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오마이뉴스 권우성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까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건 아무리 따져 봐도 어쩌다 나온 말실수가 아니다. 이건 분명히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나온 정략적 의도를 가진 발언이다.
따라서 이 발언에 대해 다시 논박을 하는 것이 문재인 전 수석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해야겠다. <연합뉴스>에 보도된 문 전수석의 발언을 정확히 인용한다.
"대통령도 부산출신인데 부산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연합뉴스>, 2006년 5월 15일)
나는 열린우리당의 이데올로그들이 2003년의 분당과정에서 토해 냈던 발언들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 따로 반복하지 않는다. 그런데 2006년 5월, 문 전 수석은 부산시민들에게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냐고 투정하고 있다.
문 전 수석에게 묻는다. 그럼 정말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모든 정치적 행위를 '부산정권'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생각해도 좋은가? 선거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다급해서 나온 의미 없는 정치적 수사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런가? 그렇다면 자신의 하소연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이 부연설명은 뭔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신항 및 북항재개발, 인사 등 정부로서는 거의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는데 시민들의 귀속감이 전혀 없다, 엄청 짝사랑하는 것 아니냐"(<연합뉴스>, 2006년 5월 15일)
'왕수석' 문재인의 투정
알만하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문 전 수석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더 한층 실감난다. 다시 읽어 보자.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하기에 따라서는 그런 '신경 쓰지 않고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이는 지역정책이란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거의 기계처럼 판단되어 공평무사할 수밖에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주장과도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지역소외감, 지역갈등, 이런 것 다 정치인이 만들어낸 허구다. 지역문제를 고려한 특별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 지역문제 해결책이다. 분명히 말하겠다. 대구 출신 대통령이 무소불위 권력으로 국가의 자원을 주무를 때 진짜 호남을 소외시켰나? 인정할 수 있나? 그 30년 동안 대구 경북이 살이 찐 부자가 됐으면 얼마나 부자가 됐나? 부산 경남 대통령 시절과 호남 정권 시절에 대구 경북이 소외됐다고 할 수 없다. 경쟁, 그 지역의 기획역량이 중요하다. 호남소외론이 무슨 소리를 해도 거기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없다. 영남 지역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조선닷컴>, 2003년 8월 19일)
부산시민들이 문 전 수석의 발언처럼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정권이라는 귀속감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노 대통령이 강조하듯이 '경쟁'이나 '그 지역의 기획역량' 덕에 그런 사업이 시행된 것이지 특별히 노무현 정부가 생색을 낼만한 특혜는 아니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이런 '당연한' 지역사업을 가지고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표를 달라고 하는 문 전 수석을 나쁘다고 생각할 지 모르는 일이다.
그럼 이 시간에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당의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광주가 아주 소중한 듯 하다. 그는 지난 9일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당의 광주시장 선거 승리는 시장선거에 그치지 않고 5·31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광주를 놓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승리하더라도 5·31 지방선거 패배를 의미한다"(<오마이뉴스>, 2006년 5월 10일)
이해가 되는가? 열린우리당에게 수도 서울도 아니고 일개 광역시 광주를 놓치는 것이 왜 다른 지역에서 승리하더라도 지방선거의 패배를 의미하는 걸까? 이는 열린우리당이 입만 열면 호남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광주라는 지역에 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낯 뜨거운 고백일 뿐이다. 정동영 의장은 과거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전북의 당"이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으므로 그에게서 이런 발언을 듣는 것은 이제 별로 낯설지도 않다.
물론 문 전 수석과 정 의장의 발언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긴 하다. 문 전 수석은 부산시민들에게 '지금까지 이렇게 했으니까 표를 달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정 의장은 '표를 주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구상을 실천할 것'이라는 말뿐인 약속을 내놓고 있다.
어쨌든 광주시민 역시 그런 약속이 실현되더라도 그것은 지역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노 대통령이 강조한 '경쟁'과 '그 지역의 기획역량' 덕분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 투표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논리적으로 맞다.
세련된 정동영, 노골적인 한화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