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사시가 되어있는 일기장들!주경심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내 기억의 더듬이로도 채 찾을 수 없는 아주 어릴적부터였다. 물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검사받기 위한 일기로 나 역시 시작이 되었다. 마지 못해 쓰는 일기, 하늘이 허락만 한다면 한 달 내내 '이하동문!'이라는 네 글자로 한 페이지를 다 채울 수 있는 그런 일기였다.
그런데 보여주고, 검사받는 일기가 어느새 내 것이 되어 있던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지인 하나 없는 낯선 타지생활이 무료했고,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소음이 지겨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말벗 하나 없이 죽은 듯 지새우는 밤들이 나에게 일기를 쓰게 했다.
해서 그 시절의 일기는 참 슬펐다. 어린 나이에 지독히도 외로웠다. 그래서였을까? 집을 떠나온 뒤 "일기장은 어떻게 할까"하고 물어오는 오빠에게 미련없이 "태우든지 버리든지"라고 답했다. 그 시절의 외로움 따윈 지금 내 행복의 걸림돌이고 행복을 갉아먹을 질척대는 옛 기억일 뿐이라는 듯 말해버렸다.
큰 아이를 갖고서부터 나의 일기는 날개를 달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봐도 행복이 뚝뚝 묻어나기 때문이다. 육아와 생활과 일과 사랑이 총 망라된 잡탕식의 일기장이지만 어느 날은 일기를 쓸 기대로 밤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일기를 쓰는 순간은 언제나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잠든 아이의 숨소리는 일기의 서두를 장식했고, 내일을 준비하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행복한 데코레이션이 되었다. 그렇게 써온 일기가 어느새 여섯 권의 대서사시가 되어 있다.
가끔 사는 게 고달프고, 말벗이 필요할 때면 난 일기장을 펼쳐본다. 그 안에는 내가 현실에 치여 잊고 살았던 행복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가 일기장을 펼쳐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아드레날린처럼, 눈송이처럼 솟아올라 나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어주었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일기를 쓰고 있는 내 어깨 너머로 머루알 같은 눈동자를 날리곤 했다. "엄마! 오늘은 동생이랑 내가 싸운 얘기 쓰는 거죠? 누구 잘못이라고 썼어요?"
엄마의 일기장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 바투 다가앉으며 물어오곤 했다. 그때도 난 웃어주었다.
일기의 참맛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아이가 일기장을 사달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일기를 쓸 때에도 난 놀랍지 않았다. 궁금증이 배가되면 꼭 실천을 해보는 것이 아이들의 본능일테니 말이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교정에 일기만한 선생이 없다고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반 강제적으로 일기 쓰기를 권한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엄마들이 만족하는 일기를 쓰게 하기 위해 공부방이며 학원을 보낼 때 일기를 쓰라고 말하기보다는 일기의 궁금증만을 증폭시키며 근본 없는 배짱만 두둑한 나로서는 자발적인 아이의 일기쓰기는 사실 기특함을 넘어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