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별미 '고사리 회 무침', 한 번 맛보시렵니까

도시 친구들에게 야생 고사리의 세계를 열어줬습니다

등록 2006.05.24 10:32수정 2006.05.2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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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초고추장 무침. 햇고사리를 충분히 삶아서 물에 1시간 이상 담갔다가 건져서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다음, 버섯과 오이 등 야채에 무쳐 먹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고사리 초고추장 무침. 햇고사리를 충분히 삶아서 물에 1시간 이상 담갔다가 건져서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다음, 버섯과 오이 등 야채에 무쳐 먹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오창경
올봄처럼 변덕스러운 날씨는 처음이다. 진달래와 벚꽃이 필 때까지 기온이 예년보다 낮았고, 살랑살랑 봄바람은 구경도 못해봤다. 불어오는 강풍에 그나마 늦게 핀 봄꽃들마저 산산이 흩어지면서, 꽃구경에 취할 틈도 없이 봄은 훌쩍 떠나버린 것 같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시골 마을에 이런 날씨는 치명적이다. 농작물 생육에 지장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야생 식물들마저 빛과 향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고사리가 그랬다. 봄 날씨가 추워 고사리가 늦게 올라오기도 했지만 5월초부터 시작된 이른 더위 때문에 잎이 금방 피어버려 식용으로서 가치가 떨어지기도 했다. 거기에다 잡초들은 고사리와 나물들의 성장 속도를 추월해 통통하게 물이 오른 고사리들의 품질마저 떨어뜨려 놓았다.

시골살이를 하게 되면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산으로, 들로 나물뜯으러 다니는 재미에 봄날이 가곤 했는데 올해는 고사리를 꺾는 손맛도 제대로 못 볼 만큼 고사리 흉년이었다.

"언니, 고사리 뜯고 싶으면 우리 산으로 와 봐."

어느 저녁 무렵, 옆동네에 사는 빈이 엄마가 인심 쓰듯이 걸어온 전화에 나는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산으로 차를 몰았다.

평소에 자기네 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고사리 두 포대는 문제없이 뜯어온다고 자랑하면서도 그곳이 어디인지는 가르쳐 줄 수 없다고 약올리던 빈이 엄마였다. 그녀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겨 나한테 인심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변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해야 했다.


3년생 밤나무가 자라고 있는 산자락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고사리 반, 잡초 반이었다. 잡초를 제거하고 관리한 탓에 다니기도 좋았지만 산자락이 완만해, 그동안 고사리를 찾으러 다녔던 가시덤불 우거진 험한 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아한 고사리 원정이었다.

빈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밤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잡초도 베어주고 가지치기도 하는 동안 밤나무 그늘에서 야생으로 조금씩 자라던 고사리까지 생육 조건이 좋아져 고사리밭을 이룬 것이었다. 그동안 새벽이면 어르신들이 다니며 고사리를 채취해 용돈을 마련하셨지만 올해는 봄이 짧은 탓에 농사일에 바빠 도저히 고사리를 뜯을 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도시 사람들 상대로 입장료 받고 고사리 뜯어가게 하는 '고사리 투어' 모집하면 좋겠다. 요즘엔 단순히 고사리를 장에 내다 파는 것보다 시골로 불러들여서 체험하며 정서까지 끼워파는 게 유행이야."
"그렇긴 하지만 우리 어르신들이 그럴 능력이 있나?"
"그럼 고사리 뜯으러 오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우선 오라고 해서 입장료라도 받아드리면 안 될까?"


그날 난 즉석에서 도시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했다. 마침 연휴였던 다음날, 득달같이 달려온 친구들은 각자 가지고 온 시장 가방을 난생 처음으로 고사리로 가득 채우는 희열을 맛보았다. 온 산을 헤매고 다녀도 2kg 이상 뜯은 적이 없던 나도 그날 고사리를 무려 5kg이나 뜯었다. 고사리를 팔이 아프도록 들고 내려온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발견의 재미와 야생의 향취, 시골생활의 중심

고사리를 찾기 위해 풀숲을 헤치고 다니다 보면 징그러운 뱀과 마주칠 때도 있다. 가시에 긁히는 일은 예사로 발생한다. 그래도 고사리 찾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중독성 짙은 게임 같은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고사리 뜯기의 마력은 발견의 재미에 있다. 보물찾기하듯 때론 잡초 속에서, 때론 찔레넝쿨 속에서 고고한 허리를 쭉 펴고 여린 잎을 앙다물고 있는 고사리를 찾아내는 희열이란......

친구들은 난생 처음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 만큼 뜯은 고사리를 펼쳐놓고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집은 제사도 안 지내는데 이 많은 고사리를 언제 다 볶아먹으려고 욕심부렸나 몰라." 한 친구가 발견의 재미만 좇아 너무 많이 뜯어온 고사리 앞에서 감탄인지, 한탄인지를 내뱉었다.

빈이 할아버지의 밤나무 산에서 고사리를 채취한 이한구씨. 그는 남편의 선배로 호주 교포이다. 모처럼의 고국 나들이길에 우리 집에 들렀다가 고사리 산행에 합류했다.
빈이 할아버지의 밤나무 산에서 고사리를 채취한 이한구씨. 그는 남편의 선배로 호주 교포이다. 모처럼의 고국 나들이길에 우리 집에 들렀다가 고사리 산행에 합류했다.오창경
대체로 고사리는 삶아서 말려서 보관했다가 다시 불려서 삶은 다음 볶아서 나물로 먹는 방법과 육개장 재료로 활용하는 방법 외에는 요리법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봄철 누구나 욕심을 내는 나물인데도 요리법이 다양하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고사리를 볶아서만 먹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 초고추장에 회 무침으로 고사리를 먹었더니 씹는 맛과 향이 얼마나 좋은데."

이것은 내가 개발한 요리법이 아니라 산에 다니면서 만난 고사리 고수들에게서 전수받은 요리법이다. 나는 고사리 회 무침을 반찬으로 내놓기 시작했고 이제 고사리 회 무침은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드는 지인들에게 정평이 난, 우리 집 특선 반찬이 되었다.

머위 쌈밥.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입맛이 없어 고민하는 요즘에 딱 알맞은 요리이다. 밥에 당근이며 야채를 잘게 썰어 볶은 다음에 끓는 물에 데친 머위 잎에 돌돌만다. 된장 마요네즈 소스를 찍어서 먹으면 약간 쌉쌀한 머위 맛과 볶은 밥의 조화로 입이 즐거운 음식이 된다.
머위 쌈밥.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입맛이 없어 고민하는 요즘에 딱 알맞은 요리이다. 밥에 당근이며 야채를 잘게 썰어 볶은 다음에 끓는 물에 데친 머위 잎에 돌돌만다. 된장 마요네즈 소스를 찍어서 먹으면 약간 쌉쌀한 머위 맛과 볶은 밥의 조화로 입이 즐거운 음식이 된다.오창경
산에서 채취한 고사리를 삶을 때는 우선 가는 것과 굵은 것을 선별해야 한다. 이때 끓는 물에 데치는 식이 아니라, 줄기를 눌러보면서 충분히 물러졌다고 느껴질 때까지 삶아야만 말린 후에 다시 불려서 먹을 때에도 질기지 않다. 그리고 삶아서 회 무침으로 먹을 때는 고사리를 삶은 다음에 찬물에 1시간 이상 담가두면서 쓴맛을 뺀 다음에 쓰는 게 좋다.

삶아서 쓴 맛을 뺀 고사리를 초장에 찍어먹거나 오이와 버섯 등 야채와 함께 초고추장에 버무려 놓으면 봄철, 입맛 돋우는 반찬이 된다. 거기에다 머위 쌈밥을 주식으로 함께 내놓았더니 지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 집을 찾아와, 요즘 내 봄날은 고사리 회 무침, 머위 쌈밥과 함께 가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시골살이 재미 중 하나는 산과 들에 나는 야생 재료들을 이용해 요리를 만들고 지인들을 불러 이를 함께 즐기는 것이다. 매일 먹는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재료를 이용한 요리, 토속적이며 질박하면서도 눈이 즐거운 요리는 내 시골살이의 중심이다.

쌈밥과 고사리 무침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친구들과의 즐거운 점심시간
쌈밥과 고사리 무침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친구들과의 즐거운 점심시간오창경

덧붙이는 글 | 전원주택 라이프 6월호에도 송고함

덧붙이는 글 전원주택 라이프 6월호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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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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