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손영래 서울지방국세청장이 2001년 6월 20일 오전 국세청 기자실에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제 들을 만큼 들었으니 시비를 가리자.
언론사 세무조사를 "정치적 목적을 띤" 것으로 간주한 이주성 전 청장의 '소신'은 옳은가?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의 '소신'을 잉태했던 2001년의 '경험'엔 정치 입김이 묻어있었다. 언론사 세무조사 돌입단계에서부터 청와대가 조율했다는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됐고, 세무조사 결과 또한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공개사항과 비공개사항이 조율됐다. 그래서 언론사의 불투명 경영은 '언론자유 수호'라는 이상한 구호에 묻혀버렸다. 이런 식의 언론사 세무조사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동아일보>가 새삼 강조한 게 있다. 정기 법인 세무조사는 '통상' 5년에 한 번씩 하는 것이지 '꼭' 그렇게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은 맞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기 법인 세무조사를 미룰 수도 있고, 면제해 줄 수도 있다. 게다가 국세청은 지난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기 세무조사를 가급적 자제하겠다고 밝힌 바도 있다.
하지만 이건 다르게 봐야 한다. 김대중 고문의 표현처럼 "들판에 우리 혼자 서 있는 느낌"을 되새기며 비장한 결의를 다질 필요까지는 없다. 오히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의연한 자세를 갖는 게 도리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김대중 고문 스스로 그랬다. <조선일보>는 '잘못된 관행과 세법의 편의적 해석에 기대온" 결과 '탈세의 철퇴를 맞았다고 했다. 이건 2001년의 일이다. 그 뒤 5년이 흘렀다.
김대중 고문이 그것을 "시련"이라고 표현했으니 어느 재벌 총수의 '명언'에 빗대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했다. 시련에서 배웠다면 2001년의 경험은 '귀감'이 됐을 것이다. 잘못된 관행은 바로 잡았을 것이며, 세법을 엄정하게 해석해 경영을 일신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국세청 직원이 나오거나 말거나, 덤덤하게 대하면 된다.
두번째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던져줬다. 헌재는 신문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신문사 경영자료를 신문발전위원회에 보고토록 한 조항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신문사의 발행부수와 유가판매부수, 구독료·광고수입, 5% 이상 주주내역 등의 내밀한 경영자료를 신문발전위에 보고하는 게 합헌"이라고 결정한 헌재의 취지는 간단하다. 신문사 경영의 공익성 때문이다. 신문사는 이른바 '공익적 사기업'이라는 해석이다.
신문사가 '공익적 사기업'이라면 경영의 공공적 감시와 통제는 당위이고, 세무조사는 공공적 감시와 통제의 일환일 수 있다. 여기에 토를 달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매는 꼴이 된다.
의연하라, 덤덤하라
이쯤에서 접자. 말문은 이미 열렸다. 후임 국세청장이 국회 청문회장에 서는 날, 언론사 세무조사 여부는 정치쟁점이 될 것이고, '언론자유전사'들의 백가쟁명은 백화제방의 양태로 나타날 것이다. 제3자에 의한 재론·삼론의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다. 이 점만 경계하자.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은 한탄했다. "헌재는… 새 신문법에 대해 일부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승인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신문사의 발행인이 '탈세 유죄'가 확정돼 발행인 지위를 잃어버린 사실까지 적시한 김 고문은 "왠지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세무조사에 따른 대법원의 판결이 헌재의 신문법 선고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리고, "먼저번 세무조사에 대한 최종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어쩌면 또다른 세무조사를 맞을지도 모르는 사태로 가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논법에 따르면 헌재와 대법원, 청와대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연출하는 셈이다. 따라서 헌재의 결정, 대법원의 판결 또한 "정치투쟁의 계절"이 밀어낸 낙엽이다.
불확실한 내일의 일로 어제의 단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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