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코끼리주경심
여름축제를 맞아 그날은 유치원에서 부모님들에게 보여드릴 작품을 만들기로 했고, 아이는 코끼리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한지를 찢어서 코끼리 몸에 한참 붙이고 있는데, 아이들을 둘러보며 요리조리 설명도 해주시고, 살짝 손도 봐주시며 다니시던 선생님이 아이 곁으로 오시더니 다짜고짜 "너 이게 뭐니? 다시 해!"라며 아이가 열심히 붙여놓은 한지를 팍팍 잡아서 떼어버렸다는 겁니다.
"왜?"
"나는 알록달록 코끼리를 만들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알록달록 코끼리가 세상에 어딨냐고 다 떼버리셨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다 해놓고 놀고 있는데 나 혼자만 놀지도 못하고 다시 붙였어요."
"그래서 속상했어?"
"네!"
세상에 알록달록 코끼리가 있을 리 없겠지요. 하지만 책 속에는 알록달록 코끼리도 있고, 바둑판 모양의 코끼리도 있습니다. 주말마다 어린이 도서관을 찾아가는 우리에게는 말이에요. <알록달록 코끼리 엘머>란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엘머'는 알록달록 코끼리입니다. 그리고 엘머의 친구들은 모두 회색코끼리입니다. 하지만 회색코끼리도 모양은 모두 다릅니다.
빼빼 끼리, 뚱보 코끼리, 키 큰 코끼리, 키 작은 코끼리, 코가 긴 코끼리, 코가 짧은 코끼리... 모양과 크기가 달라도 모두가 친구입니다. 그 중에서도 알록달록 코끼리 엘머는 모두가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엘머의 날도 있습니다. 엘머의 날에는 모두가 엘머처럼 색깔을 칠합니다.
이 책을 읽어주면서 저는 아이에게 세상에는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도 있고, 다리나 팔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겉모양만 다를 뿐 마음 속은 모두가 따뜻하다고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아이는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봐도, 몸이 불편한 사람을 봐도, 얼굴이 조금 못 긴 사람을 봐도, 키가 좀 작아도... 그 모두를 '엘머'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엘머니까 사랑해 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의 마음을 획일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참히 짓밟은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습니다. 사실 "귀엽네!"까지는 아니더라도 "왜 알록달록 코끼리를 그렸니?"라고 한 번만 물어봐 줬으면 좋았을 걸...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제가 아이의 엄마기 때문에 드는 것만은 아닐 것 입니다.
물론, 한 학기 동안의 실적을 부모님들 앞에서 평가받는 입장의 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기에 "엄마가 선생님에게 엘머를 보여주세요"라고 말하는 이이에게 이렇다 저렇다 대답을 못해줬습니다.
이런 복잡함 때문인지 아이가 들고 있는 코끼리가 슬퍼 보이기까지 합니다. 엘머가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엘머를 몰라줘서도 아닙니다. 다시는 아이의 가슴에 엘머가 살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슬펐습니다. 어른들의 눈에 비친 세상에 어떻게든 아이들은 적응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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