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감동... 시민운동이 내겐 사회보험"

[활동가와 차 한 잔 ⑤] 북부시민회 김진숙 대표

등록 2006.06.30 07:57수정 2006.07.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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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높았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일 처리에 거침없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인상 때문이었을까? 내심 나는 북부시민회 김진숙(36) 대표를 제법 몸피도 단단하고 고집도 배어 있는 인물로 상상했다.

a 시민회 사무실. 창에 걸린 글귀 대로, 시민회는 사람을 존중하는 희망의 공동체를 꿈꾼다.

시민회 사무실. 창에 걸린 글귀 대로, 시민회는 사람을 존중하는 희망의 공동체를 꿈꾼다. ⓒ 최성수

지하철 4호선 미아역 근처에 있다는 북부시민회 사무실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 길눈이 어두운 탓도 있지만 사무실 역시 상상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사무실은 대로변에 있는 건물답지 않게 좁고 컴컴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3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민운동 단체이니 그럴 듯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내 생각이 지레짐작이었던 것이다.

책과 비디오 등 온갖 자료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책장과 여러 단체에서 받은 상패와 감사패들이 놓여 있는 책장, 올망졸망 서로 기대어 놓여 있는 책상들, 그 좁은 틈 중간에 놓여있는 원탁까지. 그 모습이 왠지 정겨워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

흰 원피스에 환한 웃음이 잘 어울리는 사람, 그가 바로 사단법인 열린사회시민연합 북부시민회 대표 김진숙씨였다. 그리고, 직접 만나 본 김진숙씨는 상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몸피가 단단하고 고집이 배어 있기는커녕 이웃같이 친근한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날 줄 모르는 인상이 아닌가.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가 부담스럽기는커녕 즐거웠던 것도 그가 지닌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 때문이었다.

a 북부시민회 김진숙 대표. 주위를 온통 환하게 하는 웃음이 일의 밑천 같다.

북부시민회 김진숙 대표. 주위를 온통 환하게 하는 웃음이 일의 밑천 같다. ⓒ 최성수

"좋아하는 일을 찾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 시민운동가라고 해서 굉장히 원칙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직접 만나니 이웃 사람 같은 친숙한 느낌이다. 개인적인 이력을 말해 줄 수 있나?
"전라북도 순창 출생, 나이는 서른 여섯. 아직 미혼이다. 20살에 상경해 지금은 남동생과 같이 살고 있다. 현재 맡은 일은 사단법인 열린사회시민연합 북부시민회 대표다."


- 시민운동은 어떻게 하게 됐는지?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틀에 박힌 그 생활이 너무 무료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성이 놀기 좋아하는 성격인데 직장 생활이 맞지 않은 건 당연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선배 소개로 열린사회시민연합 회원으로 가입한 게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다.

회원 가입 후 2년만인 1996년, 아예 전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무슨 큰 꿈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있던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신나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거다. 아마 거대한 꿈을 목표로 시작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a 학교 밖 학교, 열린 학교의 즐거운 한 때

학교 밖 학교, 열린 학교의 즐거운 한 때 ⓒ 북부시민회

- 북부시민회는 어떤 모임인가?
"정확히 말하면 사단법인 열린사회시민연합 북부시민회다. 1988년 창립된 시민운동 단체로 서울겨레사랑지역운동연합과 같은 민주운동 단체들이 모태다. 현재 서울 6개 지역에 열린사회시민연합 지부가 있고, 그 중 성북, 강북, 도봉, 노원구가 우리의 지역에 속한다. 회원은 정회원과 열린 회원으로 나뉘는데, 정회원이 약 320명 정도다. 총 회원이 500여 명이니 지역운동 단체로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회원은 매달 회비를 납부하고, 시민회에서 주관하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동한다."

-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주민자치, 자원봉사, 공동체 시민교육 등을 주로 한다. 주민자치를 위해 삶터 가꾸기 사업, 주민자치센터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한다. 공동체 시민교육 사업으로는 부모 역할 훈련, 직장인 자기 계발 프로그램, 문화 동아리 활동 등이 있다. 또 자원봉사 활동으로 저소득 가정의 집수리를 하고 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열린 학교를 개설해 '학교 밖의 학교' 역할도 하고 있다."

a 회원들과 함께 신명나는 잔치를

회원들과 함께 신명나는 잔치를 ⓒ 북부시민회

- 1988년에 창립했으면 곧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해 온 일도 꽤 많은 것 같은데?
"글쎄, 시대마다 주안점이 달랐기 때문에 한두 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들다. 1980~1990년대 초 우리 사회는 변혁기였고, 우리 운동도 그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회운동, 즉 통일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쪽이 그 시기의 중심 활동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지역 축제나 주민 자치와 관련된 일을 많이 했다. 최근에는 주거 복지 사업과 시민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지역 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등 지역 운동체로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추진하고 있다."

- '책읽는 마을' 사업이나 '해뜨는 집' 사업은 타지역에서도 꽤 많이 회자했는데, 소개 좀 해달라.
"1996년 '책 읽는 마을'은 우리 운동의 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사업이 우리 내에서 머물러 있었다면, 이 사업부터는 강북구 등 관계기관의 후원과 지원을 이끌어냈다. 이후 '책 잔치 글 마당' 등 여러 사업에서 구청이나 구의회 등의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다. 대안 유치원 사업도 부모들의 자발성을 통해 주민참여 시민운동의 틀을 일구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해 뜨는 집'은 우리 모임에 또 다른 성장을 가져왔다. 저소득층 집수리를 해 주는 봉사활동으로, 다른 사업들은 주로 여성이 참여했는데 '해 뜨는 집'에는 남성들이 일의 중심에 서게 됐다. 특히 각자가 가진 다양한 기술과 전문성을 봉사활동으로 실현한다는 점에서 시민운동의 질적 전환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 사업은 우리 지역에서 시작해 서울 9개 지역으로 확대되는 등 모범적 사업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a 해 뜨는 집(무료 집수리) 봉사에 나선 회원들.

해 뜨는 집(무료 집수리) 봉사에 나선 회원들. ⓒ 북부시민회


a 도배를 하고 있는 해 뜨는 집 회원들. 전문성과 자원봉사의 환상적 결합

도배를 하고 있는 해 뜨는 집 회원들. 전문성과 자원봉사의 환상적 결합 ⓒ 북부 시민회

날마다 감동의 물결... 시민운동이 내겐 사회보험

- 그래도 시민운동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힘든 때는 없었나?
"없다. 나는 일을 많이 벌이고 일에 파묻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특별히 힘들었던 게 없었다. 다만 일에 묻히다 보니 다양한 경험이 부족하고, 사회와의 소통 방법도 조금씩 잃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들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가족이나 집안과 갈등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야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힘든 게 뭐 있겠나(웃음). 오히려 늘 감동을 받는 편이다."

- 어떤 일에 특히 감동을 받았나?
"초기에는 회원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힘든 일을 하는 분들이었는데, 식당 조리사인 한 분이 밤늦게 음식을 싸와 자꾸 먹으라고 권하셨다. 아마 운동하느라 정신없는 나를 안쓰럽게 느끼셨던 것 같다. 지금도 그분의 마음을 잊을 수 없다. 명절 때 고향에 가는 내게 꼬깃꼬깃 접은 돈을 차비하라며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 주시던 분들, 어쩌다 여행을 가게 되면 고추장이나 필름 등 필요한 물품을 배낭에 넣어 주시던 분들의 따스한 마음이 내게 감동을 주고, 이 자리까지 오게 했다.

어제는 우리 남자 회원 중 한 분의 생신이었다. 여러분이 모이셨는데, 나를 문자로 불러냈다. 저녁 먹고 술 마시는 내내, 그분들은 우리 모임과 나에 대한 배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건 아마도 그분들이 남을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 마음 자체가 내게는 감동이다."

- 시민운동 살림이 빤할 텐데... 생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가끔 노년을 생각하면 걱정될 때도 있다. 변변한 노후 보장책 하나 없이 사니까. 생계는 현실에 맞춰 유지한다. 노후 보장을 해 놓지 않아서 더 시민운동을 하는 것 아닌가(웃음). 이 일이 우리 지역 사회의 안전망을 확보하고, 그 안전망이 생긴다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노후도 보장되리라 믿는다. 시민운동이 내겐 '사회 보험'인 셈이다."

시민운동가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a 그와의 인터뷰는 친근한 이웃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친근한 이웃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 최성수

- 하지만 최근엔 시민운동의 위기라는 말도 많이 나온다. 북부시민회의 목표는 뭔가?
"지금은 지역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진 시민단체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굳이 우리가 아니더라도 사업에 따라 중심 역할을 맡아 일을 추진할 조직이 많이 생긴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또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지역 전체를 보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다.

백화점식으로 사업을 나열하고 진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여러 사업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배치하고 조율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우리 북부시민회가 담당해야 할 몫이 아닌가 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시민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자치 모임의 성장을 리드, 지원하는 게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가령 '해 뜨는 집' 같은 주거 지원 사업은 주거환경 통합지원 사업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주거 빈곤 아동, 청소년에 대한 지원이 될 텐데, 구청과 학교, 시민단체들이 통합적으로 연계해 그야말로 통합적인 지원을 펼칠 계획이다. 학교 도서관 활성화 사업도 마찬가지다.

학교 도서관 운영에는 우리 단체에서 교육받은 어머니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해 지원하고 있다. 또 초등학교의 지역사회 교과와 우리 단체의 지원 사업을 연계해 지역의 학교 수업에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틀을 만들어 진행 중이다. 지역의 기관이나 문화재를 보물 카드로 만들어 지역사회 바로 알기 교육의 하나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지역사회의 시민 단체와 지역 학교, 지역 기관이 상호 연관해 지역민을 위한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 지역민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 북부시민회는 시민 교육과 주민 자치, 자원 봉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주민들 스스로의 변화와 발전을 일구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a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신명나는 잔치를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신명나는 잔치를 ⓒ 북부시민회

인터뷰 내내 김진숙 대표는 밝고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는 확신과 긍정적인 전망이 가득해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을 둘러봤다. 처음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인터뷰를 통해 나의 선입견, 운동은 힘들고 어려우며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도 바뀌었다. 책장에 놓여진 제1회 풀뿌리상 수상 상패를 바라보던 나는, 마치 중요한 질문을 빠트릴 뻔했다는 듯이 형사 콜롬보처럼 불쑥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한 마디로 시민운동이 무엇인가요?"

김진숙 대표는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시원스럽게 답했다.

"내가 변하는 것이지요. 내가 만족하고 충만해져야 그 에너지가 세상에 전파되는 것 아닌가요? 그래야 세상도 바뀌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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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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