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알록달록'하면 안 되는 걸까?

언제까지 아이들을 어른들에 맞춰야 할까요

등록 2006.07.14 16:45수정 2006.07.1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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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7살 난 아이는 며칠 전 '여름축제'라는 유치원 행사에서 그동안 배우고 익힌 노래와 사물놀이, 악기연주를 비롯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오리고 붙인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음과 박자가 틀리고, 몇몇은 피카소도 울고 갈 만큼 난해한 그림과 작품들이었지만 엄마들의 눈에는 실수다발인 그 모습조차도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달이 가계부에 커다란 구멍을 내게 했던 적잖은 유치원비도 아이들의 밝은 모습에 비하면 너무도 하찮은 금액인 양 느껴졌습니다. 제 아이 역시, 어설픈 동작의 율동과 엇박자의 노래를 불렀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인 저에게만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맞춰진 작은 의자에 앉아 엉덩이와 허리뼈가 뻐근해오는데도 1시간이 넘는 아이들의 공연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아이들이 만든 작품전시회를 둘러보는 시간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저는 단춧구멍만한 눈을 굴려가며 아이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아이는 코끼리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아이가 코끼리라고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면 코가 긴 개인지, 원숭이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어설펐지만 제 눈에는 대공원의 코끼리보다 더 늠름하고 멋진 코를 가진 코끼리로 보였습니다. 한 가지만 빼면 말입니다.

며칠 전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오늘은 뭐하며 놀았어?"

의례적인 질문이었는데, 아이는 수저를 들다말고 한참을 뭔가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엄마! 내가 뭘 잘못했을까?"

또 옆 친구의 머리카락을 만졌거나, 아니면 짧은 옷을 입고 온 친구의 팔을 만져서 야단을 맞았구나 싶어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갔습니다.

"엄마가 친구들 만지지 말랬잖아! 싫다고 하는데도 자꾸만 만지는 건 뭐라고 그랬어?"
"성폭력!"

"그런데 왜 또 만졌어?"
"나 안 만졌는데? 만진 거 아니야!"

"그럼 선생님한테 왜 야단맞았는데?"
"나도 잘 몰라요!"

뭘 잘못했는지. 왜 야단을 맞아야 했는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아이에게 유치원에서의 일을 얘기해보라고 했습니다.

평범한 코끼리
평범한 코끼리주경심
여름축제를 맞아 그날은 유치원에서 부모님들에게 보여드릴 작품을 만들기로 했고, 아이는 코끼리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한지를 찢어서 코끼리 몸에 한참 붙이고 있는데, 아이들을 둘러보며 요리조리 설명도 해주시고, 살짝 손도 봐주시며 다니시던 선생님이 아이 곁으로 오시더니 다짜고짜 "너 이게 뭐니? 다시 해!"라며 아이가 열심히 붙여놓은 한지를 팍팍 잡아서 떼어버렸다는 겁니다.

"왜?"
"나는 알록달록 코끼리를 만들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알록달록 코끼리가 세상에 어딨냐고 다 떼버리셨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다 해놓고 놀고 있는데 나 혼자만 놀지도 못하고 다시 붙였어요."

"그래서 속상했어?"
"네!"

세상에 알록달록 코끼리가 있을 리 없겠지요. 하지만 책 속에는 알록달록 코끼리도 있고, 바둑판 모양의 코끼리도 있습니다. 주말마다 어린이 도서관을 찾아가는 우리에게는 말이에요. <알록달록 코끼리 엘머>란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엘머'는 알록달록 코끼리입니다. 그리고 엘머의 친구들은 모두 회색코끼리입니다. 하지만 회색코끼리도 모양은 모두 다릅니다.

빼빼 끼리, 뚱보 코끼리, 키 큰 코끼리, 키 작은 코끼리, 코가 긴 코끼리, 코가 짧은 코끼리... 모양과 크기가 달라도 모두가 친구입니다. 그 중에서도 알록달록 코끼리 엘머는 모두가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엘머의 날도 있습니다. 엘머의 날에는 모두가 엘머처럼 색깔을 칠합니다.

이 책을 읽어주면서 저는 아이에게 세상에는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도 있고, 다리나 팔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겉모양만 다를 뿐 마음 속은 모두가 따뜻하다고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아이는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봐도, 몸이 불편한 사람을 봐도, 얼굴이 조금 못 긴 사람을 봐도, 키가 좀 작아도... 그 모두를 '엘머'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엘머니까 사랑해 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의 마음을 획일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참히 짓밟은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습니다. 사실 "귀엽네!"까지는 아니더라도 "왜 알록달록 코끼리를 그렸니?"라고 한 번만 물어봐 줬으면 좋았을 걸...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제가 아이의 엄마기 때문에 드는 것만은 아닐 것 입니다.

물론, 한 학기 동안의 실적을 부모님들 앞에서 평가받는 입장의 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기에 "엄마가 선생님에게 엘머를 보여주세요"라고 말하는 이이에게 이렇다 저렇다 대답을 못해줬습니다.

이런 복잡함 때문인지 아이가 들고 있는 코끼리가 슬퍼 보이기까지 합니다. 엘머가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엘머를 몰라줘서도 아닙니다. 다시는 아이의 가슴에 엘머가 살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슬펐습니다. 어른들의 눈에 비친 세상에 어떻게든 아이들은 적응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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