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겉그림.창비
"6·15공동선언 이후의 세월 동안, 애초의 부푼 기대가 갖가지 난관으로 좌절을 겪는 가운데서도 남북관계가 꾸준히 진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진즉에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며 '6·15시대'가 곧 분단체제의 해체기에 해당한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의 '책머리에' 글에서 밝혔듯, 백낙청 교수가 자신의 입론인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분단체제 해체 중'으로 한 발 더 진전시킬 수 있었던 배경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공동선언이다.
백 교수는 "현재의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에서 살게 되는 과정이 통일작업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6·15공동선언을 독일식 흡수통일도, 베트남식 무력통일도 아닌 "우리식 통일에 시동을 건 중차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백 교수는 6·15공동선언문 두 번째 조항인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서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 지향해나가기로 하였다"의 애매모호한 표현이 오히려 실현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남북이 서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면서 딱 맞는 합의를 도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 교수는 통일에 대한 개념을 바꾸자고 말한다.
"단일국가형 국민국가로서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이 통일이며 언제 통일할 거냐를 두고 다툴 것이 아니라, 남북 간의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다각적으로 진행하다 어느 날 문득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합의하는 것, 그게 우리식 1단계 통일입니다. 그 다음 2단계, 3단계 통일이야 그때 가서 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미 FTA, 최대한 시간 끄는 게 상책"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비록 개인자격으로 가는 방북이지만 이 일로 남북관계에 뭔가 돌파구가 마련돼야 하고, 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방북은 당연히 철도 이용 방식으로 이뤄지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 언질이 있었으면 합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이나 갈수록 꼬여만 가는 북·미관계를 감안하더라도 남쪽의 능동적 역할이 필요하던 때 이뤄지는 방북인 만큼, 백 교수는 겉으로 크게 내색하진 않지만 속으로는 곧 있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에 꽤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백 교수는 미국의 대북강경론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강경 입장이 한반도 통일을 힘들게, 그리고 더디게 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보다 큰 위기감이 조성됐지만 그때보다 지금 통일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을 보더라도 남북관계는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최근 우리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한·미 FTA 협상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지금처럼 서둘러 타결했을 때 그 결과는 너무도 당연히 끔찍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 교수는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 상책이라고 본다. 우리 정부가 먼저 협상하자고 제안했기에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고 할 수 없는 현실적 불가피성을 감안해, 협상을 최대한 끌어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엎을 것인지, 그렇지 않고 추진할 경우 어떻게 우리에게 유리하게 할 것인지를 따져 필요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체제와 관련해서도 한·미 FTA 협상을 졸속·급속 추진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백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협상을 잘해도 자기네 위주의 안보 측면에 큰 비중을 둔 미국의 전략적 구상을 뒤엎고 동북아균형자 역할이나 남북의 화해협력 진전에 걸맞은 '안보강화'를 얻어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분단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최장집 교수 실명 비판, 투쟁 아닌 논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