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남부지방 전형적인 외양간과 행랑채 모습. 돼지, 닭, 소가 나눠 쓰며 살았다. 쇠죽솥 옆에 아랫방이 있었다.시골아이 김규환
예전 외양간은 아래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쇠죽솥도 밥솥이나 국솥보다 대여섯 배는 컸다. 측간과 돼지 막에 방 한두 개로 행랑은 채워진다.
부사리도 오줌발이 보통이 아니지만, 암소는 마치 옹녀가 폭포수를 쏟아내듯 어린 내 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오줌을 싼다. 그때마다 나는 행여나 묻을까봐 저만치 한쪽으로 물러나기도 했다.
그 드넓은 외양간도 소똥이 묻지 말라고 하루 두어 번 조금씩 나누어 넣어준 외양짚 양이 늘어감에 따라 차차 높아지면서 좁아지곤 한다. 송아지라도 한 마리 더 있으면 한 달이 채 못 되어 비좁은 상태가 된다.
때론 소똥 범벅이 되기도 하는데, 사람도 견디기 힘든 장마철이나 태풍 때는 그야말로 질컥거리는 수렁이 되어 발 디딜 틈이 없다. 왜인고 하니, 소가 싼 오줌과 똥뿐만 아니라 땅에서 빗물이 스며들어 양을 대폭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주인이 가보 1호를 위해 한 달 전이나 최소 보름 전에 퍼냈어도 감당하기 힘들도록 늘어만 갔다. 이땐 소뿐만 아니라 사람이 밥을 해먹는 아궁이마저 물난리를 겪고 있는 때니, 맨 땅 위에 지은 집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전남 화순 출신 문병란 시인은 코카콜라를 '소탕물'에 비유하였다. 소탕물은 외양간 안이나 밖에 소똥과 오줌이 뒤섞인 물이 한곳에 모인 탁한 색깔의 오물이다. 더러 외양간 바깥이 넓은 집은 소탕물을 모아둔 곳이 외양간과 분리되어 밖에 있었지만, 대개는 외양간 한 귀퉁이에 소탕물이 모이는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