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동 서래마을을 걸었습니다

[창이 있는 풍경 27] 매일 갓 구워내는 빵처럼...

등록 2006.07.24 16:07수정 2006.07.2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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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크라상' 내부. 풍성한 프랑스 빵을 맛볼 수 있다. 저기 '빵걸이'도 처음 본다.
'파리 크라상' 내부. 풍성한 프랑스 빵을 맛볼 수 있다. 저기 '빵걸이'도 처음 본다.박태신

서래마을에 갔습니다. 서래마을이 어디냐구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를 말합니다. 이곳의 길 이름이 '서래로'이고요. 가끔 이국문화를 잠깐이라도 경험하고 싶은 요량이면 이곳을 들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하철 7호선 반포역에서 142번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두 정거장만 가면 됩니다. 대로에 비하면 샛길 정도에 해당하는 '서래로' 곳곳에 프랑스식 이름의 가게들이 눈에 띕니다.


우선 프랑스 정통 빵을 파는 빵집 '파리 크라상'에 들어갔습니다. 빵을 사러 온 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줄을 서서 계산을 할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손님이 되어 빵을 골랐습니다. 프랑스 정통 빵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서래로를 찾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버터로 만든 바삭한 페스츄리 속에 초코칩"이라는 설명이 되어 있는 Pain aux chocolate, 산딸기 파이인 Framboise pie, 바게트 일종인 Campagne를 선택했습니다. 바게트 종류만 해도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바게트'(baguette)는 막대기라는 뜻인데 바게트 빵을 우리나라 말로 하면 '막대빵'이라고나 할까요.

매일 신선한 빵을 갓 구워내는 이들. '갓 구워내다'라는 말의 뉘앙스가 좋다.
매일 신선한 빵을 갓 구워내는 이들. '갓 구워내다'라는 말의 뉘앙스가 좋다.박태신
이 빵가게는 1층이 매장이고 지하가 빵을 만드는 곳인데 유리창 너머 기사들이 빵을 만드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지켜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빵사로 부르는 이들을 저이들은 '기사'라고 부르더군요.

빵 만드는 모습을 어느 정도 보이게 했다는 것은 그만큼 빵 만드는 데 있어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일테지요. 믿을만 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되고요. 사실 ‘파리 크라상’은 매일 원료를 주문해서 하루 판매를 원칙으로 기사들이 직접 빵을 만들기 때문에 신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팔다 남은 빵은 어떻게 하나 직원에게 물어보니 고아원에 전해준다고 합니다.

빵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파란 눈의 아이들.
빵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파란 눈의 아이들.박태신
사진을 좀 찍은 후 이 가게 안에 비치된 식탁에서 빵을 먹습니다. 점심 대용입니다. 남은 바게트는 싸서 가방에 넣어둡니다. 바게트는 썰어서 틈나는 대로 먹으면 좋은 빵입니다.


거리를 걷습니다. 근처에 아동 전문 영어서점이 있습니다. 'peek-a-book'이라고 이름 붙여 있네요. 우리말로 '책 살짝 엿보기'입니다. 영어로 동화 읽어주는 수업을 따로 진행하고 있답니다.

아동 전문 영어서점을 '살짝 엿보았다'.
아동 전문 영어서점을 '살짝 엿보았다'.박태신
<외국어, 내 아이도 잘할 수 있다>라는 책을 보면 영어, 중국어에 능통한 12세 소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외국어대 최정화 교수와 소녀의 가족이 공동 필자로 나와 영어학습법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이 책에는 성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지침이 나와 있습니다. '몸통찾기', '깃털찾기'라는 개념을 꼭 한번 보십시오. 아무래도 외국어는 불편하더라도 감각을 총동원해야 익혀질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피해가는 불편한 방법이지만 거치지 않으면 안될 방법이지요. 그리고 성인들도 동화로 외국어 접하는 방법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살짝 엿보기'라는 말이 마음에 듭니다. 우리들이 흔히 쓰는 '마스터한다'라는 말의 부담을 잘 아시지요. 때로는 살짝 엿보는 것, 흥미의 한 실타래를 잡아당겨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것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부담도 지니지 않고서 그 줄에 이끌려 들어가다 보면 말입니다. 이곳 서래마을에 오게 된 것도 신문에 난 기사를 스크랩해둔 덕분입니다. 작은 손짓, 몸짓이면 충분합니다. 그 다음에 깊어지는 관심은 저절로 자라날 가능성이 큽니다.

'서래로'를 따라 쭉 올라갑니다.프랑스 학교를 찾고 싶었습니다. 우리네 학교처럼 운동장 있고 건물 있는 곳인줄 알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곳이 없습니다.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길가에 있는 큰 건물 하나가 학교였음을 알았습니다.

프랑스 학교. 옥상이 아이들 뛰노는 운동장 아닌지...
프랑스 학교. 옥상이 아이들 뛰노는 운동장 아닌지...박태신
'Lycée Français de Seoul'(서울 프랑스 학교)이라는 이름입니다. 'lycée'(리세)는 프랑스의 고등학교를 말합니다.

간이 주차장 벽에 프랑스 국기와 함께 'Liberté Egalite Fraternité'(자유 평등 박애)라고 씌어 있습니다. '주차 금지'도 같이 적혀 있어 얼마나 어색하던지.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가 생각납니다. <세가지 색-블루> <화이트> <레드>. <레드>를 빌리러 비디오 가게에 가니 오래 되어서인지 비디오가 없습니다. 영화 끝부분에 <블루>와 <화이트>의 주인공인 줄리엣 비노쉬와 줄리 델피가 사고 선박에서 구조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연작의 묘미지요.

프랑스 학교는 건물 중간 부분만 원형인 특이한 구조의 건물입니다. 옥상에 높은 철조망과 조명 기구가 있는 걸 보니 이곳을 운동장 대용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7월에 다시 찾아가니 프랑스 학교 현관의 광고물들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다. 방학에 들어간 것이다.
7월에 다시 찾아가니 프랑스 학교 현관의 광고물들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다. 방학에 들어간 것이다.박태신
현관에 여러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루오의 그림 전시회가 대전 시립미술관에서 있다는 정보를 얻습니다. 8월 27일까지 총 225점의 작품이 전시된답니다. 올해 한불수교 120주년을 기념해서 여러 행사가 펼쳐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지금 예술의전당에서 마네, 모네, 르느와르 등의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아하! 그리고 올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야수파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었지요. 프랑스 화가의 작품도 많이 전시되었더랬습니다. 이래저래 프랑스 화가들의 '방문'이 많은 한 해입니다.

소박한 풍경과 규모의 '서래커피집'. 진한 에스프레소를 맛보았다.
소박한 풍경과 규모의 '서래커피집'. 진한 에스프레소를 맛보았다.박태신

'서래커피집'에 들릅니다. '파리 크라상' 뒤쪽 골목에 있습니다. 빌라 건물과 상가 건물이 붙어 있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 1층에 있습니다. 빌라의 복도 계단 밑이 입구인 작은 카페입니다. 안에는 많은 다기도 전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모든 메뉴가 3000원이고 리필도 가능합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합니다. 1인용 커피 추출기가 있어 사용법을 물어봅니다. 친절하게 답해줍니다. 가져온 바게트 빵도 먹습니다.

가끔 프랑스 빵이 그리우면 찾아가려고 합니다. 운이 좋으면 방금 갓 구워낸 빵을 맛볼 수 있겠지요? 우리들 일상도 그렇게 갓 구워내는 마음으로 살면 좋겠지요?

보르도 와인 전문 매장. 보르도는 프랑스의 지방 이름이다. 포도주 라벨 읽는 법을 알아볼까?
보르도 와인 전문 매장. 보르도는 프랑스의 지방 이름이다. 포도주 라벨 읽는 법을 알아볼까?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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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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