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 논객 지만원씨는 11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 대강당에서 열린 '평택사태를 걱정하는 비상국민회의'에서 "평택 시위대에 군이 발포를 했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또다시 물의를 일으켰다.
지씨의 발언이 물의를 일으키자, 이 단체에서는 "지만원씨의 발언은 비상국민회의의 결성 취지에도 배치되는 발언"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 모임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자유시민연대,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들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평택 발포' 발언에 박수를 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지씨의 발언이 단지 개인의 생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씨의 '평택 발포' 발언은 대한민국이 역사적으로 균열에 접어들고 있으며, 또 그로 인해 한국의 구 엘리트계층이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당연히 냉전과 친미에 의존해야 할 나라인데 평택에서 그와 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들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속마음으로는 '평택'이 아니라 한국의 '새로운 주류세력'에게 발포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구 엘리트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위기를 느끼고 있을까? 그들이 느끼는 위기는 바로 대한민국의 '기초'가 형식과 실제 면에서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성립의 기초는 '냉전'과 '친미'
1948년 건국 당시 대한민국의 성립 기초는 '냉전'과 '친미'였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한민국 성립의 기초를 파악해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지만원씨의 발언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대한민국 성립의 국제적 기초인 '냉전'과 '친미'에만 국한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만 해도 '냉전'과 '친미'라는 대한민국 성립의 국제적 기초에는 별다른 위협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로 동북아에서 냉전 균열의 징후가 나타나고 또 1998년 이후 대한민국 정권이 남북 교류에 열의를 보임에 따라,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반미' 분위기가 확산됐다. 그러자 한국의 구 엘리트 계층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탈냉전을 배경으로 '냉전' 대신 '평화'가, '친미' 대신 '자주'가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냉전'과 '친미'를 배경으로 권세를 누렸던 구 엘리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은 '평화'와 '자주'가 대세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은 이처럼 '실제적'으로는 냉전과 친미가 극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냉전과 친미가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 지향적이고 자주 지향적인 인물들 중 상당수가 정권에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흐름이 사회 저변에 널리 확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법에는 여전히 냉전적 요소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또 주한미군도 여전히 위세를 부리고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규정한 헌법 제3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규정한 헌법 전문 등은 구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될 만한 냉전적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과 실제의 괴리를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으로 미국의 신냉전 전략이 있다. 동북아의 탈냉전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핵문제 등을 빌미로 냉전 분위기를 재창출하려 하고 있다.
역내 패권국가인 미국이 동북아의 실제적 흐름인 '평화'를 거역하고 형식적 흐름인 '신냉전'을 고착시키려 하기 때문에, 동북아 전체적으로도 형식과 실제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의 신냉전 전략으로 '형식'과 '실제' 괴리 커져
위와 같이 형식과 실제가 불일치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여러 가지 모순이 등장하게 된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평화지향적임에도 불구하고 헌법·국가보안법을 위시한 각종 제도의 굴레 때문에 평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할 수 없다.
그리고 구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이 이미 권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정권과 주류세력(사회 변혁 측면에서)을 상대로 '호통'도 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지만원씨 같은 사람들은 지금 정권 하에서는 조용히 숨죽이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큰 소리를 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지금의 주류세력에게 '저항'을 하는 게 아니라 '호통'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착시현상'이 존재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착시현상이 존재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형식과 실제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구시대의 형식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아직도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 혹은 '권력을 잡고 있어야 할 사람'인 줄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착시 현상을 더욱 더 강화시켜 주는 것은 그들의 위기의식이다. 위기의식에서 '정신적'으로 해방되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착시현상에 대해 주관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적'으로는 위기에서 해방되기 힘든 그들의 '고뇌'를 보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형식'만 보고, 자신들이 보기 싫은 '실제'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기초가 형식과 실제 면에서 괴리를 보인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운명과 관련하여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 성립의 기초가 형식과 실제 면에서 괴리를 보이는 것은 흔히 국가 후기나 말기의 현상이다.
대한민국은 냉전과 친미를 기반으로 성립한 국가인데, 그 기초가 흔들린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역사적으로 후기나 말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이미 역사적으로 균열의 징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만원씨가 속한 구 엘리트 계층이 위기를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을 지켜 주던 냉전과 친미가 균열되고 있으니, '총' 아니라 '대포'를 동원해서라도 평화와 자주를 막으려 할 것임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당연히 냉전과 친미에 의존해야 할 나라인데 평택에서 그와 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속마음으로는 '평택'이 아니라 한국의 '새로운 주류세력'에게 발포를 하고 싶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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