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위부터 어머니, 아버지, 내 티셔츠인데 어머니의 것이 제일 큰사이즈다.이덕원
그렇게 월드컵을 즐길 준비를 마치니, 어느덧 월드컵 개막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고민 아닌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한국의 경기는 최소 세 번. 마냥 설레기만 해야 할 때인데 나는 그 세 경기를 누구와 볼 것인가 하는 다소 엉뚱한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이다.
광화문에서 함께 거리응원하자는 여자친구, 찜질방에 모여서 응원하자는 고교동창들, 자취방에서 족발에 소주 한잔 걸치며 응원하자는 대학동기들.
하지만 작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집에서 단출하게 보실 부모님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간접프리킥이 뭐고 직접프리킥이 뭔지, 페널티킥은 뭐고 오프사이드는 뭔지 가르쳐주신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무심하게 주무시는 어머니를 옆에 두고 아버지는 홀로 축구경기를 시청하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가족과 함께 월드컵을 즐기기로 했다. 사실은 부모님과 함께 봐야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만큼 나와 축구경기를 보는 시각이 비슷한 친구도 없고, 어머니만큼 현장감 넘치게 소리 지르며 보는 여자친구도 없으니.
월드컵의 막이 오르고 한국의 토고전, 프랑스전, 스위스전이 이어졌다. 응원을 하며 먹을 간식으로 준비한 족발은 뒤로 한 채 노심초사 경기를 보던 토고전, 그 어느 때보다 어머니가 현장감 넘치게 환호한 프랑스전, 경기가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심판의 편파판정에 대한 울분을 삼키지 못한 채 술만 마신 스위스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월드컵 박사가 다 된 울 엄마
불행히도 한국의 경기는 최소한으로 주어진 세 번에 그쳤다. 그리고 나는 토너먼트부터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없었다. 물론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에서 심판의 편파판정에 월드컵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모회사 인턴생활을 위해 상경해 일과에 바쁘다보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토너먼트 경기를 놓치고 있던 차, 집으로 내려간 나는 그동안 월드컵 경기를 시청했을 아버지에게 각 경기의 내용을 물었다.
"네 엄마한테 물어봐, 아주 월드컵 박사가 다 됐어."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거봐, 내가 프랑스가 잘 할 거라고 그랬지? 포르투갈에 걔는 보면 볼수록 잘 생겼더라. 참, 루니 걔는 애가 정말 못 됐더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만 간간히 관심 있는 경기를 골라 보고, 어머니는 한국이 16강에서 탈락했으니 관심 밖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말처럼 어머니는 월드컵 박사가 다 된 듯 경기내용부터 선수까지 줄줄이 외고 계셨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월드컵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