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 작품은 그림 연습용?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 43

등록 2006.07.24 17:30수정 2006.07.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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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동안 계획이 어떻게 돼?"
"학교에서 보내오는 일도 처리하고, 예전에 방문했던 공동체들에 인사도 좀 하고, 지난번에 참관했던 발도로프 스쿨 선생들도 만나고, 자원봉사야 어렵더라도 도서관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어쨌든 화요일마다 '아트 인스티튜트' 갈 건데…."

하고픈 일, 또 해야 할 일이 많겠지요. 그런데 그게 참, 뜻한 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쉬고 있으면 찾아오기 마련인 지독한 고단함이 몰려왔고, 앓던 어깨통증이 심해지기도 했습니다. 고단함과 통증이 게으름을 즐길 명분이 된 셈입니다.

처음 올 때, 다른 건 몰라도 화요일마다 미술관에 있을 줄 알았지요. 그런데 다 떠나게 되어서야, 돌아갈 날이 한 주도 남지 않았을 때야 그곳을 방문할 수 있었답니다.

아트 인스티튜트(The Art Institute of Chicago)는 시카고의 다운타운에 있는 큰 미술관입니다. 문 앞에 있는 에드워드 커메이의 두 마리 사자상 덕분에, 그냥 지나칠 일 없이 쉽게 찾을 수 있지요.

이곳엔 미술관 안내 프로그램뿐 아니라 전시관에 대한 특별 프로그램도 자주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여러 가지 예술 활동도 할 수 있고요. 또 예술대학(Performing Art & Visual Art College)도 함께 있는데, 여러 해에 걸쳐 자신이 만든 작품(Portfolio)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보내면 이를 심사해 기술보다는 창작성과 가능성으로 학생을 선발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이 미술관의 '프리데이(무료입장)'가 화요일이었는데 이번 여름엔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 시간으로 바뀌었네요.

언젠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갈 꿈을 꾸는 아홉 살 사내아이는 신이 났습니다. 지난 봄, 미술관으로 가출한 오누이가 어느 조각상의 비밀을 파헤치는 코닉스버그의 장편동화를 읽은 뒤로 품게 된 소망이지요.

"그런 미술관이야." 다섯 살에도 방문한 적이 있지만 기억에 없나 봅니다. 실제로 아트 인스티튜트는 메트로폴리탄, 보스톤과 더불어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힐 정도로 많은 걸작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전체 구조를 굳이 알아야겠다는 목적이 아니라면, 한꺼번에 모든 곳을 다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욱 그러하지요. 인류의 보물창고가 자칫 재미없고 지루하고 피곤한 공간이라는 느낌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지하 1층에선 축소모형전시실(Thorne Miniature Rooms)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여러 시대에 걸쳐 존재했던 가옥의 내부 구조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방이지요(중국과 일본 양식도 하나씩 있습니다). 몇 차례나 갔던 미술관이지만, 저 역시 이번에 축소모형전시실을 처음 만났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방인 모양입니다.

"이야, 이런 걸 만들려면…."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을지 짐작하며 아이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지요. 부엌, 거실, 침실부터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까지 빛으로 당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었답니다.

1층에서는 아프리칸과 고대 아메리칸들이 남겨놓은 유물들을 구경했고(지하도 그렇지만 이 층에도 1890년대의 아메리칸,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국 데코레이팅,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및 로마, 전쟁과 기사, 중국과 일본 및 한국관 같은 다른 방들도 많답니다), 2층에서는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시대의 작품실을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익숙한 화가의 그림이어서 낯이 익은 데다 좋아하는 작품들도 많으니까요.

근현대 미술로 길이 이어졌습니다. 피카소 그림들을 지나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그림들이 있는 방으로 갔을 때였지요. "이 그림들은 그림 연습하면서 그린 그림인가?" 아이가 중얼거렸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황금비율의 아름다움으로 이름난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이었습니다.

멕시코의 너른 '카자스' 지역의 고대 도자공예 특별전에도 들렀습니다. 그 뒤 1층의 미술관 상점에서 책, 엽서, 기념품들로 다시 감흥에 젖다 나왔습니다.

미술관을 찾은 어른의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물에서 유영하는 것처럼 아이가 미술관을 돌며 그림과 이야기를 하고, 그림이 그려진 시대 및 그 그림을 그려낸 이와 눈을 마주하는 걸 보며 더 즐거웠습니다. 저는 작품이 주는 감동을 알기 전에 미리 설명부터 듣고, 명화가 왜 명화인지도 모른 채 겨우 그림 보고 이름과 시대를 외우며 보냈던 세대에 속하거든요.

미술관 뒤에 미시간 호수가 멀지 않은 큰 공원이 있지요. 길이 바쁘다면 미술관 바로 곁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싸간 도시락을 펴도 좋겠습니다. 우리의 저녁 밥상엔 반딧불이 한 마리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2006년 7월 21일 쇠날, 비 오다가다)

덧붙이는 글 |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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