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동일학원 사태',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시금석

'진짜교사'는 다시 교단에 서야 한다

등록 2006.07.15 19:17수정 2006.07.1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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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조직을 막론하고 오랜 경험을 통해 속속들이 알기 전까지는 그가(혹은 그들이) 진짜인지 가까인지 판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경우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누가 보아도 옳고 그름이 명백한 사건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 시금석이 될만한 사건이 바로 '비리백화점'으로 악명 높은 동일학원 사태이다. 다음은 동일학원 문제를 다룬 한 일간지의 7월 4일자 기사의 일부이다.

2003년 동일여고 세 교사는 재단의 학교급식비·동창회비·장학기금 유용 혹은 횡령 의혹 등을 제기했다. 이들의 석 달 남짓에 걸친 문제 제기는 서울시교육청의 특별감사를 이끌어냈고, 감사 결과 교사들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 그런 동일학원이 세 교사를 파면한 근거는 1심 재판부가 이들에게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선고한 벌금 100만원이었다. 이것이 교사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이다. 벌금 1000만원을 부과 받은 재단이사장, 학생의 밥값이나 장학금에서 15억여원이나 빼돌린 재단 관계자들은 지금도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 기사를 먼저 읽고 난 뒤 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신문사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다음 세 가지 단어를 검색해보았다.

'동일학원', '조연희', '길거리 수업'

3시간 남짓 컴퓨터 앞에 붙박이로 앉아 화면에 떠오른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악덕 재단의 비인간적이고 반교육적인 횡포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그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더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학교 비리를 고발하여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수여하는 '투명사회상'까지 받은 교사들을 '집시법 위반'을 내세워 끝내 파면이라는 중징계로 보복한 황당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겠는가.


다음은 그 희망의 단초가 되어준 '길거리 교사' 조연희 선생님이 모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글의 일부이다.

'2003년 여름, 저와 동료 교사들은 졸업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 교사로서 재단의 횡포에 짓이겨 침묵하며 살던 시절, 학생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남겨준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졸업생들은 저희들을 껴안으며 마음으로 용서해주었습니다. 2003년 5월, 교사, 학부모, 졸업생,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아 동일재단의 각종 전횡을 폭로했습니다. 도저히 그대로 침묵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침묵은 결국 공범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야 했습니다.'


그렇다. 최소한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죄 없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눈에 밟혀도 교사로서의 신분의 위협과 내부고발자라는 부담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편적인 정의나 진실 구현보다는 팔이 안으로 굽는 동양적 관습이나 구태가 아직은 남아 있는 한국사회가 아닌가. 몇 년 전 일부 사학에서는 사립학교법의 헐렁한 틈새를 이용하여 학교의 비리를 폭로한 양심교사들을 파면 조치한 전력도 있다.

이번에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최소한의 양심에 따라 학교 비리를 고발한 선생님들은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 결과 급식비리, 동창회비 횡령, 이사장의 각종 불법 수당, 각종 공사 관련 비리, 협동조합 불법 운영 등 모두 61건에 달하는 회계부정이 드러나 16억여원에 달하는 보전, 환수조치가 내려진 재단으로부터 파면되어 지금 학교가 아닌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조연희 교사의 길거리 수업 기사를 검색하다가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메이저급 신문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내용으로 길거리 수업 기사를 내보낸 것이었다.

무슨 조화인지 몰라 궁금해 하다가 나중에야 그것이 '서울=연합뉴스' 형태의 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왜 독자적인 기사를 쓰지 않고 그런 소극적인 방식을 선택한 것일까?

제목도 "양심 있는 자들을 학교로 보내라"나 "제자들에게 줄 김밥 밤새 만든 어느 선생님"처럼 논조가 분명하거나 정의로운 약자에 대한 배려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여느 신문들과는 달리 "파면 여교사의 길거리 수업"이라는 무미건조한 제목을 사용했다.

그들에게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부패사학으로부터 신성한 교육권과 생존권을 박탈당한 교사들의 절규를 못들은 체 해야만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혹은, 상식과 인정이 무너진 지 오래인 학교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 골똘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다.

"저들은 가짜다."

저들이야 그렇다 치자. 우리 교사에게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리다. 그 눈에 그렁하게 맺힌 눈물이리다. 아이들의 생명 그 자체, 학교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다. 가짜 교사다. 가짜 교육이다.

지금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의 교사'가 된 조연희 교사의 고민도 다름 아닌 아이들 앞에 가짜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으리라.

'잘못을 저지른 자가 잘못을 고친 자를 처벌하고 내쫓는 일이 학교에서 벌어진다면 그런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아야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교사를 어찌 진짜 교사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세상은 가짜가 되는 것이 더 편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편함만 추구했다면 적어도 거리의 교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자녀를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오히려 학부형들로부터 삿대질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에 대한 진짜 사랑을 품고 사는 교사들은 그럴 수가 없다. 고난의 길이라도 바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몸으로 보여주는 진짜 사랑이기 때문이다.

진짜 교사는 거리가 아닌 교단에서 아이들을 만나야한다. 진짜 사랑을 품은 진짜 교사를 더 이상 거리에 방치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손실이다. 이를 위해 애쓰지 않는 교사도, 학부형도, 학교도, 교육청도, 교육부도, 정부도 다 가짜다. 이번 동일학원 사태는 분명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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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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