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해탈교를 앞을 지키고 서있는 돌장승 입니다.서재후
좀처럼 풀리지 않던 정체는 천안을 지나서야 시원스레 풀리면서 차가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목적지는 전북 남원. 멀기도 합니다. 지리산 IC를 빠져 나와서야 회색 빛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옅은 초록색으로 바뀌어 갑니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국도를 타고 40여분이 못 걸려 대정 삼거리를 지나 도착한 실상사는 너른 평지 위에 주변 마을과 함께 있습니다. 실상사 돌장승은 모두 4개인데 그 모습이 어찌나 소박하고 소탈한지 모릅니다.
돌장승은 실상사로 들어가는 해탈교 건너기 전에 한 개, 건넌 후에 두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는 두 개씩이었으나 한 개는 오래 전 홍수로 소실되어 지금은 모두 세 개만 남아 방문객을 맞습니다.
다른 곳의 장승이 남녀를 각각 만들어 놓은 것과 달리 이곳의 장승은 모두 남성을 상징한다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
실상사는 깊은 산중이 아닌 평지에 있는 절이어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지고,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화려함도, 여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권위도, 위엄도 없습니다. 그저 평민들과 함께 울고 웃던, 그렇게 실상사를 지키는 돌장승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실상사를 나설 때쯤에 내리기 시작한 봄비는 온 대지를 구석구석 적시며 고찰의 고즈넉함을 연출합니다. 우리는 실상사 돌장승의 미소를 뒤로하고 서천리로 발길을 돌려 차를 몰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