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권우성
변양호(사진)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의 체포가 갖는 의미는 뭘까?
지난 9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기소유예하고 김동진 총괄부회장 등 임원 3명을 불구속 기소함으로써 현대차 인사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검찰도 그렇게 말했다. "이로써 현대차 사건 본체 수사는 마무리됐다"고 했다.
현대차 사건의 본질이 경영권 편법승계이고, 그 최대 수혜자가 정의선 기아차 사장인데 어떻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릴 수 있느냐는 지적이 없지 않았지만 관심은 자연스레 다른 데로 돌려졌다.
이른바 2단계 수사, 즉 로비의 실체를 검찰이 어느 정도 밝힐 것인지가 관심사였다. 지방선거로 휴지기를 가졌던 검찰이 현대차 인사 사법처리를 마무리한 것을 계기로 로비 실체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나흘 뒤에 검찰은 변양호 전 국장을 긴급 체포했다. 언론이 관련 기사를 1면 등에 전진배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양호 전 국장, 그는 현대차 로비 그물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 인물인가?
변양호 왜 긴급 체포?
변양호 전 국장의 혐의점은 현대차 계열사 채무탕감 로비와 관련해 1억여 원을 받은 것이다. 채무탕감 로비 창구였던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를 통해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의미가 적잖다. 김동훈 전 대표가 재판과정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가 현대차로부터 받은 돈은 41억 원, 이중 6억 원은 자신이 챙겼고 나머지는 금융권 인사들에게 뿌렸다고 했다. 하지만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등에게 뿌린 돈 등을 제하고 19억 원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다.
이러던 차에 변양호 전 국장이 등장했고 1억여 원의 행방이 포착됐다. 이제 마저 캐야 하는 건 '그 밖의 인물들'이 받았을 18억 원이다. 바로 이 과제를 푸는 데 변양호 전 국장이 차지하는 의미가 적잖다.
검찰이 지금까지 밝힌 로비 실태는 단선구도다. 로비 목적은 계열사 채무탕감, 그 대상은 산업은행이었다. 여기에 변양호 전 국장이 추가됐지만 그래도 단선구도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변양호 전 국장은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 정리하면 현대차가 김동훈씨를 통해 산업은행에 로비를 벌이면서 보험 드는 차원에서 변양호 전 국장에게도 돈을 건넨 게 된다. 이렇게 보면 채무탕감 로비는 완결태를 띤다.
하지만 18억 원이 남아있다. 산업은행 임직원과 변양호 전 국장이 받은 돈의 합계보다 많다. 이 돈은 어디로 간 건가?
18억 원은 어디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다른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흘러갔을 가능성과 '다른 금융당국 간부'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이다.
<한겨레>는 후자쪽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변양호 전 국장이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란 점을 환기시킨 뒤 "변양호 전 국장에 이어 이헌재 사단의 또 다른 인물이 비리에 연루돼 있을 가능성"을 점치는 금융계의 전망을 전했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이헌재 사단의 또 다른 인물'이 돈을 받았다 해도 18억 원 전체가 그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은 적다. 설령 그가 변양호 전 국장의 '윗선'이었다 해도 그렇다. '박상배+변양호'의 수수금액 15억 원보다 더 많은 돈이 그에게 몰렸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보험금 치고는 너무 많다.
확인되는 건 하나다. 변양호 전 국장의 체포로 채무탕감 로비가 완결태를 갖췄다 해도 그건 얼개 수준이다. 얼개의 구멍을 메워야 할 인사들이 아직도 적잖다.
이 구멍을 모두 메워 채무탕감 로비 실체를 밝힌다 해도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현대차가 계열사 채무탕감 로비에 쓴 돈은 41억, 하지만 2002년 대선을 전후로 해서 집행한 비자금은 1천억 원대에 이른다.
더 큰 로비 의혹이 떡 버티고 있지만 수사가 진척되는 조짐은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본체' 정몽구 회장은 재판과정에서 대선자금에 대해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하고 있다.
시선은 다시 검찰로...
눈여겨 볼 점은 검찰의 태도다. 대선자금 의혹을 수사로 푸는 모습보다는 재판 과정에서 심문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뭘 뜻하는가? 검찰 스스로 울타리를 친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하나 더 얹자. 현대차 사옥 로비 의혹도 남아있다. 하지만 진척이 없다. 핵심 인물로 알려졌던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로비 창구로 알려진 김재록씨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검찰의 2단계 수사는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세 갈래 로비 가운데 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형편이고 그마저 구멍이 뚫려있다. 변양호 전 국장 체포는 2단계 수사 개시를 알리는 경적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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