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도 어린이집 재롱이잔치 때 (신촌어린이집)홍용석
저희 가정은 육지에서 온 저(지체장애 3급)와 제주 토박이 아내,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딸 이렇게 네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서 결혼으로까지 이어진 부부입니다.
결혼 초에는 저의 직장관계로 서울에 살다가 2001년 12월에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제주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해보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처음에는 처가가 있는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집사람이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병원에 다녔던 관계로 아이를 처가에 맡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주시에 있는 공인중개사학원에서 강의와 중개업을 병행하고 있었기에 제주시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은 사정이 생겨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신촌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하나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촌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신촌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 저희 부부가 해결해야 할 제일 급한 문제가 아이를 어디에다 맡기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급할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는 둘째가 태어나지 않은 때라 아들뿐이었는데 아들의 나이가 네 살(4) 이었습니다.
아들 강민이는 아빠인 저를 닮아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고 마음이 약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데 서툴렀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습니다. 또래 아이들과 하나 되지 못하고 늘 혼자인 아들을 볼 때 마다 마치 제 모습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강민이는 처가 근처에 살 때에도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어린이집은 환경이 좋았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다 한 동네 사는 아이들이었고 또 그중 상당수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선생님들도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가 적응을 못하고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형식상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지만 실은 거의 외할머니와 하루를 보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낯선 신촌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다 맡겨야 할까. 어느 어린이집으로 보내야 강민이가 조금이라도 더 쉽게 적응할까. 집사람이나 저나 이 문제로 고민하느라 이사 온 첫날밤을 거의 뜬 눈으로 새웠습니다. 집사람과 저는 신촌 주변에 있는 여러 어린이집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해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다음날이면 강민이가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는 날 저녁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저희 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아파트 관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저희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알려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그분이 강민이를 보시면서 아이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00어린이집으로 보낼 거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아주 진지한 태도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어린이집으로 보내세요. 거기에 우리 딸이 선생님으로 있습니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아주 참하고 성실합니다. 마침 강민이가 4살이니 우리 딸이 맡게 될 겁니다. 믿고 맡겨보세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 분의 진지한 말씀이 저희 부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 분의 인상이나 그 분의 말씀이 저희 부부에게 충분히 신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강민이는 **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강민이가 새로운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처음 며칠간은 예상했던 대로 강민이가 새로운 환경에 어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으므로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매일 매일 선생님이 적어 보내주시는 글이 참 성의가 있어보였습니다. 오늘 하루를 강민이가 어떻게 보냈는가를 있는 그대로 적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에 대해 신뢰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강민이를 계속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 때 우리 강민이를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 주신 김지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항상 행복하십시요.)
얼마쯤 지나니 강민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런 짜증 없이 어린이집으로 갔습니다. 저희 부부는 너무 기뻤습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라는 말을 안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럽고 감사했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까요. 강민이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지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고, 누구는 떠들어서 선생님한테 벌을 받았고... 조금은 들뜬 어조로 종알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강민이 보다 좀 더 들뜬 기분으로 물었습니다.
"어린이집 좋아?"
"응, 좋아"
"친구들이랑 노는 거 재미있어?"
제가 연이어 물었습니다.
"응, 재미있어."
강민이의 대답을 듣는 순간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아, 우리 아들이 드디어 어린이집에 적응을 했구나! 우리 강민이가!
아빠를 닮아 소심하고 숫기 없는 아들을 보면서 아들에게 그런 성격을 물려준 내 자신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물려받은 성격을 극복하고 어린이집에 훌륭하게 적응해 낸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요즘은 강민이가 엄마의 직장관계로 다시 외가에 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 또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아무 어려움 없이 적응을 잘 해냈습니다. 어제 강민이가 신촌 집에 왔다 갔습니다. 감기를 해서 코맹맹이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좋아?"
"응, 좋아"
아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아들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아들아, 밝고 씩씩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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