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이후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석유시대가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한 것이다.
운혁은 옥상 텃밭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채소들을 대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매일 아침 옥상 텃밭을 이용해 채소를 대부분 충당할 수 있었다.
천연당 집권 10년 동안 너무나 큰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은 석유와 석탄, 원자력과 같은 화석에너지가 우리 생활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대는 '오일군대'라는 멍에를 벗고 평화 유지를 위해 최소한으로 운영되었다.
처음 석유 가격 때문에 자동차를 타지 못했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면서도 한때 자동차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수소자동차가 일반화된 지금도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자전거와 대중교통이 주는 편리함에 비해 자동차를 보유할 때 내야 하는 각종 세금과 주차딱지, 속도 위반·차선 위반 등 각종 범칙금, 비싼 보험료와 주차요금, 그리고 자동차를 폐기할 때 내야 하는 높은 처리 비용 등등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더는 개인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자전거면 충분하다는 사실은 이젠 일반 상식이 되었다.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였지
운혁은 인근 도시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과 대량 폐기물을 만드는 석유화학 산업은 높은 원유 가격으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한국의 중화학공업 단지 중 지금 남아 있는 곳은 없다. 석유에 기반한 산업이 대부분 종말을 고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였다. 의류·창문·창호·자동차 범퍼·식기 등 모든 제품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플라스틱 제품들이 과거의 천연 제품으로 교체되었다.
당시 중화학공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농촌 농업이나 도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국가의 대부분 토지는 토지공개념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토지에 대한 개인 소유 개념은 점점 희박해졌고 토지를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농사를 짓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저렴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이미 일반 기업에 종사했던 사람들 중 50% 이상이 귀농했다.
정부 산하 귀농센터는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3천평의 땅을 1년에 10만원에 장기 임대해 줬다. 땅은 보통 논과 밭 그리고 산으로 구분되었는데,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황토집 역시 저렴한 가격에 평생 임대되었다.
사는데 돈이 필요해? 왜?
이들은 대부분 의식주를 마을공동체를 통해 해결했다. 지역화폐는 일반화되고 일반 화폐는 많이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돈이 아닌 노동을 교환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예를 들면, 운혁이 마을공동체 노동에 참여하면 공동체 사람들은 운혁의 농사를 함께 했다. 공동의 노동을 통해 마을공동체는 더욱 가까워졌다. 이런 일은 대부분 마을에서 나이많은 분들이 주도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석유시대 이전 시골 마을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다. 지역 화폐는 일종의 품앗이를 좀 더 체계화하는 식이었다. 이 때도 노인들은 과거의 품앗이 경험을 통해 현명한 방법들을 제안하곤 했다.
지역 화폐가 일반화되면서 과거의 돈 중심 사회는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지역 화폐를 이용해서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쌀을 구하기 위해서는 논에서 일을 해도 되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농부에게 제공해줘도 된다. 미용 기술이 있는 사람은 머리를 손질해 주고 받은 지역 화폐로 필요할 때 쌀을 살 수 있었다. 농부 역시 다른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할 때에 대비해 농한기에 다른 사람의 일을 함께 했다.
마을공동체 회관에서 노동력이 필요한 사람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노동을 교환하고 지역 화폐를 돈 대신 받았다. 그렇게 되자 돈 돈 돈 하던 세상은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