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언제 사람취급이나 했냐"

빗방울이 이 땅 농민들의 눈물처럼 보이는 날입니다

등록 2006.06.08 21:42수정 2006.06.0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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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노동으로 얼굴보다 손이 더 커보입니다.
오랜 노동으로 얼굴보다 손이 더 커보입니다.조태용
비 오는 날 모심는 농부들을 보고 왔습니다. 농촌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친 손과 얼굴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농사짓는 부모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이앙기로 모심던 기억도 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날도 이렇게 비가 왔습니다. 김제 들판에서 모를 심었는데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비가 내리니 하나둘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떠나고 그 넓은 김제 벌판에 저 혼자더군요.

번개는 꽝꽝 치지만 내일 학교는 가야 하고, 저 말고는 모심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 상황이어서 결국 혼자 비를 철철 맞으며 모를 심었습니다. 삐뚤삐뚤 심긴 했지만 2400평의 논의 모를 다 심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모심는 농부님들을 보고 있으니 그때가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부모님은 저에게 항상 이야기하셨죠. 이런 힘든 농사짓지 말고 꼭 다른 일 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20년 가까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농사는 힘들고 쌀값은 제값도 못 받습니다. 지금까지 겨우겨우 가난한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농촌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쌀 수입 개방이다 한미 FTA다 농민들에게 여전히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왜 찍으려고 하냐"며 찍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십니다.
"나 같은 사람을 왜 찍으려고 하냐"며 찍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십니다.조태용
길가에서 모판을 정리하는 여성농민을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이런 몰골을 한 사람은 왜 찍냐"며 손사래를 치십니다. 나 같은 사람도 쌀 밥 먹고 산다면 도시사람들이 웃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비수처럼 제 가슴을 찌르더군요. 이제까지 농민들이 얼마나 괄시를 받았으며 자기가 지은 쌀밥 먹는 것조차 부끄럽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 어머니 같은 분이 계시기 때문에 도시사람들이 밥 먹고 사는 겁니다"라고 말했더니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우리 같은 농민은 언제 사람 취급이나 했냐"며 끝내 얼굴을 들지 않고 사진 찍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아마 제가 끝까지 설득을 해도 그 분은 아마 저처럼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평생을 가난한 농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온 그 분의 삶이 제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마 우리농촌의 현실일 것입니다.


저분의 굽은 허리가 우리들이 매일 먹는  쌀을 만듭니다.
저분의 굽은 허리가 우리들이 매일 먹는 쌀을 만듭니다.조태용
언제쯤이 돼야 농민들이 웃으면서 '농사짓기를 잘했어, 보람도 있고, 살기도 좋고 말이야….' 이런 말을 하면서 농부로서 자존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대로 가다가는 이분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분이 애써 모자로 가린 삶 속에는 아마 올 여름 유행한다던 미니스커트도, 가격이 떨어졌다는 외국 승용차도, 그 폼 난다는 외국의 유명 명품의 삶도 없을 것입니다.

저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찾아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찾아주어야 하지 않을까요?조태용
그 분의 삶은 그저 한 사람의 농부의 삶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의 삶일 것입니다. 농업을 고작 '칼로스가 맛있냐! 국산이 맛이냐!'는 정도로 평가해 버리는 우리들에게 농민은 몰골이 좋지 않아서 사진을 찍어도 부끄러운 것이고, 그래서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포기해야 할 대상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산업화와 더불어 시작된 살농(殺農)정책이 쌀 수입과 한미 FTA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옳은 선택만이 주름질 얼굴 그들의 삶에 그나마 한 가닥 웃음이라도 찾아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 허리 숙여 모심고 땅을 섬겨 우리를 먹여 살린 농민들에게 농사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의무가 아닐까요?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이 땅 농민들의 눈물처럼 보이는 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하고 있는 참거래 연대에도 올립니다.(www.farmmate.com)

덧붙이는 글 우리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하고 있는 참거래 연대에도 올립니다.(www.farmm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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