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자동차에 도전장 낸
'거북이' 자전거의 즐거운 패배

[도전체험 ①] 서울 홍은동서 광명시 경륜장까지 20.8km

등록 2006.07.11 23:20수정 2006.08.0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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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자전거와 '토끼' 자동차의 출근길 맞대결, 그 승자는?
'거북이' 자전거와 '토끼' 자동차의 출근길 맞대결, 그 승자는?오마이뉴스 김대홍

자동차는 자전거보다 빠르다. 그러나 도심 출퇴근 시간대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수많은 자전거 운전자들은 출·퇴근 시 자전거가 더 빠르다고 이야기한다. 자전거는 심한 교통 정체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보다도 빠르다고 말한다. 신호등과 환승에서 까먹는 시간 때문이란다. 그런 차이를 경험했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는 직접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자전거와 자동차, 자전거와 대중교통의 대결 등 두 차례 실험을 준비했다. 여기에 그 과정과 결과를 공개한다.

이솝우화에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이야기가 나온다. 토끼는 거북이보다 몇 배나 빠르지만 결국 승리의 월계관은 거북이에게 뺏긴다. 해서 '거북이'인 자전거가 '토끼' 자동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름 하여 현대판 '거북이와 토끼'. '아니, 그게 무슨 대결이야, 말이 돼? 그럼 자동차도 중간에서 낮잠 자는 거야?'라고 미리 따지실 분들, 걱정 마시라. 아무리 시속200km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자동차라고 하더라도 중간에 낮잠을 잘 필요가 없다. 단 낮잠 자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된다. 바로 아침 출근 시간대에 대결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에서 아침 출퇴근 시간이 막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 가끔 속도를 내기도 하지만, 시속 20~30km대에 묶여 있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평균 시속 20km 이상은 거뜬히 낼 수 있는 자전거와 승부를 겨룰 수 있지 않겠는가. 자전거의 승리를 예상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 11년차의 김정훈 PD(왼쪽)와 자전거 출퇴근 6개월차의 김관식씨. 과연 대결의 결과는?
자동차 운전 11년차의 김정훈 PD(왼쪽)와 자전거 출퇴근 6개월차의 김관식씨. 과연 대결의 결과는?김대홍
날을 잡았다. 때는 7월 3일. 경로는 서울 서북쪽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서울 서남쪽에 위치한 경기도 광명시 경륜장까지. 정확히 20.8km 거리다. 선수는 두 사람이다.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오마이뉴스 김정훈(36) PD. 11년차의 베테랑 운전사다.

그에 반해 자전거를 몰 사람은 현역 약사인 김관식(50)씨. 자전거로 출퇴근한 지 이제 6개월 차. 기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온몸에 훈장(상처)을 주렁주렁 달고 다닐 만큼 자전거 타기에 한창 물이 오른 상태로 의욕이 넘친다. 퇴근길 안양천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너무 좋아 온라인상 별칭도 '밤안개'로 정했다.

낮잠 자지 않은 '토끼', 오히려 느긋한 '거북이'


성산대교에서 안양천으로 이어진다. 성산대교 계단을 자전거를 밀면서 오르는 김관식씨.
성산대교에서 안양천으로 이어진다. 성산대교 계단을 자전거를 밀면서 오르는 김관식씨.김대홍
원래 오전 8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일반적인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다. 그러나 장비를 설치하느라 시간이 늦춰져 결국 8시 25분에 출발했다. 자동차 출근족들이 끝물을 타는 시간이기 때문에 자동차에게 조금은 더 유리한 상황. 어차피 자전거의 승리를 예상했으니 이 정도쯤이야.

그런데 '거북이'는 여유 넘쳤다. '밤안개' 김관식씨는 가파른 내리막길에선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백련산 중턱에 위치한 집에서 그는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내려갔다. '토끼'를 잡겠다는 긴장감보다는 오히려 '거북이'의 지나친 여유가 느껴지는 상황.


아무튼 경기는 시작됐다. '거북이'는 홍제천을 따라 성산대교 방향으로 나아갔다. '토끼'는 홍제동에서 연희교차로를 타고 양화대교 쪽으로 달렸다.

홍제천 자전거도로는 2차선으로 비교적 폭이 좁다. 게다가 사람이 많아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 자전거는 시속 20km 안팎의 속도를 냈다. 그 순간 자동차는 출근길 끝물에 막혀 약간 밀리고 있었다.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에도 김관식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페달을 밟았다. 짧은 내리막길에서 잠시 시속 22km를 찍는가 싶더니 다시 시속 20km로 돌아갔다.

성산대교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끌고 인도로 올라갔다. 약 3분의 1가량 되는 지점이었다. 그 순간 자동차가 어디쯤 도착했는지 궁금했다. 이제 막 양화대교에 들어섰다는 답변이 왔다. 지금까지는 무승부. 남은 거리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는 뜻이다.

성산대교를 건너 안양천에 진입했다. 진입계단엔 자전거를 끌고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자전거족을 위한 배려였다.

안양천 목동교 부근을 달리는 김관식씨. 멀리 목동 지역 고층빌딩이 보인다.
안양천 목동교 부근을 달리는 김관식씨. 멀리 목동 지역 고층빌딩이 보인다.김대홍
강폭이 넓어지고 길이 넓어졌다. 양옆으로 자란 풀이 성인 남자 키보다 크다. 바람까지 살살 불어주니 자전거 타기에 아주 좋은 날씨. 김관식씨의 자전거 속도는 조금 높아졌다. 시속 21~22km. 꾸준하다. 이게 '거북이'의 힘 아니겠는가.

김관식씨는 자동차와의 대결이라고 해서 평소보다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를 나눌 때는 시속 17~18km까지 속도를 떨어뜨릴 정도였다.

잠시 뒤 잠수교를 건넜다. 한강에만 잠수교가 있는 게 아니다. 안양천에도 있다. 신정잠수교다. 다리를 건너 하천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일역'이 보였다. 여기서 구일역을 한 바퀴 돌아 뒤편으로 나오니 목감천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천 오른쪽은 서울시 개봉동, 왼쪽은 경기도 광명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 자동차는 '불량토끼'가 아닌 '우량토끼'

다시 자동차가 어디까지 갔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소통이 잘 된단다. 허걱. 아무래도 오늘 자동차는 '불량토끼'가 아닌 '우량토끼'다.

이날 자동차는 '출근길 정체'에도 끄덕없는 '우량토끼'였다.
이날 자동차는 '출근길 정체'에도 끄덕없는 '우량토끼'였다.김대홍
혹시나 자극을 받을까 싶어 김관식씨에게 "자동차 소통 잘 된데요"라고 살짝 운을 띄웠다. 그런데 살며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여전히 속도는 시속 21~22km. 내리막길에서 10초 정도 되는 시간 동안만 시속 27km를 찍었을 뿐이다.

아무튼 어느새 목감천 길이 끝나 도심 위로 올라왔다. 저 멀리 광명시 경륜장이 보였다. 이제 고지가 보인다. 다시 한 번 자동차가 어디쯤 갔는지 확인했다. 광명 나들목을 통과하고 있단다. 자동차가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서히 자동차의 승리가 눈앞에 보였다.

김관식씨는 '포커페이스'였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거의 변함없이 제 속도를 유지했다. 속도를 떨어뜨리지도 높이지도 않았다.

9시 32분 16초에 정확히 경륜장 입구에 도착했다. 1시간 7분가량 걸렸다. 자동차는 24분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8분여의 아쉬운 패배였다.

김정훈 PD에게 달린 과정을 물었다. 양화대교에서 목동교 지점까지는 좀 밀렸단다. 그런데 목동교를 지나면서부터 아주 원활한 소통이 이뤄졌다고. 약 시속 100km의 속도로 계속 달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3분의 2 구간 정도는 약간 정체가 됐지만 3분의 1 정도는 '쌩쌩' 달렸다는 말이다.

자전거 VS. 자동차 출근 대결 코스도(7월 3일 월요일 오전 8시 25분 출발)
자전거 VS. 자동차 출근 대결 코스도(7월 3일 월요일 오전 8시 25분 출발)오마이뉴스 고정미
이렇게 해서 이솝신화는 깨졌다. 단 김관식씨가 이길 목적으로 조금 더 무리를 했다면 승리는 '거북이'의 몫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자동차길이 평소처럼 조금만 더 정체되었더라도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

그러나 김관식씨는 자전거 타기가 한두 번의 승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생동안 꾸준히 가야하는 일임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속도를 유지하고, 비 오는 날도 자전거를 탄다고 담담하게 말한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김관식씨에게 소감을 물었다.

"자동차가 조금 빨리 도착했네요. 그런데 그 안에 갇혀 있는 시간이 즐거웠을까요. 저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안 내내 즐거웠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동식물들을 보는데요. 오리, 벌, 나비 등. 얼마 전엔 오리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아서 데리고 다니더라고요. 허허허. 운동은 평생 하는 거예요. 억지로 하는 게 아니죠.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워야죠."

그는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다섯 번 뛰었다. 그런데 한 번도 시계를 차고 뛰지 않았다. 기록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녹음한 MP3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뛴다. 한 번은 MP3를 놓고 참가해 달리기를 포기한 적도 있다. 이날 '거북이'의 패배는 어쩌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즐거운 패배'였다.

자전거와 자동차의 대결은 자전거의 아쉬운 패배로 끝났다.
자전거와 자동차의 대결은 자전거의 아쉬운 패배로 끝났다.김대홍

덧붙이는 글 | * 홍은동에서 광명경륜장 경기장까지 전혀 길이 막히지 않는다고 봤을 때 자동차로 예상 소요시간은 36분이다.- 네이버 빠른길 찾기에서

*도움 주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자출사)'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홍은동에서 광명경륜장 경기장까지 전혀 길이 막히지 않는다고 봤을 때 자동차로 예상 소요시간은 36분이다.- 네이버 빠른길 찾기에서

*도움 주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자출사)'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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