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날지도 모르는데... 운동은 무슨?"

대포동 미사일과 할머니와 나

등록 2006.07.09 19:24수정 2006.07.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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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북한이 결국 미사일을 발사했다. 온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대포동 미사일이 모두가 잠들어 있던 새벽 날아갔다. 42초만에 추락했다고는 하지만 결과야 어찌되었던 간담을 쓸어내리게 한 사건이었다.


아직도 모두가 북한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 실로 미사일이라든지 전쟁이라든지 하는 용어는 아직도 우리에게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북한 미사일이 발사되고 하루 지난 6일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할머니야. 잘 지내지 내 강아지?"
"그럼요. 할머니도 잘 지내시죠?"
"할미 걱정은 말고. 밖에 함부로 나가지 말고 조심해."

"제가 뭐 어린가요. 지금 막 운동하러 나가던 참이에요."
"운동은 무슨, 전쟁 날지도 모른다던데."
"갑자기 무슨 전쟁이에요. 말두 안돼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정적이 흘렀다.


"할머니, 누가 그래요 전쟁 난다고. 그런 거 아니에요. 너무 걱정마세요."
"누가 아니. 여기 사람들은 (할머니 동네분들) 북한이 미사일 발사했다면서 내년이고 언제고 전쟁 날 듯하니, 밭일도 그만하자고 하던데."

할머니와 나는 5분간 언쟁을 벌였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의견과 그래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할머니 의견으로.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할머니를 안심시켜드리는 것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당연히 할머니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계시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할머니의 진정 어린 걱정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신던 신발을 벗어버리고 이내 방으로 들어와 앉아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6.25때 할아버지를 잃으신 할머니였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6.25가 단지 교과서에 나오는, 북침과 남침을 구분하는 이론이었고 6월 25일에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영상이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야만 하는 일이었고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지낸 참으로 힘겨운 시간이었다. 원인과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할머니 손을 꼭 잡아드렸다. 주름진 할머니 손이 그토록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할머니 손을 꼭 잡아드렸다. 주름진 할머니 손이 그토록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장지혜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와 전쟁을 경험해 본 세대와의 이견 다툼이라고 전화내용을 무시하기엔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솔직히 난 너무 무심했다. 아침에 접한 뉴스에 약간 놀라기만 했을 뿐, 저 지구 반대편 나와는 상관없는 지역의 소식으로 치부해버렸다.

전쟁이 날지도 모르니 밭일도 그만둬 버리겠다던 할머니도 약간의 오버(?)는 있었지만 나는 더 심한 오버(?)를 했던 것이다. 바로 옆에서 미사일이 발사되거나 말거나 나는 커피를 앞에 놓고 신나게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니 말이다.

우리사회는 어땠는가. 미사일이 발사되는 순간에도 항공에는 비행기가 떠다녔고 정부차원의 구체적인 어떤 대책도 나오지 못했다. 또 다른 미사일이 추가 발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빗나간 예측만을 늘어놓은 채…. (물론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 결코 잘못되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일요일, 시간을 내 할머니 댁을 찾았다.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와 나를 맞아주시는 할머니의 손을 꽉 잡아드렸다. 주름진 할머니의 손이 그토록 부드러울 수 없었다. 세월의 차이가 경험의 차이를 만들었고 경험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를 만들었지만 안전 불감증에 빠진 나(우리 사회)에 대한 우리 할머니의 손녀 사랑은 그 차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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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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