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생기마을'의 촌장을 만나다

[희망버스-원주②] 개인의 노동이 사회의 노동으로 전환되는 곳

등록 2006.07.19 09:58수정 2006.07.2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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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꿔가는 현장보고서-16일간 전국일주] 공식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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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마을' 숙소 ⓒ 박항주

'생기마을'을 방문한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황무지나 다름없던 5년 전 생기마을이 떠올랐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기마을에는 대안에너지를 상징하는 태양광이나 풍력발전기가, 음식물쓰레기와 분뇨를 처리하는 시스템 등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봤다.

또 주민들의 자발적 협의체가 구성되어 있는 주민위원회가,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유기농법을 실행하고 있는 생태마을의 모습이 떠올랐다.

4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생기마을은 행정적으로 춘천에 속하지만 소양강댐 때문에 고불탕한 길을 지나고, 양구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외진 만큼 야생동식물이 많다. 멧돼지소리, 원앙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환경부에서 지정한 희귀멸종식물인 '금낭화'가, 사라진 '소학교' 귀퉁이에 피어 있었다.

하지만 5년 전과 비교해 외관상 변한 것은 없었다. 그저, 유기농법을 부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평온한 농촌,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강원도의 첩첩산중에 있어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외진 곳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듯했다.

강원도의 농촌 중에 이러지 않은 곳이 있나. '면'에 초등학교가 하나 밖에 없는 산골에서 이런 풍경은 당연한 것 아닌가. 처음 이곳을 방문한 '생태지평' 연구원들은 자연 그 자체에 많은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내 가슴은 낯익음과 태양광 하나 없는 이 풍경에 그저 담담했다.

개인 노동들이 만나, 작은 사회 노동으로 전환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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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100일은 개인노동, 100일은 공부, 65일은 가족, 그리고 100일은 사회 노동을 하신다"는 정성헌 선생 ⓒ 박항주

보이는 것을 믿는 세상 풍토에 익숙해 어떤 규정된 개념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존의 생태마을을 다르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곳은 어떤 '장소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여긴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걸까.

저녁식사를 마친 후 3년 전 위암수술 이후 민간요법(배달조선의학)으로 몸을 치유하고 계신 생기마을의 촌장 정성헌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환경운동가'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1년 중에 100일은 개인노동, 100일은 공부, 65일은 가족을 위해서, 100일은 사회노동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리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정성헌 선생의 이야기는 '노동'의 문제를 넘어선 '삶의 관계'를 고민하게 한다.

개인에서 가족, 가족에서 사회로 확산되는 '시간의 배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행복과 만족감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노동시간의 자기결정권을 얼마나 희망했던가?

"숙소 앞의 밭에서 재배되는 배추와 무 등은 개인 노동의 산물이기보다는 '관계의 산물'이야, 생기마을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밭을 갈고, 피를 뽑고, 재배하거든. 내가 하는 일은 역할배분을 하고 일상적인 관리를 하는 정도야. 밭에서 재배된 배추는 마을 방문자를 위해 김장철에 450폭의 배추를 담궈. 김장독은 집 뒤편 장독대에 있어."

이곳은 개인의 노동들이 만나 작은 사회의 노동으로 전환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의 90% 이상이 도시에서 사는 현실에서 5년 전 내가 그랬듯, 이곳은 작은 휴양지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개인사적 이야기와 마을 주민들의 작은 변화들을 듣게 되면 이곳은 아주 낯선 공간이 되어 버린다.

전국 평균소득 반도 안 되지만, 나눠먹는 기쁨이 구현되는 곳

"생기마을의 작은 변화들은 생활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을 거야. 고아원과 자매결연하는 이곳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고아원 아이들과 농산물을 나눠먹는 농촌의 모습은 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곳 주민의 연간 평균소득은 전국평균농민소득 2200만원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거든.

그리고 주민들은 이곳의 자연휴식년제 기간을 3년에서 8년으로 연장했고, 앞으로 10년을 더 연기하려고 준비 중이야. 자연휴식년제를 풀어 여름휴가철 휴양지로 삼아 이익을 낼 만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아. 맨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했어."


생기마을이 "고마움으로 먹고, 나눠서 먹는 우리네 밥상교육"이 구현되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풍수적으로 몸이 아픈 사람이 회생할 수 있는 터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생기마을이라 이름 짓고, 주민들과 함께 8개년 마을계획 '생기마을 가꾸기 :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을 통합해서 생기 넘치는 마을로'를 수립했다고 한다.

정성헌 선생은 앞으로 이곳에 국궁터를 만들 계획이라 한다.

"명상도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지만,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편히 즐기며 호흡을 통해 건강을 찾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그래서 국궁을 생각하게 되었지. 국궁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을 하게 되고,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 심신이 단련되어지거든."

정성헌 선생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주민들의 협동과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시장과 광장은 사회관계의 본연의 모습이지. 시장에서 이익을 만들고 광장에서 서로의 보람을 나눠야 해.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지. 시장만 강조하다보면 '이익'만을 생각하게 되거든. 그리고 가래질과 같은 물리적 협동은 사람들의 힘을 30% 정도 더 만들어내지만, 보람과 지혜의 나눔과 같은 인간의 화합적인 협동은 10명일 때는 450%, 100명일 때는 500%를 더 만들어 내."

고마움으로 먹고 나눠서 먹는 우리네 밥상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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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헌 선생과 생태지평 연구원들 ⓒ 박항주

창을 통해 아침햇살을 받고 바로 앞 산등성이에 조림한 일본잎갈나무와 침엽수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층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보며 '생기마을'에서의 이틀째를 시작했다. 바로 앞마당을 지나면 경사진 밭들이 수백 평이나 펼쳐져 있고, 고추밭에는 검정 비닐 대신 플래카드가 고추 성장을 위해 땅을 덮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침식사를 하기 전 정성헌 선생과 주변을 산책했다.

"의외로 농민들도 식물들 이름을 잘 몰라. 생계와 관련된 작물들은 잘 알아도, 생계와 관련 없는 동식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어쩌면 도시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라는 말로 시작된 아침산행은 오가피, 봉숭아나무, 마가목, 뽕나무, 찔레, 다래, 일본잎갈나무, 제비꽃, 명자, 머위, 야생돌미나리, 잣나무, 소나무 등의 만남으로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밭도랑에 나 있는 나물을 캐서 아침 반찬으로 삼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행들은 밭 네 고랑에 퍼져 있는 잡초들을 호미로 걷어내고, 땅을 일구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심어 놓은 오이를 캔 사람이 있었다.

"서툰 호미질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이를 뽑는 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오이 잘 자라라고 세워둔 막대기를 보면 모르나."

촌장님의 핀잔(?)을 생태지평의 일원들은 듣고 말았다. 하지만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 웃음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카르텔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침일과 오전일이 구분되는 생활을 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밭일은 처음이다. 10년 동안 한 마지기(200평) 넘게 텃밭을 일궈온 부모님을 돕던 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여섯 도랑 밭을 일구었다. 공동의 일을 하면서 서로에게 비판적이지 않았던 적이 있을까?

밭일을 마친 나의 소감이었다. 콩과 옥수수 씨앗을 심었는데 여럿이 공동작업을 한 뒤 이렇게 뿌듯하긴 드물었던 것 같다. 점심식사 후 네 도랑을 더 일구었고, 낮잠 한 시간 즐긴 뒤 산행을 했다. 작은 오솔길을 오르고, 임도로 걷고, 길 없는 곳도 걸었다. 정말 첩첩산중이다.

심어 놓은 오이를 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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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마을 밭에서 일하는 생태지평 연구원들 ⓒ 박항주

기차와 버스, 그리고 물어물어 이곳을 찾은 일행이 한 명 있었다.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노승영 연구원이었다. 참 놀라운 일이다. 자동차라는 교통편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가 대단해 보였다. 버스에 버스를 타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걸어왔다는 것이다.

저녁식사 후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정성헌 선생은 가톨릭 농민운동을 통해 개인에게 사유화 되지 않은 민중의학을 고민하게 된 계기, 그리고 민간요법의 한 일환으로 불리고 있는 의학을 배달조선의학으로 체계화하고 싶은 열정을 들려주었다.

"배달조선의학은 야생동식물의 '습성'을 이용해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삼의 뿌리는 올라가는 습성이 있어 열이 없는 사람에게 좋고, 인삼의 열매는 내려가는 습성이 있어 열 있는 사람에게 좋지. 이렇듯 동식물의 습성을 이해하고 그 습성에 따라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이지.

배달조선의학에서 치료제의 80%가 식품이고 20%는 약재를 사용해. 이것은 생활에서 쉽게 치료를 하려는 생활의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 배달조선의학을 체계화 할 수 있는 센터를 건립할 예정이야. 그리고 전국의 약초생태지도 등을 작성할 계획이고…."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노승영 연구원은 '침과 뜸'을 배우고 있던 터라,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민중의술에 낯선 연구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민중의술의 하나인 단식요법으로 '암'을 치료하고 있는 어머니(양의학과 한의학에 의하면 나의 어머니는 벌써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탓에 정성헌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제도권의 의술이 얼마나 비제도권 의술에 폭력적인지, 심지어는 환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체험한 지라 민중의술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해는 지고 일행들은 다시 아침을 맞이했다. 박진섭 부소장과 정성헌 선생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 이른 새벽에 서울로 올라갔다. 남은 일행들은 숙소를 청소하고, 어제 심은 콩과 옥수수 씨앗이 새벽이슬에 몰라보게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생기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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