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은 우리의 운명이다"

[지역언론 별곡-134] 강준만 교수, <한국현대사 산책> 90년대편 3권

등록 2006.07.08 16:13수정 2006.07.0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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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990년대를 역사로 기록해도 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담담하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새벽에 날면 어떻고 한낮에 날면 어떤가?, 그게 전문주의 함정이다."

그러나 철학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는 '미네르바의의 부엉이'가 반드시 황혼녘에 날아오른다고 믿어온 많은 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이 답변에 동의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한 시대 또는 한 두 세대가 지난 다음에야 객관적인 역사기록과 평가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간직해 온 사학자들. 아마 기절초풍할 만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화두를 머리에 이고 살 것이다. 그들이 성역과 금기로 여겨온 '거리두기의 법칙'에 과감한 도전을 시도한 건 바로 언론학자이기 때문이다. 누구일까.

'3당 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에서 '통합'과 '분열' 담담히 관찰

a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 인물과 사상

아마 짐작이 갈 것이다. 최소 하루 20장의 원고지, 한 달 600장 이상의 글을 쓰는 다작논객, 고립무원의 상태에서도 실명비판을 고집하는 사람, '김대중' '노무현' '이건희' 등 강자이거나 '죽이기' '살리기' 등 칼날 같은 이슈들과 정면 대결을 마다하지 않은 교수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일을 냈다.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3당 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3권을 출간했다. 2002년 겨울방학부터 시작된 현대사산책의 대장정은 이로써 18권을 완간한 셈이다.

8・15 해방에서 출발한 그의 현대사산책은 10여 년에 걸친 자료수집과 1만여 개의 주제별 파일을 통해 이승만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스포츠, 대중문화, 언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나눠 각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한국현대사 전반을 미시적이고 매크로 한 관점에서 통사를 기술한 때문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분열'과 '통합'은 책 3권에서 펄펄 살아있다. 90년대 초 한국 정치사를 뒤 흔든 3당 합당에서 시작된 통합은 결국 분열로 막을 내린다.


그는 '분열'을 왜 스타벅스에 비유했을까. 스타벅스는 그의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포지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여름 출간한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에서 그는 사교행위의 주요 매개 수단이었던 커피와 서구화의 상징인 스타벅스를 한국 현대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장르로 다뤘다. 한국인의 이중적인 문화를 웅변하는 다방과, 커피에 울고 웃은 한국 근현대사를 고종에서 스타벅스에 이르기까지 110년간에 걸쳐 조명한 것이다.

"분열을 내장한 통합은, 분열을 긍정하는 노마드로 바뀌었다"


a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이 출간됨으로써 모두 18권의 시리즈가 완간됐다.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이 출간됨으로써 모두 18권의 시리즈가 완간됐다. ⓒ 박주현

그런 그가 <한국현대사산책> 90년대 편에서도 3당 합당과 스타벅스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는 1권에서 "3당 합당은 분열을 내장한 통합이었던 반면, 스타벅스는 분열을 긍정하는 노마드(nomad)였다"고 쓰고 있다.

"스타벅스는 에머슨의 금언 같은 글로 벽을 장식하는 등 이상의 상품화를 추진한 반면, 3당 합당은 욕망에 명분을 씌우고자 애쓴 상품의 이상화였다"고 그는 회고한다.

이 책 1권은 6공 체제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1장), 이념에서 땅으로(2장), 소비문화와 대중문화의 결혼(3장), 김영삼・이건희・신세대 신드롬(4장)으로 구성됐다. 페이지마다 주석을 달아가며 이해를 도운 저자는 특히 각 장 끝 부분에 '자세히 읽기'를 통해 각 연도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슈나 중요의제, 사건 등에 대한 내막(비하인드 스토리 중심)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90년대 초기 한국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기본 문법이 소비와 문화임을 읽을 수 있다. "90년대는 소비의 시대였다. 전제 없는 소비였다. 허세가 난무했다. 그건 지도층까지 지배한 시대정신이었다. 이른바 IMF환란은 그 틈을 파고들었고, 한국사회는 한동안 통곡하고 신음했다. 그런 소비 이데올로기는 정치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하고 끈질긴 것이어서 IMF 환란이 표면적으로 극복되는 조짐을 보이기 무섭게 다시 살아났고 이후 2000년대까지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기본 문법이 되었다"고 그는 시대적 상황을 풀이했다.

정치사회 통합과 분열, 언론 흥망성쇠와 무관치 않아

지역의 여론소통과 지역언론 중요성을 평소 강조해 온 강 교수는 이 책에서도 정치, 사회의 통합 및 분열현상은 언론의 흥망성쇠와 무관치 않음을 여러 차례에 걸쳐 풀어 놓고 있다.
1권 마지막 '자세히 읽기'에서 지역생활정보신문 돌풍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지역 일간지들의 위협요소로 분석했다.

"생활정보신문의 호황은 전반적인 지역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엔 위기로 작용했다. 지방자치에 기여하고 지역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위한 지역신문으로 기능하면서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용도로 생활정보와 관련된 광고를 싣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었지만 생활정보신문은 기존의 일간지들에 큰 위협이 되었다. 생활정보신문이 일간지들의 2・3행 짜리 광고 물량을 급격히 잠식했기 때문이다."

이 책 2권은 6공 남북전쟁・입시전쟁・광고전쟁(5장), 세계화와 삼풍백화점(6장), 한총련・서태지・날라리(7장) 등으로 구분해 시대별 사건과 교훈을 정리했다.

'자세히 읽기'통해 왜곡된 현대사 공백 채워주려 노력

강 교수는 이 책 첫 장 '자세히 읽기'에서 '김일성. 김정일은 섹스광?'이란 제목의 글을 소개해 주목을 끈다. 전쟁위기설 등 남북관계의 긴장상황에서 묘사된 언론보도 행태를 면밀히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 언론은 그간 김일성 부자를 희대의 호색한으로 묘사해 왔다. 그들의 섹스 행각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정도는 언론 스스로도 주저할 만큼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김일성 부자와 관련되는 것인 한 국가안보를 염려하는 애국적인 고발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언론엔 김일성부자의 사생활 보도가 일거양득의 상품이었던 모양이다. 이 점에 있어선 특히 여성지들과 함께 조선일보가 주간지 또는 월간지를 통해 눈부신 활약을 했다."

한편, 90년대 중반 수많은 신드롬이 양산되었음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과거를 동경한 전쟁 신드롬과 가족해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애인・아버지 신드롬, 애틀랜타올림픽이 낳은 빠떼루 신드롬, 자신을 최고로 내세우며 지기도취에 빠지는 공주병 신드롬 등이 소개됐다.

90년대 중반의 언론시장 풍향도 빠뜨리지 않았다. ''언론재벌'과 '재벌언론'의 전쟁' 편에선 '언론계 전두환 장학생', '부끄러운 신문 일백돌', '신문사 지국장 피살사건' 등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언론계 내부 사건과 에피소드 등을 상세히 묘사했다.

마지막 3권은 IMF 사태의 충격(8장), 국가적 생존투쟁(9장), 다시 소비의 시대로(10장) 등으로 시기를 구분지어 역사를 산책했다. '호남 호황설', '호남 역차별론'이란 제목의 '자세히 읽기'에서 강 교수는 90년대 후반에 영・호남 대립구도가 정치권과 언론계에 의해 더욱 심해졌음을 묘사했다.

그는 "1998년 영남지역에선 '호남 호황설'이 광범위하게 퍼진 반면, 호남에선 '호남 역차별론'이 제기됐다"고 했다. 이로 인해 영・호남 민심의 간극은 더욱 벌어져만 갔다는 사례들을 다양하게 풀어 놓았다.

"한국사회 통합과 분열게임은 뫼비우스의 띠"

그는 또 이 시기, 신문시장에 불어 닥친 또 다른 위기요인과 실체가 예고됐음을 읽게 한다. 인터넷 매체의 급증으로 기존 광고시장의 판도에도 적잖은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례를 들며 인터넷에 밀리는 시대가 곧 도래 할 것이라는 당시 지적들을 소개한다. 그는 3권 '맺는말'에서 90년대 한국사회의 통합과 분열의 게임을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했다. 전투적 극단주의의 유산은 '통합'이 아닌 '분열'이었음을 말미에서 화두로 던지며 안타까워한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고 연대는 나의 운명'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그는 "월드컵 신드롬처럼 예외적인 바람의 기운을 타고 2002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은 바로 그렇게 달라진 세상 문법을 상징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정권과 차별화 또는 구별 짓기를 시도한 노무현 정권의 전략은 결국 해체였다"고 분석한다.

"국정운영은 통합을 내걸면서도 끊임없이 분열을 추구했고, 분열이 명분과 만나 뿜어내는 열기로 정권은 몸을 덥혔다"고 통렬하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우리의 목표가 통합이 아니라 연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자꾸 되지도 않은 통합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갈등과 증오도 일어나는 것이다"고 표현함으로써 90년대의 한국사회가 주는 교훈을 말하려 한다.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라는 그의 첫 화두처럼.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1 -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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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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