 어치를 사들고 일행들과 함께 가까운 막걸리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불쑥 미나리를 건넸다. 미나리를 받아 들던 주인아주머니의 인상이 환했다. 근데 그 미나리를 좀 씻어달라고 하자 갑자기 주인아주머니의 인상이 붉으락푸르락해지기 시작했다. 미나리가 있으면 그 집 안주를 팔지 못한다는 투였다.

"아주머니! 안주는 따로 시켜먹을 테니까 걱정 마시고 그 미나리나 깨끗하게 잘 좀 씻어주세요."
"그기 아이라 내는 손님이 이 싱싱한 미나리로 내한테 고마(그냥) 선물로 주는 긴 줄 알았다 아이가."
"요즈음이 미나리가 가장 향긋하고 달착지근한 뒷맛이 좋을 때지요. 미나리 맛이나 좀 보게 반쯤만 씻어 주시고 나머지는 아주머니께서 드세요."


a 흐르는 물에 잘 씻은 미나리

흐르는 물에 잘 씻은 미나리 ⓒ 이종찬

a 황사에 좋은 미나리 드세요

황사에 좋은 미나리 드세요 ⓒ 이종찬

그제야 아주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행들은 아주머니가 내놓은 파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나리에만 자꾸 손이 갔다. 비음산 맑은 물을 먹고 자연 그대로 자라난 그 미나리는 향이 참 좋았다. 그리고 씹으면 씹을수록 달착지근하면서도 은근히 파고드는 깊은 맛이 끝내줬다.

그날, 우리 일행들은 그 막걸리집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미나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3~4되나 비워냈다. 생미나리를 된장에 찍어먹어 보기는 처음이라는 김재현 기자도 "생미나리가 이렇게 향긋하고 달착지근한 감칠맛이 나는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미나리를 좀더 살 걸"이라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막걸리를 계속 비워냈다.

"복국에 왜 미나리를 빠뜨리지 않고 넣는 줄 알아?"
"복어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 넣는 것 아닌가요?"
"복어국이 더 시원하고 맛있으라고 넣겠지요."

"그게 아니라 복어는 아무리 잘 조리를 해도 독이 조금 남아있거든. 그 독을 없애기 위해 미나리를 넣는 거야. 미나리가 해독작용이 있잖아. 그리고 요즈음처럼 황사가 심할 때에는 돼지고기도 좋지만 미나리 이기 최고라니까. 황사가 제 아무리 까불어쌓아도 미나리 앞에서는 꼼짝없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말이지."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진주-동마산 나들목-창원역-경남도청-창원법원-성원아파트-비음산 올라가는 샛길-미나리꽝 

※이 기사는 <유포터><씨앤비> <시골아이 고향> 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진주-동마산 나들목-창원역-경남도청-창원법원-성원아파트-비음산 올라가는 샛길-미나리꽝 

※이 기사는 <유포터><씨앤비> <시골아이 고향> 에도 보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