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 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간 경협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진은 두 정상이 회담 전 악수를 나누는 모습.AP=연합뉴스
위기 때마다 튀어나오는 중국 역할론
지난 2002년 말부터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민감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중국 역할론'은 마치 호리병속의 거인처럼 불려져 나왔다.
지난 2003년 초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적 다자회담 준비가 논의됐고 북한이 이를 거부했을 때, 2005년 2월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했을 때, 지난해 가을 미국이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를 문제삼아 금융제재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현재 미사일 위기 속에서…'중국 역할론'은 예외없이 튀어 나왔다.
또 항상 따라 붙는 해석이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행동만은 아무리 맹방이라고 해도 중국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중국이 북한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막았다는 증거는 없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위폐 문제다. 북한이 중국의 영토인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통해 위조 달러를 세탁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문제는 몰라도 위폐 제조는 범죄행위이며 중국에게도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주기 때문에 미국의 강경 조치에 중국도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북·중 관계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언론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관련 당사국들이 유연성을 발휘해 6자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말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쪽에는 북한 뿐 아니라 미국도 들어간다. 즉 양쪽이 타협하라는 말이다.
사실 미사일 발사 자체는 주권 국가의 합법적 권리다. "북한에 압력을 가하라"는 압력을 받을 때 중국은 "타국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중국이 간섭할 권리는 없다"며 뒤로 뺄 수도 있다.
이처럼 중국이 역할을 했다는 별다른 흔적은 없다. 그런데도 위기 때마다 다른 나라들이 계속 중국만 쳐다보게 된다. 다른 나라들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중국 역할론은 반복되고 이 와중에 중국의 동북아시아에서의 위상과 외교적 힘만 엄청나게 커졌다.
경제적 성장에만 정신없었을 뿐 정밀한 기술이 필요한 외교에는 서툴렀던 중국은 6자 회담 개최국이라는 위치를 십분 활용하면서 어느 덧 '동북아 외교의 최고 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북한경제가 왜 미국에 의존하도록 만들지 못하는가
만약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중국 포위에 힘을 쏟고 있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오히려 중국의 위상을 강화시켜주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시인 미당 서정주는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키워 준 것은 8할이 부시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군은 북한에 주둔도 하지 않고있다. 중국과 북한은 합동 군사훈련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현실적으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그들의 경제적 지원에서 나온다.
그 액수가 정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 무상 원조 액수가 한 해에 최대 2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설, 양국 무역을 합해 북한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50%가 넘을 것이라는 관측, 북한이 한 해 사용하는 석유의 70~80%를 중국으로부터 공급받는 다는 추정 만 있을 뿐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경제적 지원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개방·개혁으로 끌어내 세계경제에 포섭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에 꼼짝없이 의존하도록 만들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