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는 마을 지킨 이 충무공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충무사의 내력

등록 2006.06.18 15:19수정 2006.06.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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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충무사는 이 충무공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충무사는 이 충무공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 서정일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28-1번지, 이 충무공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무사가 있다. 그리고 직선거리로 2km 남짓한 곳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가 쌓았다는 순천왜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성을 일본사람들은 순천성이라 하며, 일명 왜교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총 길이가 3845m에 이르며 외곽성 3첩, 운하 1개, 본성 3첩으로 1597년에 축조했다. 현재 왜식 축성으로는 호남지방에서 유일하다.


왜군들은 1598년 조선 명나라 연합군과의 전투를 마지막으로 노량해전에서 이 충무공의 전사를 틈타 1598년 11월 일본으로 철수할 때까지 1만3000여명의 군사가 주둔했으며 호남지방 침략의 거점지로 이용하기도 했다.

충무사를 관리하고 있는 김헌주(77)씨는,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100여년 후에 신성리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마을사람들 꿈에 왜귀가 나타나 주민들을 괴롭혔다'고 말하면서 왜군들의 혼령이 이 마을에 남아 주민들을 못살게 굴어 이 충무공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무사를 짓게 되었다고 내력을 설명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후로는 주민들 꿈에 더는 왜귀의 출몰은 없었고 마을이 평안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후 일제시대에도 일본사람들이 경치가 아름다운 항구인 신성포에 와서 살아보려고 했지만 아프거나 악몽에 시달려 모두 떠났는데 김씨는 당시 옆집에 살았던 일본인의 경우를 떠올리기도 했다.

난세에 영웅이 나고 영웅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힘든 세상의 어려움을 구한다고들 한다. 이곳 신성리 마을에서의 이 충무공은 살아서는 나라를 지키고 죽어서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 이 마을주민들은 전사한 지 400여년이 넘은 이 충무공을 아직도 살아있는 듯 정성들여 모시고 있다.

덧붙이는 글 | SBS U news에도 송부합니다

덧붙이는 글 SBS U news에도 송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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