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그들은 왜 '좌편향적 역사 왜곡'이라 주장하는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장택상씨 가족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서 '사실의 왜곡'이라며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몇몇 보수 언론은 '대한민국 건국 주역들을 헐뜯고 해방전후사를 좌편향 시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드라마만 봐선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를 감싸며 권력 장악에 몰두한 정략가로 비춰지고 "대한민국은 출발부터 잘못된 나라라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역사적으로나 사실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여운형 암살 사건을 지시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음으로 해서 역사에 대한 왜곡을 저지르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래서 그 유족들이 나서서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자유시민연대' 등과 함께 <서울 1945> 방송 중단과 KBS 시청거부운동을 펼치겠다고 발 벗고 나설 참이란다.
역사가는 플롯을 짜 가는 드라마 작가이다
그럼 과연 일어났던 사실에 기초한 플롯을 가진 '드라마'는 역사적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야만 하는 것일까? 역사는 진실과 사실만을 후세에 전해주는 것일까? 아무리 한 역사가가 있는 사실을 고스란히 수집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학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있는 사실을 조각조각 단편적으로 묶어서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결합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는 작업이 진정한 '역사'라고 한다면, 그 역사는 얼마나 시시한 역사이고, 재미없는 플롯을 구성해 놓은 저급한 '역사 작가'의 작품이란 말인가? 역사가는 어떤 의미에서 홀로 플롯을 짜 가는 드라마 작가인 독단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역사가의 상상력과 문학적 능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 지점에서 역사가의 사실을 보는 '사관'이라는 중요한 측면이 개입하고, 역사 해석이라는 더 중요한 물음이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가 단순히 감성의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적어도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역사가의 해석으로 다가와야 역사는 역사로서의 그 진정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와 역사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역사가는 사실을 다루지만, 역사 소설가는 사실에 '허구'를 끼어 넣어 독자에게 재미와 흥미를 더해 준다. 드라마에 사실적 수법을 도입해서 액자 식으로 다큐멘터리와 같은 수법을 사용하면 그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증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으로 믿게 할 수조차 있을 것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진실과 드라마의 본질인 허구성' 사이의 갈등과 간격
역사는 과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꾸밈없는 진실'만을 기술한다는 과학주의적 입장과 진실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수사학적 주장은 늘 대립되어 왔다.
일찍이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역사의 진실을 주장했다. 그 근거는 자신이 직접 참전했고, 그래서 사건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목격자의 전문을 엄밀히 취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진실의 판단의 몫을 당대의 청중이 아니라, 미래의 독자에게 남겨놓았다. 이게 바로 카(E. H. Carr)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강조하는 '미래와의 대화'이다.
투키디데스의 역사가는 '일어난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독일의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인 랑케에게서도 그 울림은 그대로 계속된다. 일어난 개별적 일들을 질서 있게 배열하고, 거기에 아름다운을 주고, 매력적인 표현으로 수식하고 흥미와 재미를 주는 것은 역사가의 일이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하는 역사 소설가의 일인지도 모른다.
국가주의라는 시대적 환경이 조성되고 그 의식이 팽배할 때, 역사의 과학주의가 득세했다. 국가주의가 약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의 해체주의적 입장은 역사가 사실 내지는 진실의 기록이 아니라 수사적인 문학적 설득력을 목표로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강단의 역사학자들은 과거의 실재와 진실을 위태롭게 만드는 해체주의에 맞서 다시금 진실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