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초고추장 무침. 햇고사리를 충분히 삶아서 물에 1시간 이상 담갔다가 건져서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다음, 버섯과 오이 등 야채에 무쳐 먹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오창경
올봄처럼 변덕스러운 날씨는 처음이다. 진달래와 벚꽃이 필 때까지 기온이 예년보다 낮았고, 살랑살랑 봄바람은 구경도 못해봤다. 불어오는 강풍에 그나마 늦게 핀 봄꽃들마저 산산이 흩어지면서, 꽃구경에 취할 틈도 없이 봄은 훌쩍 떠나버린 것 같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시골 마을에 이런 날씨는 치명적이다. 농작물 생육에 지장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야생 식물들마저 빛과 향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고사리가 그랬다. 봄 날씨가 추워 고사리가 늦게 올라오기도 했지만 5월초부터 시작된 이른 더위 때문에 잎이 금방 피어버려 식용으로서 가치가 떨어지기도 했다. 거기에다 잡초들은 고사리와 나물들의 성장 속도를 추월해 통통하게 물이 오른 고사리들의 품질마저 떨어뜨려 놓았다.
시골살이를 하게 되면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산으로, 들로 나물뜯으러 다니는 재미에 봄날이 가곤 했는데 올해는 고사리를 꺾는 손맛도 제대로 못 볼 만큼 고사리 흉년이었다.
"언니, 고사리 뜯고 싶으면 우리 산으로 와 봐."
어느 저녁 무렵, 옆동네에 사는 빈이 엄마가 인심 쓰듯이 걸어온 전화에 나는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산으로 차를 몰았다.
평소에 자기네 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고사리 두 포대는 문제없이 뜯어온다고 자랑하면서도 그곳이 어디인지는 가르쳐 줄 수 없다고 약올리던 빈이 엄마였다. 그녀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겨 나한테 인심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변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해야 했다.
3년생 밤나무가 자라고 있는 산자락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고사리 반, 잡초 반이었다. 잡초를 제거하고 관리한 탓에 다니기도 좋았지만 산자락이 완만해, 그동안 고사리를 찾으러 다녔던 가시덤불 우거진 험한 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아한 고사리 원정이었다.
빈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밤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잡초도 베어주고 가지치기도 하는 동안 밤나무 그늘에서 야생으로 조금씩 자라던 고사리까지 생육 조건이 좋아져 고사리밭을 이룬 것이었다. 그동안 새벽이면 어르신들이 다니며 고사리를 채취해 용돈을 마련하셨지만 올해는 봄이 짧은 탓에 농사일에 바빠 도저히 고사리를 뜯을 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도시 사람들 상대로 입장료 받고 고사리 뜯어가게 하는 '고사리 투어' 모집하면 좋겠다. 요즘엔 단순히 고사리를 장에 내다 파는 것보다 시골로 불러들여서 체험하며 정서까지 끼워파는 게 유행이야."
"그렇긴 하지만 우리 어르신들이 그럴 능력이 있나?"
"그럼 고사리 뜯으러 오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우선 오라고 해서 입장료라도 받아드리면 안 될까?"
그날 난 즉석에서 도시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했다. 마침 연휴였던 다음날, 득달같이 달려온 친구들은 각자 가지고 온 시장 가방을 난생 처음으로 고사리로 가득 채우는 희열을 맛보았다. 온 산을 헤매고 다녀도 2kg 이상 뜯은 적이 없던 나도 그날 고사리를 무려 5kg이나 뜯었다. 고사리를 팔이 아프도록 들고 내려온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발견의 재미와 야생의 향취, 시골생활의 중심
고사리를 찾기 위해 풀숲을 헤치고 다니다 보면 징그러운 뱀과 마주칠 때도 있다. 가시에 긁히는 일은 예사로 발생한다. 그래도 고사리 찾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중독성 짙은 게임 같은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고사리 뜯기의 마력은 발견의 재미에 있다. 보물찾기하듯 때론 잡초 속에서, 때론 찔레넝쿨 속에서 고고한 허리를 쭉 펴고 여린 잎을 앙다물고 있는 고사리를 찾아내는 희열이란......
친구들은 난생 처음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 만큼 뜯은 고사리를 펼쳐놓고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집은 제사도 안 지내는데 이 많은 고사리를 언제 다 볶아먹으려고 욕심부렸나 몰라." 한 친구가 발견의 재미만 좇아 너무 많이 뜯어온 고사리 앞에서 감탄인지, 한탄인지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